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12월결산 과부하…못믿을 회계감사

기업들의 외부감사 기능이 떨어져 회계투명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기업의 대부분이 12월 결산법인이어서 회계감사 수요가 짧은 기간에 일제히 몰려 회계감사의 품질저하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우리나라 외부감사 대상법인의 대부분이 1월초부터 3개월 사이에 기업의 결산작업에서 시작해 회계법인의 외부감사, 주주총회, 법인세 신고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다 거쳐야 해 곳곳에서 과부하가 걸리고 있다. 현행법상 사업연도 종료 3개월 이내에 이 절차를 모두 마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외부감사(이하 외감) 대상 법인은 총 2만4058개사이다. 이들 기업의 93.9%에 달하는 2만2596개사가 12월 결산을 채택하고 있어 결산월 편중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같은 쏠림 현상으로 해당 기업은 물론 감사를 수행하는 회계법인과 소속 공인회계사들의 업무 과부하로 제대로 된 감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회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외감 법인 93.9%가 12월 결산…회계법인 과부하로 부실감사 우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결산월별 외감 대상 법인 비중을 보면 12월 결산 93.9%, 3월 2.0%, 6월 1.5%, 9월 0.8%의 순으로, 12월 결산을 채택하고 있는 기업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법, 외감법,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 등 관련법(기준)의 결산신고 절차를 보면 기업들은 주총일 6주전까지 재무제표를 감사인에게 제출하고, 감사인은 받은 날로부터 4주내, 정기주총 일주일전까지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이에 따라 12월 결산법인들은 3월말까지 재무제표 감사와 정기주총을 거쳐 결산을 확정지은 후, 법인세 신고까지 마쳐야 하는 빡빡한 일정을 보내야 한다. 

이렇다보니 기업들은 1월 중 결산을 완료해 재무제표를 감사인에게 넘기고, 감사인은 2월초에서 3월 중순까지 무려 2만2596개에 달하는 회사의 개별·연결 회계감사를 모두 끝내야 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 따르면 지난 1월말 현재 회계법인수는 회계사 100인 이상 법인 9개, 50인 이상 11개, 10인 이상 121개와 감사반 16개, 10인 미만은 감사반만 240개 등 총 397개에 불과하다.

이를 단순 평균하면 1개 법인 당 약 57개사의 결산 회계감사를 최장 6주 안에 끝내야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열악한 감사환경 아래서는 꼼꼼하고 예리한 감사인의 모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강성원 회장은 “3월말이라는 촉박한 데드라인에 맞춰 모든 공인회계사들이 밤낮으로 감사업무를 수행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회계 전문가로서 의구심을 갖고 예리하게 지적하는 감사인 모습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 회계법인의 감사담당 회계사는 “2011년 K-IFRS 채택으로 연결재무제표가 의무화돼 종전 기업회계기준을 적용하던 기업들도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는 등 업무가 가중되고 있다”며 “반면에 감사시간이나 피 감사기업들의 미온적 수감태도 등 감사환경은 더 열악해져 회계사들의 내부불만이 높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 회계투명성 수준 악화...감사시간 부족, 재무제표 공시 시한 연장 등 목소리 높여

지난해 금융감독원이 상장기업 경영진과 감사 담당 회계사, 회계학 교수 등을 대상으로 회계감독 분야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이들은 우리나라 회계투명성 수준이 악화되었다고 응답했다. 이와 함께 외부감사 기능이 미흡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들은 ‘재무제표 공시시한’ 연장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응답자들은 지난해 회계투명성 수준은 3.91점(7점 만점)으로 전년도 4.04점보다 악화됐다고 평가했다. 기업 경영진의 낮은 인식과 기업 지배구조 낙후성으로 이같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감사시간에 대해서는 기업측과 회계사들의 시각이 달랐다. 기업 CEO들은 전년도의 4.68점보다 높은 4.74점을 부여해 감사시간이 늘어나 개선된 것으로 평가했으나 회계사들은 전년도의 2.49점보다 낮은 2.42점으로 평가해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이로 인해 회계 법인들은 12월 결산 감사 시 임시·계약직 회계사들을 한시로 고용해 감사시간과 일손 부족을 메꾸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련된 회계사를 주축으로 한 회계감사가 이뤄질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밖에 사업연도 종료 후 90일 이내로 되어 있는 재무제표 공시시한에 대해서는 기업과 공인회계사, 학계 모두 전년대비 낮은 점수를 부여함으로써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관계자 모두가 시한이 촉박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 측도 “12월 결산법인의 경우 재무제표 작성과 외부감사, 법인세 신고 등이 겹치면서 외부감사업무 수행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공시시한 연장이 필요하다는 공인회계사들의 목소리가 거세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한 회계법인 대표는 “감사가 제대로 수행되려면 기업 실무자나 공인회계사 모두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많은 회계사들이 피로도 증가는 물론 주의 깊은 업무 수행이 어렵고 시간 부족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의 실무자들 역시 비슷한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기업 관계자는 “K-IFRS 도입 이후 연결재무제표 작성 부담이 증가했다”며 “사업연도 종료후 3개월 내 주주총회, 결산감사 사업보고서 공시 등을 병행해야하기 때문에 업무 과부하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만큼 결산환경이 어렵다는 반증이라는 것이 회계업계의 지적이다.

