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은 '분통', 대통령은 '소통' =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으로 박근혜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불만이 잔뜩 부풀어오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말정산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홍보부족'을 원인으로 꼽는 등 국민 여론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진단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6일 오전 수석비서관회의 주재에 앞서 새롭게 구성한 특보단과 티타임을 갖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 : 청와대 제공)
박근혜 대통령이 다시 한번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였다.
박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있자니, 그가 도대체 어느 나라 대통령인지, 이 정권이 과연 어디로 흘러가려고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26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최근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연말정산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을 두고 "고소득층이 상대적으로 유리했던 소득공제 방식의 문제점을 바로잡고자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했는데 이런 변화를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드리지 못한 것 같다"며 이 사태의 원인으로 '홍보부족'을 꼽았다.
이어 "이번 연말정산에서 봤듯이 정부가 제도 하나를 바꾸는 것은 국민들에게 여러 측면에서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어떤 정책을 바꾸고 제도를 도입할 때는 다양한 각도에서 치밀하게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의 이 발언이 왜 '유체이탈 화법'인지, 따져보자.
일단 연말정산 사태 원인에 대한 진단부터 완전히 틀렸다.
'홍보부족'이라는 생각은 도대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란 말인가.
연말정산 방식이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전환되는 등 천지개벽이 이루어진 시점은 지난 2013년 말이었다. 그 해 8월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나오면서 어마어마한 논란을 일으켰다. 정부가 부랴부랴 수정안을 내놓고 국민들 앞에 사과를 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그리고 지금 왜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서 연말정산 환급액이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국민들이 화딱지가 난 것은 명분이 있든 없든, '증세'를 했기 때문이다.
증세를 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해 놓고, 치졸한 방식으로 증세를 했기 때문이다. 홍보부족을 원인으로 꼽을 요량이라면, '복지예산 확충을 위해 증세가 필요했다'고 솔직하게 홍보를 했어야 할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홍보부족 운운하는 것은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린 것이다.
'정책을 바꾸고 제도를 도입할 때 다양한 각도에서 치밀하게 종합적 분석을 통해 준비해야 한다'는 언급, 이 발언 또한 기가 찰 노릇이다.
해서도 안될 일이지만 정부가 재정확충과 관련해 정공법(직접증세)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를 모른다는 말인가.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증세 없는 복지를 언급해 왔다.
그가 내놓은 복지공약은 수 십 조원의 재원 없이는 불가능한, 꿈같은 공약들이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박 대통령이 공약한 '추가세수'는커녕, 박 대통령 집권 이후 3년 연속 수 조원에 달하는 세수결손이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을 명분으로 각계각층에서 쏟아져 나오는 복지공약 재검토 목소리에는 철저하게 귀를 닫고 있다.
애초부터 정권의 입맛에 따라 변하는 '영혼'이 없는 공무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연말정산 파동을 일으킨 2013년 세법개정과 최근의 담뱃값 인상 등과 같은 '꼼수 증세'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논란의 정책들을 추진한, 최종 책임자는 박 대통령 자신이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의 수반(首班)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마치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듯 '정부가 정책을 잘 만들고 홍보해야 한다'며 행정부만을 채근하고 있다. 지난 2013년 8월 세법개정안이 논란을 일으켰을 당시에도 박 대통령은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는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이며 책임을 피해갔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 기관이 조사한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집권 후 최저치 기록을 경신했다고 한다(34.1%). 온 나라를 벌집 쑤시듯 들 쑤셔놓은 비선실세 논란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던 40% 지지율이 와르르 무너졌다.
조사기간(19일~23일)을 감안하면,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지지율이 낮게 형성된다는 것은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정권이 내놓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는 반증이다.
최고 권력자라면 민심의 움직임에 민감해야 한다. 또한 국민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민심을 이반 시킨 요인이 잘못된 정책이라면, 국민에게 사과하고 정책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수정해야 한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책임있는 자세로 국민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정부를 이끌어주는 대통령, 이것이 국민들이 바라는 진짜 대통령의 모습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