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생각해 보세요. 기분 좋은 일로 세무서를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최근 일선 세무서의 한 직원과 '악성민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 직원은 머뭇 머뭇하더니 빙그레 웃으며, "몇 명이나 되겠어요" 하고 반문했다.
기본적으로 세무서는 업무의 특성상 국민들에게 반가울리 없는 곳이라는 의미가 담긴 질문이었다. 아울러 악성 민원은 세무서 직원이라면 어쩔수 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알았는지는 몰라도(?), 직원의 대답 속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납세서비스에 대한 불만, 복잡한 과세 방식, 무리한 체납 징수 등 악성민원을 유발하는 원인은 실로 다양하다.
때때로 일선 세무서 직원들은 '분신(焚身)소동' 등 통제 불가능한 납세자의 행동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이는 주로 '납득할 수 없는 과세'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법대로 집행했어도 그것을 좀체 납득하지 못하는, 세금에 대한 뿌리깊은 반발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선 세무서에서 직접 납세자와 면을 맞닥뜨려야 하는 세무서 직원들은 대부분 불만에 쌓인 납세자들의 폭언과 몸싸움을 감수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분신 소동까지 서슴지 않고 벌이는 납세자들의 과격한 행동은 마음에 '참을 인(忍)'자를 새겨 넣는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납세자와 자신의 생명은 물론, 직장 동료와 수많은 민원인들의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었던 위험천만한 순간을 경험한 세무서 직원들은 트라우마처럼 남은 그 날의 기억을 쉽게 지우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잊을만 하면 또…" = 자본주의 사회에선 목숨과도 같은 것이 '돈'이라지만 극단적인 선택이 죄없는 이들의 생명을 앗아 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세공무원들도 더불어 이 사회를 함께 살아하는 우리들의 이웃. 그들은 우리들의 부모, 형제, 자녀일 수도 있다.
"냄새 한 번 맡아봐"
사건은 70대 A씨가 아들에게 각각 1억원 가량의 주택과 빚을 함께 물려주면서 시작됐다.
아들에게 주택과 빚을 함께 물려준 A씨가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증여세를 낼 처지가 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이다.
물려주는 자산 합계가 5000만원 이하일 경우 증여세가 면제되는 터라,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줄 알았다는 것이 당시 A씨의 주장.
문제는 A씨가 아들에게 넘긴 빚의 이자가 A씨 명의의 통장에서 빠져나간 것에서부터 불거졌다. 통장 거래 내역 상 이자를 아들이 아닌 A씨가 내는 것으로 본 국세청은 1억원 상당의 주택만 증여한 것으로 판단해 증여세를 부과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도 세법을 좀 뜯어 보았는지(?) A씨는 '부담부 증여'임을 주장하며 과세에 대한 억울함 호소했지만 국세청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주택 기준시가 전액을 증여세 과세가액으로 결정해 증여세를 과세했다.
불만을 품은 A씨는 일단 세무서에 방문해 해당과의 담당자로부터 이의신청이 가능함을 안내받고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서 1차 상담을 받았다. 상담내용은 이의신청에서 인용을 받기 위해서는 실제 채무자가 A씨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서류가 필요하다는 내용.
분신 소동은 지난 3월31일 오후 A씨가 세무서에 방문, 납세자보호담당관실에서 2차 상담을 받던 중 발생했다.
당시 상담자는 1차 상담과 동일했으며 A씨는 이날 1차 상담 시 안내받은 내용을 바탕으로 아들의 계좌거래내역을 세무서에 제출했다.
하지만 상담직원은 "최종결정은 국세심사위원회를 통해 이루어지며 2차 상담 시 제출된 계좌거래내역 만으로는 실제 채무자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제출한 서류만으로 입증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 A씨. 그는 더 이상 세무서 측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미리 준비한 피로회복제 크기의 병의 뚜껑을 열며 상담직원에게 냄새를 맡아보라고 내밀었다.
순간 수상한 분위기를 느낀 상담직원은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미 흥분한 A씨는 병속의 시너를 본인의 상체에 뿌리고, 한손에 라이터를 들며 분신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세무서 안에는 직원과 민원인 7∼8명이 있던 상황이라 불을 붙였더라면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뻔한 일촉즉발의 상황.
사무실 직원 6명은 분신하겠다고 위협하던 A씨와 계속 대치했고 순간 직원 한명이 경찰에 재빠르게 신고, 경찰관 3~4명이 출동해 A씨에게서 라이터를 빼앗을 수 있었다.
담당 직원은 함께 지구대로 이동해 약 30분간 사건경위에 대한 기초조사를 받았고 이후 경찰서에서 약 2시간 동안 피해자 진술을 한 후 사무실로 복귀했다. A씨는 현주건조물방화미수·공무집행방해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것으로 전해졌다.
분신 소동은 과거에도 몇 차례 있어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세금 체납으로 은행계좌가 압류된 것에 불만을 품고 세무서를 찾아가 인화물질을 몸에 뿌리고 소동을 벌인 40대 B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B씨는 이날 원주세무서를 찾아 인화물질을 자신의 몸과 사무실 바닥 등에 뿌린 뒤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하며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려 했지만, 순간 B씨를 덮친 세무서 직원들 덕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지난 2013년 6월 마산세무서에서는 수년간 쌓인 체납으로 채권압류 조치를 받자, 이를 해제해달라며 항의한 50대 남성이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중태에 빠지기도 했다.
오죽 억울했으면 소중한 목숨까지 걸어가며 납세를 거부하는 것일까. 개인의 사정을 세세하게 헤아릴 수는 없지만 이러한 악성민원인들의 케이스는 대부분 '생떼'에 가깝다는 것이 일선 직원들의 설명이다.
공무원이기 때문에, 세금을 걷는 국세공무원이라는 숙명 때문에 수 많은 일선 현장의 국세공무원들은 이같은 악성민원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악성민원이 국세공무원의 몸과 마음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악성민원인들은 눈꼽만큼도 생각지 않는다고 현장의 직원들은 입을 모은다.
국세공무원들이 (과세)권력을 쥔 집단에 속해 있다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돌곤 한다. 하지만 그 얄궂은 권력 때문에 몸과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받고 있는 이들은 국세공무원이란 이름의 또 다른 이면이다.
기획취재팀 : 이희정, 이현재, 류성철, 박지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