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세(Sin tax)'.
술, 담배, 도박, 경마 등과 같이 사회적으로 요구되지 않는 것들의 매매를 금지하거나 규제하기 위해 부과되는 세금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0년 정부는 술과 담배에 대한 세금을 올리겠다며, 죄악세 논쟁을 촉발시켰다. 정부의 무모한 도전은 '서민증세' 논란으로 불씨가 옮겨지면서 결국 실패로 끝났다.
5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정부의 양손에는 금기어처럼 다루어졌던 그 죄악세가 들려져 있다. 하나는(담배) 논란을 딛고 스스로 쟁취했고 다른 하나는 우습게도(?),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해도 얻어질 것으로 보인다(술).
지난달 30일 하이트진로의 소주가격(출고가) 인상 소식이 전해졌다. 주류업계의 가격동향의 특징은 소위 시장점유율 1위 업체가 가격을 먼저 올리면 나머지 경쟁업체들이 줄줄이 가격을 올린다는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은 소주 시장점유율 1위를 차자히고 있는 제품이다.
경쟁업체인 롯데주류의 '처음처럼'을 비롯해 국내 소주제조업체들의 출고가 인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최근공병보증금 인상 문제와 엮어 맥주가격 인상도 도미노처럼 이어질 전망이다.
원부자재 가격 인상, 물류비 상승 등을 이유로 그동안 미뤄왔던 소주 출고가 인상을 단행했다는 것이 하이트진로의 입장이지만 소주의 비탄력적인 소비성향으로 인해 눈물짓는 소비자들과는 달리 정부는 '표정관리'를 제대로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소주가격 인상의 여파가 주류업계 전체로 번질 경우 주류 출고가에 직접 매겨지는 주세와 교육세, 식당가에서 판매되는 소주가격 인상분에 대한 부가가치세까지 합치면 정부가 챙길 '죄악세수'가 상당한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의 경우 정부가 주도했던 터라 적지 않은 조세저항에 부딪혀야 했지만, 이번 주류가격 인상은 표면적으로는 업계의 '자율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말 그대로 '손 안대고 코 푼' 격이 됐다.
□ 주류가격 인상에 울상짓는 시민들, 정부 곳간만 두둑? = 이번 하이트진로의 소주가격 인상(962원→1016원, 5.62% 인상)은 지난 2012년 말 8%를 올린 이후 3년 만에 이루어진 조치다.
지난 2012년에도 하이트진로가 소주 출고가를 인상한 뒤 롯데주류, 무학, 보해 등이 줄줄이 가격을 인상한 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소주에 이어 맥주가격도 덩달아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수입맥주들이 맛과 가격경쟁력을 내세워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을 넓혀가고 있는 가운데 국산 맥주들이 가격을 올리기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가격인상은 시기의 문제일 뿐 결국에는 이루어지지 않겠냐는 시각도 나온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해 주세 결정세액은 총 2조6000억원 수준이다. 이 중 1조4543억원 가량이 맥주, 1조522억원은 희석식 소주(일반소주)가 차지해 맥주와 소주가 사실상 술 소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소주에 매겨지는 주세는 출고가의 72%. 출고가가 100원이라면 그 중 72원이 주세인 것이다.
하이트진로의 참이슬 후레쉬의 경우 인상 전 가격인 962원 중 693원이 주세로 걷혔지만, 가격이 인상된 현재는 출고가 1016원 중 731원이 주세로 걷히게 된다.
소주 1병당 주세가 5% 가량, 38원이 늘어난 셈이다. 이를 지난해 일반 소주에서 걷힌 주세에 단순대입하면 526억원의 주세가 추가로 걷히게 된다. 여기에 교육세, 부가가치세 증가분까지 고려하면 세수가 더 늘어나게 된다.
하이트진로의 소주가격 인상이 지난 2012년의 경우처럼 업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면 가격대비 소비가 비탄력적인 소주의 특성상 에누리없이, 세수증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특히 소주 출고가 인상이 일반 음식점 소주판매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면 연관 세금(부가가치세)도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소주 가격이 오름에 따라 정확한 추계는 불가능하지만 세수도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소주를 포함한 주류는 가격 대비 소비성향이 비탄력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가격이 늘어나더라도 소비에는 큰 변동이 없다"고 설명했다.
□ 정부, '죄악세'를 거머쥐다 = 이번 소주가격 인상에 따라 그 여파가 전체 주류업계로 번져나간다면 세수부족에 시달려온 정부가 가장 큰 어부지리를 얻게 된다. 가격인상에 대한 비난여론은 주류업계가 다 뒤집어 쓸 테니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으면 세수가 굴러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해 정부가 담뱃값을 올렸던 전례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당시 정부는 담뱃세 인상 등을 통해 담배가격을 기존 2500원 선에서 4500원대로 대폭 끌어올린 바 있다. 담배에 매겨지는 세금은 대표적인 '죄악세'로 분류된다.
정부는 '국민건강'을 앞세워 담뱃값 인상을 시도했고, 이로 인해 여론의 강한 질타를 받기도 했다.
가격을 올리면 자연스레 담배소비가 줄어 국민건강이 증진된다는 것이 정부의 논리였지만, 실제 담배판매량은 잠시 줄어든 뒤 곧 예년 수준을 회복했고 결과적으로 정부의 주머니만 두둑해진 꼴이 됐다.
특히 이번 소주가격 인상은 공식적으로는 정부 정책에 의한 것이 아닌 업계의 자율적 판단에 의한 것이다. 하지만 주류가격의 경우 물가상승 우려 등을 감안해 일정부분 정부가 통제권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주 가격은 업체 자율로 결정할 사안이지만 '물가관리품목'이기 때문에 사전에 인상요인 등을 정부(국세청)에 요청하고 협의를 한다"며 "가격은 자율적으로 올리되 정부의 역할은 원자재, 물가 등 인상요인을 감안해 과도한 인상을 하지 않도록 권유하는 정도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