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담' 해소했지만...'정책불신'은 남았다 = 기획재정부가 2013년 세법개정에 따른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세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방안을 담은 '연말정산 보완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고소득층도 이 같은 세제상의 혜택을 보게 됨으로써, 정부가 당초 공언했던 고스득층의 세부담을 늘리겠다는 2013년 세법개정의 취지 자체가 무색하게 됐다. 더욱이 세부담 추계를 엉터리로 해 작금의 사태를 자초한 거 아니냐는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사진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당정협의를 갖고 있는 모습. (사진 김용진 기자)
'13월의 세금폭탄' 논란으로 온 나라를 뒤흔들었던 연말정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연말정산 보완대책)이 나왔다.
정부는 가장 큰 논란거리였던 자녀관련 공제체계를 '통합'에서 '세분화'로 재전환시켜, 세법개정(세액공제 전환)에 따라 발생한 근로자의 세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방향성을 설정했다.
특히 공제대상 지출이 적은 1인 가구에 대한 세부담을 해소시켜 주기 위해 근로소득 세액공제를 확대하거나, 표준세액공제 공제금액을 인상하는 방안도 함께 제시했다.
보완대책의 타겟은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는 세부담이 늘지 않는다"는 정부의 당초 세수추계와는 달리, 크든 작든 세부담이 증가한 근로자층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세부담을 완전히 덜어내 '서민증세'로 치부되는 연말정산 논란을 잠재우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2013년 세법개정의 '명분'은 지키되 '실리'는 대부분 포기한 것이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정부의 세부담 수준 추계가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13년 소득세법 개정효과 분석' 자료에 따르면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 1316만명 중 1156만명(85%)은 세부담이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 대다수가 세부담이 줄었고, '세금폭탄' 수준의 우회 증세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정세액(공제를 빼고 실제로 낸 세금,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구간)이 이를 증명한다. 기재부가 당초 추계한 결정세액은 4590억원이었으나, 연말정산 분석결과 4279억원으로 오히려 311억원 감소했다. 1인당 평균 세액이 3만원 가량 줄어든 규모다.
다시 말해 2013년 세법개정에 따른 세부담 증감은 정부의 당초 추계와 대체로 유사했던 셈이다.
문제는 정부가 놓쳐버린 '15%'였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근로자 중 205만명은 정부의 애초 설명과는 달리 세부담이 늘었다.
특히 총급여 수준이 낮은 구간에서의 세부담 증가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급여 2500~4000만원 구간에서 세부담이 증가한 근로자가 70%(142만명)에 달했다. 이들 근로자들은 1205억원 규모의 세부담을 안게 된 반면, 세법개정 이전과 세부담이 동일한 근로자는 11만명에 그쳤다.
급여 4000~5500만원 이하 구간 근로자의 세부담도 387억원이 늘었으며, '면세점' 근로자로 분류되는 2500만원 이하 구간도 46억원 규모의 세부담을 짊어졌다.
공제대상 지출이 적어 세액공제 전환 효과를 충분히 받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세액공제 전환에 따라 과세미달자도 세부담을 짊어지는 '황당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세법개정에 따른 전체 근로자의 결정세액도 24조2000억원으로 집계, 2013년 대비 1조9000억원 증가했다.
연말정산 미제출자(30만명), 중복신고자 등을 포함하면 결정세액 증가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폭탄'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2013년 세법개정안에 대한 정부의 잘못된 정책홍보와 부실한 세부담 증감 추계로 근로자들의 박탈감을 키우고 연말정산 대란을 불러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증명됐다.
문제는 또 있다.
보완대책이 입법될 경우 자녀세액공제·근로소득세액공제 확대 등의 영향으로 5500만원 이하 근로자의 세부담은 없어진다.
실제 5500만원 이하 세부담 증가자 205만명 중 202만명(98.5%)는 세부담 증가분이 전액 해소되고, 나머지 2만7000명의 경우도 1인당 평균 세액이 9만원 줄어들면서 세부담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부담을 늘리도록 한 급여 7000만원 초과 근로자도 덩달아 혜택을 보게 된다. 여기에 세법개정 이전과 비교해서 세금을 적게 부담한 근로자의 경우도 '어부지리'로 환급받을 가능성이 높다.
"고소득층의 세부담을 늘리겠다"는, 현오석 경제팀의 2013년 세법개정 취지를 최경환 경제팀이 무너뜨린 셈이나 다름없다.
안팎에서는 정책생산 초기 단계에서 세부담 증감 추계 방식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보완대책을 발표하기 위해 2014년 귀속 근로소득 지급명세서를 제출한 1619만명에 대한 전수 분석을 했다는 점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반증한다.
정부가 세액공제 전환을 설계할 당시 최저 800만원부터 최고 100억원 초과의 급여구간별 공제항목 등이 상세히 구분된 통계자료를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세부담이 증가하는 상대적 소수를 간과하면서 이 소수의 목소리가 다수의 목소리로 전환, 연말정산 대란을 불러일으켰다.
매년 세수결손으로 나라곳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통계 오류로 4000억원(보완대책 세부담 경감 규모) 이상의 세수구멍을 또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세액공제 전환을 통해 과세형평성을 1보 전진 시키려다 되려 2보(세액공제 신설·확대, 추가납부세액 환급) 후퇴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