세계적인 금융 위기가 온 나라의 구석구석을 휩쓸고 지나간 지 5년. 지난해 여름, 세계 금융의 심장이라 불리는 미국 월스트리트(Wall Street)를 방문했을 때 가장 눈에 띈 것은 곳곳에 간판을 내린 음식점들이었습니다.
평일 낮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한산한 식당들, 가게를 내놓는다고 써 붙인 안내문들. 그 앞에서 길거리 음식을 파는 한 상인은 "고급 음식점들이 다 문을 닫으면서 패스트푸드같이 저렴한 음식들이 잘 팔린다"고 말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풍경은 최근 한국의 서울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금융가라고 볼 수 있는 여의도에서는 경제 불황의 한파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무엇보다 불야성을 이루던 술집 주변은 조용하다못해 황량한 기분이 들고, 증권맨들은 한 끼 3000원 안팎의 식사를 분식집에서 해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식당 종업원 A씨는 "예전에는 젊은 사람들이 주로 온 반면에 요즘은 중년 이상의 간부급도 간편하게 식사하러 많이 오는 편이다. 양복 겉옷에 걸린 배지를 보면 증권사 직원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B씨는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음주 후 귀가하는 손님들이 많아야 장사가 잘 되는데 요즘은 술집들이 문을 닫으니 여의도에 와도 예전같지 않다"고 토로했습니다.
실제로 국내 유수의 대형 증권사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해 있습니다. 삼성증권, 현대증권, 한화투자증권 등 대기업 계열의 증권사들도 대량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한차례 구조조정이 지나간 상태입니다.
자리를 지킨 직원들이라도 영업 실적 부진과 연봉 삭감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으니 금융가가 불황의 그늘을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얼마 전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한 의원은 "한국 경제에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골든 타임(golden time)을 놓치면 기회는 영영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습니다.
정부도 금융투자업계를 살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주식시장 거래량이 늘어야 기업에 자금이 투자되고 일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증시 침체는 우리 경제 전체의 문제입니다.
이달 정부는 주식시장 발전방안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증시 가격제한폭 확대와 기관투자자의 주식 투자 확대, 기업의 배당 확대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 중 주식시장을 살릴 묘책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개인투자자 피해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정책도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국자들의 현실성 있는 고민과 일관성 있는 정책,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정부의 대책이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