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매출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한화갤러리아면세점과 두타면세점(두산)이 뜻하지 않은 '선정 특혜' 시비에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관세청이 지난 2015년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사업자 1·2차 선정 과정에서 평가점수를 고의적으로 높거나 낮게 설정하는 방식으로 한화갤러리아에 신규 면세점 특허를 부여하는 한편 호텔롯데의 면세점 특허를 두산에 넘겨주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면세점 선정을 둘러싼 의혹이 무성했지만 관세청은 면세점 선정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했으며 문제가 있다면 사업자들의 특허를 회수할 수 있다며 논란의 불씨를 꺼뜨려 왔다.
하지만 감사원 감사 결과, 지난 2015년 7월 면세점 1차 선정 과정에서 관세청이 매장면적 평가와 법규 준수도 등 항목에서 점수를 조작해 한화갤러리아가 선정되도록 했다는 사실과 같은해 11월 2차 선정 과정에서도 매장규모 순위적용 방식을 바꿔 롯데면세점(월드타워점)을 떨어뜨고 두산이 새로운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상황이 달라지게 된 것이다.
업계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정책적 판단으로 서울 시내면세점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출혈경쟁이 심화되고 무엇보다 주고객층이었던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한한령 등 보복 여파로 크게 감소,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부정 선정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다는 거위, 배를 갈랐더니... '돌덩이' 우수수
사실 면세점 업계는 중국인 관광객 감소와 과당경쟁으로 진작부터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를 운운하며 엉뚱한 방향의 면세점 정책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 면세점 확장으로 경제활력을 불어넣겠다더니 뜬금없는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정부 스스로 면세점 업계를 고사 위기에 몰아넣는 촌극을 빚어냈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개점한 서울 시내면세점 5개(신세계·HDC·한화갤러리아·두산·SM)의 지난해 9월 기준 총 영업손실액은 1322억원.
서울 시내면세점 업체 선정 당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기 위해 거창한 사회환원 계획 등을 내세워 경쟁에 뛰어들던 기업들 입장에서는 작금의 상황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대기업들의 면세점 독과점 문제 해소 차원에서 지금의 선정 방식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던 지난 2012년 당시는 날로 증가하는 중국인과 일본인 관광객 덕분에 면세점 시장이 호황을 누리던 때였다.
당시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으로 양분됐던 면세점 시장에서 이 두 업체는 2011년~2014년 4년 동안 연평균 3조~4조원의 매출을 올렸다. 면세점 업계 1위였던 롯데면세점은 이 기간 동안 누적된 영업이익만 1조740억원에 달했다.
2013년 1월 특허수수료를 대폭 올리고 중견·중소기업에도 면세특허를 부여하는 한편 5년 주기로 특허를 갱신하도록 하는 관세법 개정안, 이른바 '홍종학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관세청은 이후 이 법에 근거, 2015년~2016년 총 3차례에 걸친 면세점 사업자 선정을 진행했고 1차에서 HDC신라면세점·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SM면세점 2차에서 두산·신세계 3차에서 호텔롯데·현대·신세계 등이 특허권을 획득했다.
단 2년의 시간 동안 서울에만 시내면세점이 2배(6개→12개)가 된 것이다.
면세점 시장의 호황기가 계속 됐다면 나누어 먹었을지언정 파이 자체가 컷기 때문에 경영상 크나큰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지만 사드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한국관광이 본격적으로 금지되기 전인 지난 1월~2월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수는 1월 56만5243명, 2월 59만790명으로 전년동기 대비 증가세를 보였지만 3월부터는 중국인 관광객 수가 급감, 3월 36만782명, 4월 22만7811명, 5월 25만3359명으로 뚝 떨어졌다.
면세점 업계의 매출의 약 70%가 외국인 관광객에서 나오는데 이 중 90%가 중국인 관광객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사드 문제는 면세점 업계 입장에서는 '사형선고'에 준하는 충격파 였다.
특혜 시비 휘말린 한화·두산…구조조정 시범케이스(?)
한화갤러리아와 두산의 특혜 시비는 안 그래도 면세점 시장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되는 마당에 제대로 불씨를 지핀 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한화갤러리아는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 전인 지난 3일 제주공항 면세점 철수를 선언하는 등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인한 타격을 여실히 드러냈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매출 2848억원, 영업손실 123억원을 기록했다.
백화점 사업에서 이익을 내면서 영업손실이 줄어든 것일 뿐 실제 면세점 사업에서만 438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해 1분기의 경우 매출액 789억원, 영업손실 48억원을 기록했다. 사드 보복이 본격화되기도 전 이미 면세점 사업에서 손실을 낸 것이다.
두산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5월 개장한 두타면세점은 개장 첫해 3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으며 올해 1분기 영업손실은 100억원 가량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미 두타면세점은 800개 브랜드 중 70개가 빠져나가 자체적으로 9개층을 7개층으로 줄이고 폐점시간을 새벽 2시에서 오후 11시로 바꾸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마당에 특혜 시비까지 얹어졌으니, 그야말로 사면초가 처지인 셈이다.
현행 관세법상 특허신청 업체가 거짓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특허를 취소할 수 있다.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김낙회 전 관세청장이 한화 고위층과 부적절한 식사자리를 했다는 사실은 이미 국회에서 문제가 된 바 있다. 한화도 문제지만,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정권 차원의 롯데 손 보기 결과로 사업권을 따낸 두산의 경우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을 챙겨준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왔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 기업이 면세점 선정과정에서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법과 원칙대로라면 특허권을 회수당할 수 밖에 없다.
한화갤러리아와 두산 측은 이러한 상황을 의식한 듯 면세점 선정 과정에서 벌어진 관세청의 잘못일 뿐, 자신들은 관세청을 상대로 로비를 한 것이 없다고 해명했다.
한화갤러리아면세점은 "관세청을 상대로 한 로비는 내부적으로 확인해봤으나 전혀 없었다"고 밝혔으며 두산도 "개별 기업의 비리 문제가 아니다. 특허 획득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엄청난 파장을 예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쪽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다"고 밝혔다.
관세청은 현재 특허권 회수를 논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입장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감사원에서 특혜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 특정업체에 대해 특허 취소 처분을 요구한 바가 없어 아직 취소 검토는 안하고 있다"며 "특정 업체의 거짓이나 부정행위가 있던 것으로 판단되면 법에 따라 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