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은 관계없다는 MB, 측근들은 검찰조사 대상이 되고...
오는 31일부터 시작될 예정이던 역대정부 및 공공기관의 해외자원개발사업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가 증인채택 문제로 일단 무산됐다. 예정대로 청문회를 실시하려면 늦어도 일주일 전인 24일까지 증인을 확정해야 했지만, 핵심증인을 두고 여야의 이견이 워낙 큰 상황이다.
MB정부의 자원외교 실패를 문제삼는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소위 ‘자원외교 5인방’을 포함한 MB정부 관계자 160여명을 증인으로 요구하고 있다.
반면 새누리당은 노무현 참여정부 역시 자원외교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정세균 의원 등 참여정부 인사 50여명의 증인채택을 요구하면서 맞불작전에 나섰다.
특히 여야가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부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증인채택여부다. 새정치연합은 몸소 ‘VIP자원외교’에 나서 28건의 MOU(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자원외교를 강력히 추진한 이 전 대통령이 증언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새누리당은 이 전 대통령이 해외자원개발 정책 수립에 관여한 바가 없고, 공기업들의 투자결정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없다며 ‘전직 대통령 망신주기’, ‘정치공세’라며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2일 발간한 자신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통해 “자원외교는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걸쳐 나타나는 장기적인 사업”이라며 “퇴임한 지 2년도 안 된 상황에서 자원외교를 평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자원외교의 성과에 대해선 “총 회수 전망액은 30조원으로 투자 대비 총 회수율은 114.8%에 이르고, 전임 정부(노무현 정부) 시절 투자된 해외자원 사업의 총 회수율 102.7%보다도 12.1%포인트가 높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해외자원개발의 총괄지휘는 국무총리실에서 맡았다”며 “국내외의 복잡한 현안에 대해서는 내가 담당하고, 해외 자원외교 부문을 한승수 총리가 힘을 쏟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면서 선을 그었다.
다만 이 전 대통령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총 회수율’이라는 개념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정부가 기존에 사용하던 투자회수율로 계산하면 해외자원개발사업 투자회수율은 참여정부가 72.8%, MB정부는 13.2%에 불과하다.
그러나 총 회수율은 자원외교 5인방으로 지목되고 있는 윤상직 장관이 산자부 취임 후 등장한 개념으로, 야당은 윤 장관이 자원외교 실패를 감추기 위해 수치와 개념을 조작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고 윤 장관은 공신력 있는 회계법인의 자문을 받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MB 자원외교’는 ‘노무현 자원외교’의 계승발전?
‘자원외교사업’은 단순히 이명박 정부에서만 추진한 정책은 아니다.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기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꾸준히 추진된 정책이다. 국회 자원특위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노무현 정부의 ‘제3차 해외자원개발계획’을 승계했을 뿐”이라고 강조하며 참여정부 책임론을 거론하고 있다.
권 의원의 주장대로 노무현 정부는 정권말기인 2007년 8월, 향후 10년간(2007~2016년) 해외자원개발 목표와 정책방향을 담은 ‘제3차 해외자원개발계획’을 마련했다.
계획에 의하면 해외자원개발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자원개발 관련예산을 지속적으로 확대, 매년 1조원 이상 10년간 10조원을 투자하며, 연평균 5000억 원 규모의 자원개발펀드를 활성화해 풍부한 시중자금을 자원개발에 투자토록 유도할 방침이었다.
또 대한석유공사 등 자원개발 공기업들의 기술개발 조직도 확충하고 매출액의 2~3%를 R&D에 투자하도록 유도하도록 했다. 다만 공기업의 경우 국내에서는 공공성을 중시하더라도 해외진출 시에는 ‘수익성’을 최우선시 하도록 했다.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자주개발률(전체 에너지 수입량 중 자국이 직접 생산하는 비율)을 설정한 부분이다. 참여정부는 2013년에는 20%, 2016년에는 28%까지 자주개발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장기 목표도 설정했다.
