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세청 국정감사의 최대 이슈는 단연 '국세행정개혁TF(이하 국세행정TF)' 였다.
정치권, 특히 야권의 '공격포인트'는 그야말로 정치적이었다.
청와대 하명(下命) 논란을 비롯해, 국세행정TF가 '정치보복'을 위한 도구로 활용될 소지가 있다는 논란과 함께 국세행정TF 구성이 편파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이 같은 논란은 어쩌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인 듯하다.
애초 국세행정TF 구성을 대내외에 공개하는 단계부터 국세청이 "과거 정치적 세무조사 논란이 있었던 세무조사들을 점검하겠다"고 공표하면서 정치적 휘발성이 강한 재료였다.
한승희 국세청장 취임 후 열린 첫 전국세무관서장회의(2017년 8월17일)에서 구체적인 조직구성과 활동계획이 공개된 국세행정TF는 그동안 명멸을 거듭해 온 수 많은 국세청 내부 개혁 추진체와는 다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
지난 50여년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끊임없이 국세청 주변을 맴돌며 괴롭혀 온 '정치적 세무조사'를 척결할 최적의 방안을 찾겠다는 대의명분을 밑바탕에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군사정권 시절을 제외하고 민주화가 자리를 잡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 현재까지 재임한 10명의 국세청장 중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다.
정치적 세무조사의 본질이 '권력남용'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이러한 적폐를 척결하는 작업은 국세청도 국세청이지만 정권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굉장히 민감한 시기에 국세청장이 직접 앞에 나와 과거 정치적 세무조사 논란이 있었음을 직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이러한 뒤틀린 과거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체계와 제도를 정비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결단'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결과'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정치적 세무조사란...
먼저 '정치적 세무조사'를 제대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대체 무엇이 정치적 세무조사였는가, 라는 질문에 국세청이 납득할 수 있는 답변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국세청이 진행하고 있는 세무조사 중 일정부분은 정치와 연관성이 깊다.
최근 국세청이 전면에 나선 '부동산 투기 세무조사'가 좋은 예다. 정권 차원에서 부동산 투기 차단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는 와중에 국세청이 가진 권한 또한 동원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2008년 태광실업 세무조사는 어떤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세청은 당시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통해 거액의 탈세 혐의를 발견했고 이에 대한 과세권을 집행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정치적 목적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정상적인 세무조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무조사는 정치적으로 악용됐다는 의혹에 휩싸였고 결국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국세행정TF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이처럼 애매모호한 점검대상 정치적 세무조사의 범주를 확실히 갈라, 국민들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전제가 깔리지 않는다면 그 어떤 국민도 국세청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국세행정TF 또한 그동안 국세청이 내놓은 수 많은 '전시행정'의 산물로 국세청 역사의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적 세무조사의 재발을 막을 대책을 내놓는 것이다.
만약 국세행정TF가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정치적 세무조사가 아니라고 결론 짓는다면 이를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될까.
반대로 정치적 세무조사였다고 결론 냈다 치자.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세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탈세 혐의로 추징한 세금을 모두 돌려줄 것인가? 당시 이 세무조사에 개입했던 전현직 국세공무원들을 모두 잡아다 처벌할 것인가?
법률 전문가들은 "국세공무원이 세법에 따라 세무조사를 한 일을 두고 정치적 세무조사라하여 처벌할 규정은 현행 법에 없다"고 선을 그었다. 굳이 처벌을 논한다면 '직권남용' 정도로 검찰에 고발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실 국세청 안팎에서는 정치적 세무조사의 근본적 원인을 '사람'으로 꼽고 있다.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려는 위정자, 그 위정자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여 개인의 영달을 꾀하는 영악한 공직자 등의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정치적 세무조사라는 악습이 암암리에 계속되어 왔다는 지적이다.
국세행정TF는 이 '고리'를 끊어낼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방안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
부정이 개입할 경우 강도 높은 처벌을 명시한 가칭 '세무조사 권력 남용 금지법'이라도 만들어 대통령이든 국세청장이든 정치적 목적으로 세무조사 권력을 휘두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조세일보(www.joseilbo.com)가 중립적 위치에서 세무조사 행정을 관리 감독하는 (가칭)세무조사감시위원회 구성 등 정치권력으로부터 국세청의 독립성을 제고하는 목적의 '국세청법' 제정을 촉구해 온 이유도 유사한 맥락이다.
아울러 이러한 법체계를 통해 국세공무원들이 상층부에서 은밀하게 내려오는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고 양심껏 업무에 임할 수 있도록 근거 규정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정치적 세무조사 시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국세행정TF가 정치적 세무조사 예방과 처벌 근거 등 제도개선 방안을 만들어 낸다면 역사적 평가를 받을만한 일이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