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길진 칼럼] 몸으로 지켜낸 서대문형무소
지난 12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했다.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안내로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들어선 하토야마 전 총리는 유관순 열사가 수감됐던 여옥사 8호 감방에 헌화하고 열사의 치열한 삶을 전해 들었다. 또 애국지사들이 투옥된 옥사 내부를 살펴보고 순국열사 추모비에 헌화했다고 한다.
나는 일 년에 한두 번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는다. 그곳에 가면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다. "젊은이!" 그분들은 나를 그렇게 부른다. 환갑이 넘은 나를 청년 대접해주는 분들은 다름 아닌 역사관의 운영자문위원들이다. 어느 덧 여든 살을 넘나드는 백발이 성성한 원로 학자들을 뵈면 나는 닭장차가 생각이 나 웃음을 짓는다.
1987년 서대문 형무소부지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이 역사적 현장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뜻있는 원로학자 몇 명이 맨몸으로 공사현장을 막아섰다.
투쟁의 기개는 드높았지만, 환갑을 넘나드는 원로들이었기에 몸으로 부딪히는 현장에선 역부족이었다. 그때 지켜보던 내가 불쑥 나서서 일장 연설을 했다.
"우리 독립지사들의 혼이 살아있는 이곳을 철거한다는 것은 우리의 선산을 팔아치우는 바와 다를 바 없습니다."
원로들은 갑자기 나타난 젊은이의 도움에 용기백배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지는 의아해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원로들은 나를 구청장이나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정치 지망생쯤으로 여겼다고 한다.
그렇게 반대를 외치던 우리는 이른바 '닭장차'에 실려 서울 외곽 곳곳에 분산돼 강제 하차 당했다. 그러면 차를 타기위해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지금의 운영자문위원들의 주축은 다름 아닌 그때 그 닭장차 인연들이다. 지금도 그분들은 "당시 몸을 바쳐 여기를 지켜낸 사람이 아니면 운영자문위원 자격이 없다."라고 단호하게 잘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자문위원들의 평균연령은 해마다 높아만 간다.
"이봐 젊은이, 지금은 정치 안 하나?" 지금도 이렇게 내 안부를 묻는 원로들. 인터넷에 내 이름 석 자만 검색해도 내가 누군지 금세 알 터이지만, 컴퓨터와는 거리가 먼 원로들의 눈에는 내가 여전히 정치적 야심을 가진 젊은이로 보이는가보다.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서대문형무소가 학생들이 역사의 현장을 참관하고 일본인을 비롯하여 외국인들이 들르는 민족의 성지로 거듭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몸으로 실력행사를 했던 그때 일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그때 닭장차를 참 잘 탔구나'하며 미소가 지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