즉 새누리당의 주장대로 참여정부가 해외자원개발정책을 추진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MB정부가 그 기조를 따라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MB정부가 기존에 정한 계획 이상으로, 또 수익성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무리하게 자원개발외교를 추진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MB정부는 2011년 6월 열린 제90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2010년 말 기준 10.8% 수준에 그쳤던 석유·가스 자주개발률을 2012년까지 두 배인 20%대로 높이고, 유연탄과 우라늄 등 6대 전략광물 자주개발률도 27%에서 35%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한 목표 설정은 자원개발사업을 주도했던 에너지 공기업 3사,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의 무리한 사업확장과 기업 부실화로 이어졌다.
한국석유공사는 2007년 3조6829억 원이었던 부채가 2012년 말 17조 9831억 원으로 늘어났다. 특히 2009년 4조5000억 원이 투입된 캐나다 에너지회사 하베스트와 1조원을 투자한 자회사 정유공사 날(NARL)의 헐값(900억원) 매각이 문제가 됐다.
한국가스공사는 2007년 8조 7458억 원이었던 부채가 2012년 말 32조 2527억 원으로 증가했다. 가스공사는 2010년 캐나다 혼리버, 웨스크컷뱅크, 우미악에 총 1조여 원을 투자했지만 혼리버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곳은 수익성 악화로 사실상 사업을 접은 상황이며 혼리버의 수익률도 1.8%(180억원) 정도에 불과해 빌린 1조원에 대한 이자를 갚기도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국광물자원공사는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과 멕시코 볼레오 구리 광산사업 단 두 곳에만 2조 5749억 원을 투자했다. 광물자원공사의 법정자본금 2조원을 넘어서는 액수다. 향후 국회에서 광물자원공사의 자본금 증액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켜주지 않으면 파산절차를 밟을 수도 있는 상황에 몰려있다.
▲해외자원개발에 맹활약(?)한 ‘MB맨’들
이완구 국무총리는 12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며 ‘부패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특히 이 총리는 “해외자원개발과 관련한 배임, 부실투자 등은 어려운 국가재정에 막대한 부담을 주고 있다”며 “일부 대기업의 비자금 조성, 횡령 등의 비리는 경제 살리기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위”라고 지적해 주목받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17일 “이번에야 말로 비리의 뿌리를 찾아내 그 뿌리가 움켜쥐고 있는 비리의 덩어리를 들어내야 한다”며 “국무총리가 추진하는 부패청산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말고 국민들과 나라 경제를 위해 사명감으로 반드시 해주길 바란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에 호응해 검찰은 포스코(POSCO)와 경남기업과 한국석유공사 등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을 진행했고, 다른 자원개발 관련 공기업과 관련 민간기업들에 대한 수사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검찰은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 주강수 전 가스공사 사장 등 소위 에너지 공기업 3사의 사장들을 출국 금지시킨 상태다. 이들은 모두 ‘MB맨’으로 분류된다.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은 MB가 다닌 소망교회 신자로, 대우인터내셔널 사장을 역임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해외자원개발사업에도 참여해 수천억 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지만, 2010년 10월 ‘MB맨’ 정준양 회장이 재임하던 포스코가 3조3천800억 원으로 고가 인수한 의혹이 있다.
김신종 전 광물공사 사장은 TK(대구·경북)와 고려대 인맥으로 분류된다. 산자부 관료 출신인 그는 지난 2012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암바토비 니켈광 개발사업 때 경남기업 보유 지분을 고가 매입해 광물공사에 116억 원 가량의 손해를 끼친 혐의가 있다.
주강수 전 가스공사 사장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종합상사를 거친 ‘현대맨’으로, 현대그룹 10개 계열사의 사장과 회장을 지냈던 MB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 역시 정의당과 시민단체로부터 배임 및 직무유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세 명 모두 공교롭게도 MB 취임 첫해인 2008년 각 공기업의 사장으로 임명됐고, MB 재임기간 중 해외자원개발의 첨병으로 맹활약했다. 또 그 활약을 인정받아 3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1년 더 연임한 공통점도 있다. 세간이 그 세 명에 대한 검찰수사를, 또 MB를 주목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