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0일 김영문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를 제28대 관세청장에 전격 임명했다.
문 대통령이 1992년 제34회 사법고시에 합격, 지난 2015년 대구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을 지낸 김 신임 관세청장을 선택할 줄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시나리오였다.
전임 청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포함한 고위직간 갈등, 면세점 선정 비리 등으로 인해 기관의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강도 높은 내부 개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철저한 '외부인' 출신인 김 신임 관세청장을 선택했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의 '뜬금포' 왜?
김 신임 관세청장은 검사 시절이던 지난 2005년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었다.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그는 문 대통령의 경남고 12년 후배. 엄밀히 따지면 그는 참여정부 사람이자, 문재인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만 놓고 보면 흔한 표현으로 현 정권의 실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개청 이래 최대의 망신이나 다름없는 면세점 선정 비리 등 크고 작은 추문으로 인해 조직의 신뢰와 명예를 잃어버린 채 표류하고 있는 관세청 조직을 바로세우기 위해서는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관세청 조직은 오랜 기간 동안 외부인 출신 관세청장으로 인해 쌓인 '내성'이 상당히 강한 조직. 즉 어지간한 외부인 출신 관세청장이 내려와도 조직 장악이 쉽지가 않아 개혁을 이끌어내기가 상당히 척박한 환경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정권 실세로 분류되는 수장이라면 이야기가 다소 달라질 수 있다.
앞선 관세청장 재직 시절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났던 인사문제를 둘러싼 고위직들간 갈등 등 관세청 내부 기강과 인식 등을 확실하게 뜯어고치기 위해서는 정권과 가까운 힘 있는 관세청장의 인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관세청 안팎에서 제기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김낙회 전 청장과 천홍욱 전 청장이 각각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출신, 내부인 출신 관세청장으로서 면세점 선정 비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새로운 관세청장 인선의 기류가 확 바뀐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망신창이가 된 관세청 내부 분위기를 고려할 때 '관리형'보다는 '개혁형' 수장이 필요했고, 기존 하마평에 오르락 내리락 했던 관료 출신들 중에는 이러한 요구사항을 충족시킬만한 인물이 없다는 판단을 청와대가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면세점 선정 비리 의혹으로 인해 '부정한 집단'으로 낙인 찍힌 관세청은 거대한 개혁의 파도 위에 올라서게 됐다는 것이다.
청와대의 '뜬금포', 관세청도 기재부도 '어리둥절'
검찰 출신 관세청장이 그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재무부 세관국이 관세청으로 독립한 1970년, 첫 관세청장과 두 번째 관세청장이 검찰 출신이었다(이택규 : 재임기간 1970년~1974년, 최대현 : 재임기간 1974년~1978년).
일각에서는 세입징수(관세), 통관 등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는 관세청의 업무 특성을 감안할 때 비(非)전문가 출신 관세청장을 인선한 것은 '실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저 청와대에서 함께 근무했던 고교 후배에게 자리를 챙겨준 것 아니냐는 등 폄하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관세청의 핵심적인 기능은 밀수, 부정수출입행위 단속 등 경제국경을 보호하는 것이다.
특히 마약, 총기 등 국경을 넘나들며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 시도를 차단하는 것이다. 시대의 요구사항이 반짝 반영되면서 FTA활용 등 수출기업 지원(이명박 정부), 세수확보(박근혜 정부)의 중요성이 부각됐을 뿐 전통적인 관세청의 핵심 기능은 변하지 않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검찰 재직시절 마약조직범죄수사부 부장검사, 첨단범죄수사부 부장검사 등을 지내며 마약 밀수 외환범죄 등 수사 경험을 보유하고 있는 김 신임 관세청장을 무작정 비전문가로 분류하기 애매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본적으로 관세청의 마약 및 외환거래 단속은 검찰과의 공조가 필수적인 분야이다.
통관의 경우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전산시스템으로 관리감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전문성 시비거리의 소재로 엮기는 힘들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청와대의 예상치 못한 선택으로 관세청은 술렁이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관세청 관계자는 "외부출신 청장 인선을 어느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파격적인 선택이 이루어질지는 몰랐다"며 "현재 관세청 내부의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내부 출신 청장이 임명되지 않아 아쉽기도 하지만 현재는 개혁이든 뭐든 관세청 조직 분위기를 하루 빨리 추스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새로운 청장이 임명되고 후속적인 인사가 이루어지면 관세청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만 신임 관세청장이 내부의 사정이나 사람들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조직 장악 및 개혁 추진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라고 촌평했다.
그동안 관세청장 자리를 '모피아의 전유물'로 여겨왔던 기획재정부는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청와대 주요 보직은 물론 산하기관 인사에서도 연이어(통계청, 관세청) '물'을 먹자 기재부 내부는 침울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