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변제 신청 은행 "보험금 지급 안되면 소송 진행할 것"
"무보 신뢰 추락·은행 보수적 여신에 자금 조달 어려워질 것"
이달 초 법원으로부터 파산선고를 받은 '모뉴엘 사태'의 책임론을 놓고 한국무역보험공사와 은행들이 결국 법정에서 마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애꿎은 중소기업들의 피해만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고 있다. 향후 중소기업들이 무역보험공사 보증서를 담보로 은행권 대출을 받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뉴엘은 허위매출채권으로 3조2000억원의 대출을 받았다가 이중 6745억원을 갚지 못해 지난 10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그러나 지난 9일 법원은 파산을 결정했다. 모뉴엘 자산이 2390억원에 불과하지만 부채가 7302억원에 달하면서 부채가 자산을 3배 이상 초과했기 때문이다.
모뉴엘은 로봇청소기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2004년 설립됐다. 모뉴엘의 금융권 채무 6745억원 중 담보대출은 3869억원, 신용대출은 2908억원이다.
파산한 모뉴엘의 자산을 정리해 채권자에 분배하게 되지만, 담보대출이 우선 변제되기 때문에 신용대출은 대부분 변제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
모뉴엘의 여신 규모는 기업은행이 1508억원으로 가장 많다. 뒤를 이어 산업은행(1253억원)과 수출입은행(1135억원), 외환은행(1098억원), 국민은행(760억원), 농협은행(753억원) 순으로 비중이 크다.
이중 신용대출 규모는 수출입은행이 1135억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은행(499억원), 기업은행(453억원), 국민은행(294억원), 외환은행(235억원), 농협은행(185억원) 순이다.
현재 이들 은행은 회수 가능성이 희박한 신용대출과 관련해 대손충당금을 쌓았기 때문에 추가 리스크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를 담보로 내준 대출이 문제다.
무역보험공사는 현재 6개 은행에 보증을 했고 보증규모는 3265억원 규모다. 보증서를 담보로 대출해준 은행들은 지난달 무역보험공사에 대위변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현재 은행권 대출이 보험에 명시된 약관과 부합하는 지 확인 중"이라며 "대출과 관련해 별 문제가 없다면 보험금이 나가겠지만 여신심사 부실 등의 문제가 있다면 보험금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은행들은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믿고 돈을 빌려준 만큼 무역보험공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무역보험공사가 심사를 거친 뒤 보증을 해놓고 제대로 여신심사를 하지 않았다고 은행에 문제 삼는 것은 잘못됐다"면서 "앞으로 어느 은행이 무역보험공사 보증을 믿고 대출을 해줄 수 있겠냐"며 반문했다.
무역보험공사에 대위변제를 신청한 은행들은 현재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할 것으로 보고, 결국 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무역보험공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소송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무역보험공사의 심사 결과는 1월 말쯤 나올 예정이다,
이처럼 무역보험공사와 은행들이 모뉴엘 사태 책임을 놓고 갈등을 벌이면서 '불똥'이 중소기업에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 발급 실적이 모뉴엘 사태 직후 크게 감소했다.
모뉴엘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인 9월 무역보험공사의 수출신용보증서 발급 실적은 196건, 2억 7039만달러이었지만 지난달에는 91건, 1억1502만달러로 반토막났다.
무역보험공사 관계자는 "보증한도를 줄이지 않고 예전과 같은 수준에서 발급해주고 있지만 은행이 예전과 달리 꼼꼼하게 검토하면서 지연되는 경우가 많아 모뉴엘 사태 직전보다 실적이 줄었다"고 말했다.
실제 은행들도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을 믿지 못하겠다는 입장이다.
모뉴엘 사태 관련 은행들도 여신심사 소홀 등 문제가 있다는 무역보험공사의 태도에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를 받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일고 있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옛날에는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만 있으면 무사통과였지만 이제 보증서를 들고 와도 믿고 대출해주기 어렵게 됐다"며 "무역보험공사의 보증서의 신뢰가 많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무역보험공사의 신뢰 추락과 은행들의 대출심사가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당장 자금이 필요한 중소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무역보험공사 보증서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금융기관이 보수적으로 여신심사를 하게 돼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은행 문턱이 더욱 높아지게 됐다"며 "기업들이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