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조세제도가 소득재분배 기능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거야(巨野)가 된 야권이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열어젖힌 것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이었다.
더민주는 지난 8월, 정부의 2016년 세법개정안에 대응하는 자체 세법개정안을 발표하며 연 소득 5억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최고 41%의 소득세율을 적용하는 소득세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한 발 늦었지만 거야의 한 축, 국민의당은 더민주의 방안보다 더 쎈 세법개정안을 내놓았다.
고소득자에 적용되는 소득세 과표구간을 2단계로 세분화하는 한편, 최고세율을 45%까지 높이는 안이다. 소득세의 10%인 지방소득세를 포함하면 49.5%로 치솟게되는, 엄청난 강도의 방안이다.
거야에 맞서고 있는 정부와 여당은 '당연히' 강경한 반대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특히 절반에 가까운 '근로소득세 면세자'를 그대로 놔둔 채, 고소득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 이유다.
과도한 세율 인상은 탈세유혹을 키우고, 나아가 부유층들의 '코리아 엑소더스'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세율 인상 보다는 고소득자의 탈세를 차단하는 역량을 강화해 세수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巨野, 고소득자 소득세율 인상…'공세적 연합전선' 구축
현재 소득세 최고세율(38%)이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은 1억5000만원 초과다.
더민주의 소득세법 개정안은 '5억원 초과' 과세표준 구간을 새로 만들고, 여기에 41%의 세율을 적용시키는 안이다. "능력이 있는 고소득층부터 우선 더 부담해야 한다"고 이유를 곁들었다.
이 개정안이 온전하게 국회를 통과할 경우 약 7300명(2014년 기준, 과표금액 7조1000억원)의 근로소득세 과세대상자, 1만8000명의 이자·배당·사업·연금·기타소득 등 종합소득세 과세대상자가 최고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각종 세금공제 혜택이 적용, 연 소득이 1억원이 넘어도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 '공제한도 캡'을 설정하는 방안도 추가했다.
구체적으로 과세표준 구간 1억5000만원 이상인 경우 세액공제·감면 한도액을 과표 기준 세율의 7% 수준으로 억제하다는 안이다. 더민주에 따르면 2014년 근로소득 기준으로 1억5000만원 초과 과세표준 구간에 속한 근로자 7만명의 실효세율은 25%였다.
명목세율인 38%보다 12%p 가량 낮은 수치다.
당론과는 별개로 개별 의원이 낸 안도 존재한다. 이언주 의원이 제출한 소득세법 개정안은 '3억 초과' 과세표준 구간을 신설하고 최고세율 45%를 적용하는 안이다.
소득세 최고세율은 1980년 70%에서 현행 38%까지 낮아지는 등 30여년 동안 하향곡선을 그려왔지만 저출산·고령화 등 사회환경 변화로 복지수요가 급격하게 팽창한 만큼, 과거 수준만큼은 아니어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고소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국민의당의 자체 세법개정안은 '3억원 초과 10억원 이하', '1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고, 세율을 각각 41%와 45%로 적용하도록 했다. 이 같은 세법개정을 통한 세수효과는 연 평균 1조7232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복지수요 증가에도 불구, 장기적 세입여건 악화로 재정건전성 훼손이 크게 우려된다"며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으로 추가적인 세원을 마련해야 한다"며 밝혔다.
'수세적 연합전선' 형성한 與·政…'우주방어' 가능할까
'강도'의 차이가 존재할 뿐 '방향성'은 같은 거야의 증세공세에 정부와 여당은 방어전선을 구축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이 할 일은 간단명료하다. 거야의 고소득층 세부담 강화 움직임을 무조건 막아내는 것이다.
정치역학적 측면에서 볼 때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 '집토끼'들이나 다름없는 고소득층에 대한 과세강화 카드를 빼앗길 경우 여당은 정권재창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정치권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무능한 정당'으로 낙인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보수색채가 강한 부유층을 자신들의 '표밭'으로 계산하지 않는 야권 입장에서는 손해날 것이 하나도 없는 장사인데다 '힘'도 있기 때문에 더욱 강하게 정부와 여당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 정부가 결국 밀리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정치역학을 떠나 조세형평성 측면에서 접근할 경우, 고소득층에 대한 대대적인 과세강화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조세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문제를 그대로 놔둔채,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고소득층만 세부담을 더 지우는 것은 조세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 귀속소득 기준으로 근로소득 납세의무자는 총 1668만7000명으로, 802만3000명이 면세 근로자였다. 직전연도인 2013년(약 530만명)에 비해 272만명이 늘어난 규모. 전체 근로소득자 중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근로자 수가 절반(48%)에 달한 것이다.
면세자 비율은 지난 2011년(2010년 귀속소득)에 39%를 기록한 이후 2012년 36%, 2013년 32%, 2014년 31%를 기록하는 등 매년 하락 추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해 초 연말정산부터 적용된 소득세법(세액공제 전환 등)을 비롯해 연말정산 보완대책으로 비율은 48%까지 치솟았다.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 측면에서 볼 때 지금 현재도 상대적으로 큰 액수의 세금을 부담하는 계층에 추가로 세금을 더 내라고 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단순히 수치만 놓고 볼때 올해 초과세수가 2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인 점도 거야의 질주를 막아설 요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당장 정부 곳간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앞으로 돈이 더 필요하니 (세율을)올려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이 발휘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정부와 정치권 모두 면세자 비율 축소라는 명제에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특정계층에 대한 세율인상이 아닌, 전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한 증세(면세자 비율 축소 방안)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더민주는 면세점 이하 소득자에 대한 소득공제·세액공제를 조정하는 안을 정부와 협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당도 일정액 이상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특별세액공제 등 종합한도를 부여하는 안을 내놓은 상태다.
정부에서도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줄이는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며, '근로소득세 최저한세 도입', '근로소득공제 축소' 등의 안이 제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