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유해진은 티켓파워가 없다는 제작사의 물음표에 '럭키'라는 영화로 느낌표를 찍었다.
97년 데뷔 단역·조연으로 '내공'
"작은 배우 있어도 작은 배역 없다"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큰 성과를 거둔다"라는 뜻의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성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 1997년 데뷔 후 10여년간 단역과 조연으로 탄탄하게 연기력을 쌓아온 영화 '럭키'의 유해진(46)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5일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13일 개봉한 '럭키'는 620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코미디 영화 중 최단 기간 400만 돌파라는 신기록도 추가했다. '럭키'는 전통적 비수기로 꼽히던 10월 극장가에서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성과를 내고 있다. 유해진조차 개봉 전 "손익분기점만 넘는다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한 바 있다.
유해진의 '빵야빵야' 총알 세례에 할리우드 흥행 보증수표라는 톰 행크스가 주연한 블록버스터 '인페르노'도 결국 무릎을 꿇었다. 지금은 비록 베네딕트 컴버비치의 '닥터 스트레인지'에 밀려 예매율 2위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현재 추세로 봤을때는 700만 관객도 곧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럭키'는 성공률 100%의 완벽 카리스마 킬러가 목욕탕 키(Key) 때문에 무명배우로 운명이 바뀌면서 펼쳐지는 반전 코미디다.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Key Of Life)'을 리메이크해 운을 뜻하는 영어 럭(Luck)과 열쇠 키(Key)를 조합한 단어 '럭키'를 제목으로 삼았다.
영화는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했지만 큰 뼈대만을 남겨 놓고 한국적인 정서로 스토리를 변환시킨 전략이 주효했다. 전문가들은 '럭키'의 흥행 요인으로 마음 편히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미디의 귀환, 유해진 배우에 대한 독보적인 관객들의 호감, 입소문의 힘을 꼽았다. 한 관계자는 "불쾌하지 않고 유쾌하다. 영화를 보고 웃고 싶어하는 관객들의 만족도를 높였다"고 흥행 이유를 밝혔다.
문화 평론가 하재근은 럭키의 성공에 대해 "굉장히 친숙한 아저씨 캐릭터인 유해진 씨가 주연으로 나온다, 메인으로 나온다 이것자체가 영화팬들한테는 굉장한 하나의 이벤트"라고 평가했다.
◆ 영화 '왕의 남자'를 통해 '충무로의 별'로 우뚝 선 유해진.
◆ '타짜' 고광렬 캐릭터를 만나면서 연기의 꽃을 피웠다.
이제는 소위 잘 나가는 배우가 된 유해진은 한때 단역을 전전했지만 연기의 끈을 놓지 않았고 결국 '원톱' 주연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또 한 번 증명했다.
대학 의상학과를 중퇴하고 서울예술전문대학 연극학과에 다시 입학한 유해진은 20대 대부분을 극단 '목화'에서 보냈다. 연기에 매진하던 그는 1997년 영화 '블랙잭'에서 단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주로 맡았던 역이 전부 단역일 정도로 평탄하지 못한 생활을 보냈다.
유해진 연기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2005년에 왔다. 그해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서 육갑 역을 맡아 1000만 관객을 사로 잡았고 '감초 조연'이라고 불리며 대중들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유해진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는 법이다. 주연이든, 단역이든 상황에 맞게 연기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본인의 연기 철학에 대해 설명했다.
이듬해 개봉한 '타짜'에서 주인공인 고니(조승우)의 참모 고광렬이라는 캐릭터를 만나면서 연기의 꽃을 피웠고 이후 '이장과 군수'(2007) 노대규, '전우치'(2008) 초랭이를 거쳐 '해적:바다로 간 산적'(2014) 철봉으로 이어지면서 코미디에 능한 주연급 배우로 신분상승했다.
유해진 연기력은 코미디 영화만이 아닌 타 장르에서도 빛을 발휘한다. 특히 2010년 '이끼'의 김덕천과 '부당거래' 장석구 역을 통해 연기의 발란스를 맞추기 시작했다. 또 '극비수사', '소수의견', '베테랑', '그놈이다' 등에서 맡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자 충무로로부터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았다.
그 결과 대중은 유해진을 향해 '믿고 보는 배우'라는 칭찬을 보내기 시작했고 티켓파워가 없다는 제작사의 물음표에 '럭키'라는 영화로 느낌표를 찍었다.
최근 tvN '삼시세끼' 어촌편에 차승원과 함께 출연, 참바다 씨란 애칭까지 얻으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찍은 유해진은 차기작 '공조'와 '택시운전사'를 통해 새로운 연기를 보여줄 예정이다. '공조'에서는 남북공조수사에 투입된 강력반 형사 강진태 역을 맡았으며 시대극 '택시운전사'에서는 독일 기자 피터를 돕는 택시 운전사 황기사로 관객을 만난다. 20년을 참고 기다린 유해진의 전성기가 이제 막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