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자를 대상으로 소득세율을 높이는 '부자증세' 기조가 현실화되면서 조세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형평'에 금이 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소득세 과세체계는 오로지 고소득 구간에서만 세율인상이 적용된데 반해, 다수의 중산·저소득층에게 적용되는 하위구간의 세율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소득자가 좀 더 높은 세금을 부담하는 것은 타당한 측면이 크지만, 그렇다고 유독 그 부류만 세금을 더 내라고 쥐어짜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정부가 주장하고 있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정책기조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조세정책이 휘둘린 결과다. 소수의 희생으로 세수를 더 얻고, 다수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전형적인 '포퓰리즘(Populism)' 이다.
부자증세 2년 주기설
지난 2009년 당시 소득세 최고세율 구간은 8800만원 초과시로, 세율 35%를 적용하고 있었다.
이후 2년 마다 복지 확충에 필요한 재원 조달의 수단으로 고소득자만을 겨냥한 증세가 이루어졌다. 2012년 연 소득 3억원 이상 고소득자에게 최고 38%의 세율을 적용하는 체계가 만들어졌고 채 2년도 안지난 2014년 최고세율 과표구간을 1억5000만원까지 떨어뜨려 고소득자 과세를 강화했다.
그리고 또 2년이 지난 올해, 고소득자 쥐어짜기 세율인상은 되풀이되면서 '부자증세 2년 주기설'이 증명됐다.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소득세법 개정안에 따라 내년부터 5억원 초과 구간을 새로 만들어지고, 이 구간에는 40%의 세율이 적용된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40%대가 된 것은 2001년 이후 16년 만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소득세 최고세율(40%)이 적용되는 대상자는 4만6000명. 과표 6억원 초과 구간의 세부담은 200만원, 8억원 초과는 600만원, 10억원 초과는 1000만원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세수효과는 연간 6000억원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는 중산·저소득층 소득구간에선 세율인상이나 구간 신설 등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제 저소득층으로 분류되는 연 소득 4600만원 이하의 소득세율은 2009년 16%에서 15%로 내려간 이후 8년 동안 변화가 없다. 중산층인 8800만원 이하 구간도 24%의 세율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여기에다 각종 공제와 비과세·감면을 확대하면서 '면세근로자'들이 무더기로 양산됐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4년 귀속소득 기준으로 근로소득 면세근로자는 802만3000명이었다. 전체 근로소득자(약 1669만명) 중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는 근로자 수가 절반(48.1%)에 달한 것이다.
올해 정기국회 논의에 앞서 정치권에선 앞다투어 "면세자 비율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세율인상이든 비과세·감면 조정이든 어떤 형태로든 전 소득계층을 대상으로 한 사실상의 증세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소득세 문제의 절대적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야당이 누리과정 예산과 소득세 인상 카드를 '맞딜'을 하면서 자연스레 면세자 비율 축소 논의는 파묻혔다. 이를 두고 조세정책을 정치적 이해관계의 수단으로 전락시킨 졸속 세법개정이라는 시각도 상당수다.
기재부도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 면세자 비율을 줄인다는 기본 정책방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조세저항을 우려해 인위적으로 세율을 높이는 대신 소득공제 제도를 축소하는 이른바 '우회증세'를 하겠다는 입장. 일각에선 일정 소득을 넘었을 때 세부담을 지게 하는 '근로소득세 최저한세율'을 도입해야 한다고 하나, 정부가 이 카드를 선택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국 근로소득자의 면세자 수를 줄여나갈 것을 계속해서 권고하고 있는 상태다. OECD 평균 면세자 비율은 16% 정도다. 미국(32.9%), 일본(15.8%), 캐나다(22.6%), 독일(19.8%) 등 OECD 주요 국가의 면세자 비율에 비해 우리나라의 비율은 크게 높은 편에 속한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고소득자만을 표적으로 한 세율인상은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대원칙에 어긋난다는데 입을 모으며, '담세능력(세금부담능력)'이 있다면 면세자에게도 일정액의 세금부담을 지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