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근로자들이 있다.
810만명. 이 숫자는 전체 근로소득 과세대상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월급을 많이 받는 고소득 근로자는 높은 세부담을 떠안고 있는데 반해, 상당수가 저소득 근로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한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현행 근로소득세 과세체계를 둘러싼 '과세형평성' 논란은 줄곧 제기되어온 문제다.
정부는 이미 현재의 소득·세액공제 제도 손질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낮추겠다는 방향성을 설정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이 문제를 두고 국민 여론을 수렴하는 자리가 마련되면서 면세자 축소 작업이 수면 위로 부상한 상태다.
복지재원을 조달하는 측면이 아닌 '넓은 세원-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에 부합되도록 과세체계 정비를 준비하는 만큼, '면세권역'에 포함되어 있는 저소득 근로자들의 세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의 이른바 '거위털 뽑기식' 증세 작업은 조세저항만 불러일으킨 바 있다.
조세논리만 따져 면세자를 억지로 줄이려 할 경우 지난 2015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연말정산 대란과 같은 사단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경고음'이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다.
근로소득자 절반, '소득세 0원'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소득세법 개정은 각종 공제제도의 체계를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꾸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세액공제는 산출세액에 대해 일정한 금액을 공제하기 때문에 저소득층에게 유리한 공제방식이다.
그런데 2015년 초(2014년 귀속 소득), 연말정산을 실시한 결과, 정부의 당초 발표 달리 '총급여 5500만원 이하' 구간 근로소득자의 세부담이 감소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후 추가 보완정책에 대한 요구가 쇄도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고 2014년 귀속 소득에 소급적용했다.
문제는 저소득 근로자의 세부담을 기계적으로 낮추면서, 면제자를 크게 늘리는 엉뚱한 결과를 초래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근로소득세 면세자는 2013년 귀속소득 기준 약 530만명에서 2014년 약 802만명으로 무려 272만명이나 늘었다.
이듬해인 2015년은 810만명까지 치솟았다.
납세대상자(약 1733만명)의 46.8%에 달하는 수치다.
과세미달자는 급여가 상대적으로 적은 중산·저소득층이 대다수였고, 이 소득 구간에서 면세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1000~1500만원' 소득구간의 면세자 비율은 소득세법 개정(세액공제 전환 등) 이전인 2013년 37.6%에서 2015년 86.3%로 무려 48.7%포인트 뛰었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면세점보다 높은 소득구간에서 면세자가 늘어났다는데 있다.
'3000~4000만원' 구간 소득자의 경우, 같은 기간 면세자비중이 4.6%에서 30.3%로 25.7%포인트 더 커졌다. 물론 '저소득=과세미달'이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1억원이 넘는 고소득 구간에서도 면세자 비중은 0.2%포인트 늘었다.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 인상이 고려되는 만큼, 면세점에 위치한 근로자를 제외한 중산층이 사실상 '표적 증세' 대상이 될 가능성이 짙다.
우리나라 면세자의 비율은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다.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표한 '2017 조세의 이해와 쟁점(소득세)'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근로소득에 대해 원천징수를 실시하는 일본은 2014년 근로소득 총 신고자 4756만명 중 면세자의 비율은 15.4%에 불과했다.
미국(2014년 기준)도 과세신고 1억2000만건 가운데 면세자로 분류된 신고건수의 비율은 32.5% 수준이었다. 보고서는 "지나치게 확대된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을 축소함으로써 국민개세주의 원칙을 실현하고 납세자 간 형평성을 제고해야 한다"면서도 "납세자인 국민의 공감대를 필요로 하는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후보자 시절 인사청문회에서 소득세 면세자와 관련해 "국민개세주의나 넓은 세원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힌바 있다.
비명 없이... 거위털 뽑기 가능할까?
기획재정부로부터 면세자 축소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의뢰 받은 조세재정연구원은 지난 20일 '소득세 공제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면세자 비율에 대한 조세연의 기본적인 스탠스는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면세자를 줄이는 도구로는 표준세액공제 축소, 세액공제 종합한도 설정, 근로소득공제 축소 등을 들고 있다. 기재부는 "면세자 축소 대안에 대한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상태다.
표준세액공제는 특별세액공제를 신청하지 않은 근로자(1인 가구)에게 13만원을 일괄 공제해주는 제도다. 조세연에 따르면 공제액을 1만원 줄였을 때 면세자 비중의 평균 0.9%포인트 줄고, 세수효과는 1만원 당 235억원 수준으로 분석되고 있다.
세액공제 종합한도는 자녀세액공제, 교육비공제 한도를 총급여액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자는 것인데, 2000~3000만원 이상 근로소득 구간의 공제한도를 85~95%로 묶었을 때 면세자 비율이 최대 10%포인트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로소득공제 축소 대안은 소득세 한계세율이 늘어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전 소득구간에서 세부담이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
면세자 비율 축소 문제를 둘러싸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린다.
조세연이 주관한 공청회에 참석한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근로소득세 비과세자 축소를 추진해야 조세형평에 맞다고 본다"고 밝혔으며, 김진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현재 근로소득공제 수준이 다소 높아 내릴 필요가 있으며, 대신 인적공제 등을 높이는 방향으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김갑순 한국납세자연합회 명예회장(동국대 교수)은 "과연 이상적인 면세자 비율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라며 "무작정 면세자가 많으니 이 상황을 고쳐야 한다고 하면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힘들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종규 한국재정학회 회장도 "연말정산 대란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이런 걸 하겠다고 하면 반발만 나오고 성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다."
2013년 세법개정의 정신을 소개한 당시 조원동 경제수석의 발언이다.
인위적인 세율 인상이 아닌 공제제도를 건드리는 식의 거위털 뽑기 작업은 사상 초유의 세법개정안 '퇴짜'라는 굴욕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수십년째 소득세 감면에 익숙해진 근로자들에게 증세는 받아들이기 힘들 수 있어, 증세의 명분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