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가계부채 대책, 저소득 차주 위협한다

기준금리 인하 분위기에도 고정금리 주택대출 확대 '고집'

1000조원 넘는 가계부채는 경제활동을 저하시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이 저소득·저신용 차주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이 방향은 맞지만, 빚 부담에 허덕이는 대출 수요자의 현실을 고민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 고정금리·분할상환, 빚 상환 더 어려워진다 = 금융위원회는 가계부채 '질'을 높이기 위해 고정금리, 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키로 했다.

최근 2015년 업무 계획에서 금융위는 고정금리 및 비거치식 분할상환 대출의 비중을 2017년까지 각 40%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올해 안에 '20조원' 한도로 대출 전환이 추진된다.

고정금리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인하에 관계없이 대출 만기까지 같은 수준의 이자율을 유지하는 조건이다. 일반적으로 변동금리에 비해 이자율이 높기 때문에 '금리 인상' 시기에 적합한 대출이다.

또 분할상환은 원금과 이자를 조금씩 나눠 갚는 구조이다. 일정한 기간 동안, 예컨대 3년 동안 이자만 갚다가 대출 만기 후 원금을 한꺼번에 갚을 경우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진다. 따라서 정부가 고정금리·분할상환 주택담보대출을 확대하는 것은 가계부채의 구조를 개선시킬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은행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이미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이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시중은행들은 당국의 권고에 따라 대출 고객에게 고정금리를 권유하거나 갈아타도록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 가시화로 인해 한국은행도 기준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국내 상황은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금리 인하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시장에서는 이미 올해 상반기 안에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마크 월턴(Mark Walton) BNP파리바 이코노미스트는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이 한국은행 금리정책의 주요 테마가 될 것이다. 내수 시장 부진과 글로벌 경제의 역풍을 반영해 한국은행이 3월 한차례, 2분기 중 한차례 총 0.5%포인트의 금리 인하를 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 경우 높은 고정금리 주택담보대출을 받았거나 갈아탄 차주들은 또다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분할상환의 경우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것이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면에서는 효율적이지만, 실제로는 저소득 가구의 채무불이행 위험을 높인다. 가처분소득에서 원리금 상환액 비율이 40%를 넘는 가계부채 고위험군은 19.4%, 약 234만 가구에 이른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정금리와 분할상환 둘 다 가계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대책은 아니다"고 전제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은 현재 빚을 진 가계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저금리에 돈을 빌려 주택을 구입하는 자금, 즉 부동산 경기 부양에 약간의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한 "정부가 내놓은 2%대 고정금리 대출은 기존 채무자들에게 숨통을 트여줄 수 있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2% 아래로 내려간다고 해도 대출금리가 더 낮아질 가능성은 적다"고 우려했다. 이는 금리 인하 시기에는 은행들이 가산금리를 인상해 대출이자의 축소를 막기 때문이다.

□ 고정금리로 갈아타다 낸 중도상환 수수료 '1조' = 고정금리 전환으로 인해 발생한 중도상환 수수료 역시 서민들에겐 짐이 되고 있다.

신학용 국회 정무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조사 결과, 지난해 7개 시중은행이 거둔 중도상환 수수료 수입은 총 2825억원이다. 최근 5년 사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2010년과 비교하면 31.9%가 증가한 규모다.

은행별로 볼 때 최근 5년 동안 중도상환 수수료는 국민은행 3243억원, 우리은행 2334억원, 신한은행 2031억원 순이다. 외환은행은 5년 사이 중도상환 수수료가 20억원에서 107억원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심지어 공기업인 한국주택금융공사는 보금자리론, 내집마련 디딤돌, 적격대출 등 정부 정책 상품으로 같은 기간 3186억원의 수수료 이익을 챙겼다.

신학용 의원은 "금융위가 고정금리 전환을 유도해도 당장 중도상환 수수료 낼 여유 없는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면 변동금리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시중은행 탈락한 제2금융권, 정책 외면 = 정부의 정책이 시중은행과 제도권에 맞춰져 있는 점도 심각한 문제이다. 새마을금고 등 상호금융회사나 보험회사, 대부업체 등 비은행 대출은 정책적 혜택에서 멀어져 있다.

제2~3금융권 대출 수요자는 시중은행 대출 심사에서 탈락하거나 자격 요건이 안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득이 적거나 신용등급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더 높다.

금융위 조사 결과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2013년 기준 328조원, 이중 소득이 파악된 대출은 64.5%에 그친다. 또 상호금융권은 소득 인정 비율인 DTI(debt to income) 미적용 대출 중 상당수의 상환 능력 심사를 생략했다. 상호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은 2008∼2011년 평균 14.1%를 기록하다가 지난 2012년 6%, 2013년 7.3%, 2014년 9월 11.3%를 기록하고 있다. 은행의 경우 6.2%이다.

김기준 국회 정무위원회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한국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빚에 허덕이는 '한계 가구'는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12.5%, 137만 가구에 달했다. 

부채상환 부담률(DSR)이 40%를 초과하면 가계부채 고위험군, 즉 잠재적 한계 가구로 분류된다. 한계 가구는 2012년 10.4%에서 2.1%포인트, 가구 수로 약 26만 가구가 증가했다.

김기준 의원은 "가계부채 고위험군과 한계 가구 비중이 모두 증가했는데, 정부가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개선되고 있다는 설명과 다르다"고 비판했다.

소득별로는 저소득층일수록 한계 가구 비중이 높다.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의 28.6%가 고위험군이며 21.7%는 한계 가구에 해당한다. 반면 소득 5분위(소득 상위 20%)의 경우 각 15.9%, 9.4%이다.

김기준 의원은 "소득 1~2분위 저소득층, 자영업자와 불완전 취업자 등 금융권 이용자들은 가계부채 상환에 취약하다"며 "그동안 정부가 추진한 국민행복기금과 가계부채 대책은 취약 계층의 상환 압박 완화에 실효성이 없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