■ 주주권리 보호 소홀, 부실감사 우려…제도 개선 목소리 높아

이처럼 12월 결산 법인들의 회계감사·주주총회·법인세 신고 시한 등이 3개월이라는 기한에 집중되는데 따른 부작용으로 주주권리 행사 보호 소홀과 부실감사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주주의 권리 중 대표적인 것은 이익배당·잔여재산분배청구권과 함께 주주총회에 참가해 회사의 부당한 경영을 방지·배제하는 의결권, 주주총회결의 취소권 행사 등이다.

하지만 대부분 기업의 결산이 12월에 몰려있다 보니 주총일이 같은 날짜에 동시다발로 열리고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아예 주주총회장 입장조차 막히는 일이 빈번해 주주총회에서의 권리 행사가 쉽지 않은 문제점도 노출되고 있다.

올해 12월 결산 상장사의 주총의 경우 지난 3월 16일부터 27일까지 12일 사이에 1722개사가 주주총회를 열었다. 전체 상장사 1808개사의 약 95%가 불과 10여일 사이에 열린 것이다.

특히 지난달 13일 68개사, 20일 409개사, 27일엔 무려 810개사가 한 날, 한시에 동시 개최됐다. 이로 인해 3-4개의 회사에 분산투자한 주주는 절반도 주총에 참석 못하게 되는게 현실이다. 그마저도 일부 기업의 경우 주주총회장 입장을 교묘하게 방해해 발길을 돌리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반 소액주주들이 주총에 참석해 고유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결산기 변경 인센티브 제공, 법인세 신고시한 연장 등... 제도개선 필요

그렇다면 개선책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결산월 분산, 법인세 신고시한 연장과 같은 실질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결산월 분산이 어렵다면 최소한, 3월말 법인세 신고시한이라도 1~2달 늦춰서 회계사들의 업무 과부하를 막아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강성원 회장은 “선진국의 경우, 결산기가 3·6·9·12월 등 골고루 분산돼 충분한 인력 투입과 철저한 회계감사 수행 환경이 마련돼 있다”며 “우리의 경우 외감 법인과 일반기업까지 합하면 약 45만개에 달해, 결산기 분산이 필요하며 이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법인세 신고 시한만이라도 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형 회계법인 회계사 역시 “자본시장 등 이해관계자들이 많은 상장기업은 현 제도를 따르더라도 비상장법인만이라도 법인세 신고시한을 늦춰주거나, 결산시기 변경 시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제 싫든 좋든 12월 결산 법인의 회계감사·주주총회·법인세 신고 시한 등 현행 제도에 대한 합리적 조정이 시급하다는 것이 회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앞으로도 경제규모 확대에 따른 외감 법인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유한회사와 비영리법인 등을 감사대상에 포함시키는 ‘외감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어서 조만간 이들 기업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감사인은 외부감사를 통해 기업의 자의적인 회계처리와 분식에 대한 유혹을 감시해야할 전문직업인이다.

이들이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공익적 책임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법과 제도의 개선을 통해 합리적인 감사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 특히 그동안의 법과 관행이 과연 합리적이었는지 깊이 고민할 때가 됐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공인회계사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이 외감법인 포함 약 45만 여개에 달하는 기업들의 각종 결산과 관련된 신고시한의 쏠림 현상에 따른 과중한 업무로 정신적·육체적으로 사선(死線)을 헤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