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김새부터 무등산은 정치적이다. 천왕봉을 정점으로 산세가 불가사리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다. 먼저 다가와 악수라도 건네듯 인간에게 손짓하는 산이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화려함도 갖췄다.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천왕봉 남서쪽의 현란한 입석대에 압도됐다. “터마저 하느님 나라, 고개 절로 숙어라”고 찬탄했다. “먹줄을 퉁겨 깎아 세운 듯하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 정도로 각이 또렷한 바위기둥 무리가 입석대다. 광주에서 올려다본 입석대 북쪽의 서석대는 수정처럼 빛을 뿜고 있다. 그래서 별명도 '수정 병풍'이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전형이라 무등산은 정치적일 수 있다. 산의 높낮이가 완만해 뵌다고 동네 뒷산처럼 드나들 수는 없는 산이다. 강력한 영기(靈氣)가 곳곳에서 팽팽히 똬리를 틀고 있다. 광주 학생의거와 광주 민주화운동으로 불의에 저항해온 빛고을 기질의 원천이다. 무등산을 호흡하며 자라난 광주인들은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마련이다. 환상적이라 더 더욱 정치적인 것이 무등산이다. 환상과 현실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눈으로 볼 수 없다고 속눈썹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천왕봉 남동쪽 지공너들로 들어선다. 인도 승려 지공선사(指空禪師)가 도를 닦은 석실, '세 번 이상 지나면 극락을 간다'는 풍혈대 등이 분명한 이 세상에서 환상의 저 세상을 구현하고 있다. 현대사의 암흑기에 시인 김지하(金芝河)가 처절하게 읊은 바로 그 '타는 목마름'으로 무등산에 든 이들을 무등산은 즉각 위무(慰撫)한다. 무등산 도처에서 펑펑 솟구치는 약수로 그들의 갈증을 씻어준다. 무등산은 치유(治癒)의 산이다.
무등산처럼 별칭이 많은 산도 드물다. 광주의 옛 이름은 무진주(武珍州) 또는 무주(武州)였다. 덩달아 무등산도 무진악(武珍岳) 혹은 무악(武岳)으로 불렸다. 백제시대 광주는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었다.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돌산이 무등산이다. 온통 신비로운 돌과 바위투성이다. 무진악, 무악과 더불어 무등산이 '서석산(瑞石山)'으로도 통하는 이유다.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천변(天邊)에 뜨는 구름 서석을집삼아'(성산별곡)라고 표현한 '서석'이 바로 무등산, 정확히는 서석대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겸 문신인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은 무등산 등산기격인'유서석록(遊瑞石錄)'을 지을 만큼 무등산에 매료되기도 했다.
문인들의 이 같은 호칭과 별개로 무등산은 '무당산' '무덤산'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갑지 못한 어감이지만 그렇다고 무등산의 영험한 기운마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무등산에는 '무당골'이라는 골짜기가 있었다. 대나무에 붉고 흰 깃발을 단 무당의 집들이 산재했던 지역이다. 신기(神氣)가 없는 산에 제대로 된 무당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늘에서 내려 본 무등산은 두리 뭉실, 꼭 무덤처럼 생기기도 했다. 학생의거와 민주화운동 등으로 명예와 목숨을 바꾼 투사, 열사들이 유독 광주에 많은 원인을 이'무덤산'에서 찾는 해괴한 견해가 있으나 터무니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