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공무원에 '사법경찰권' 부여 검토 필요"
국회입법처, 조세범칙조사 개선방안 보고서
#. 롯데케미칼의 전신인 호남석유화학은 2004년 고합그룹의 자회사인 케이피케미칼을 인수했다. 호남석유화학은 이 과정에서 승계 받은 기계장치가 낡다는 이유로 1512억원을 손실 처리했다. 이후 국세청을 상대로 감가상각을 해달라며 각종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약 270억원의 세금을 돌려받았다.
그러나 실제 공장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기계를 손실 처리한 사실이 적발됐다. 검찰은 세금을 부정환급 받은 혐의로 롯데그룹 사장을 기소했다. 그런데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된 그에 대해 법원이 "범죄의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장부의 거짓 기장, 허위 증빙 등 조세포탈 범죄를 저질렀어도 이를 입증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조세범죄는 주로 국세청 등 과세관청의 범칙조사 착수로 시작되는데, 세무공무원에게 수사권이 없다보니 탈세 혐의를 추적하는데 한계가 있어서다.
이에 세무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해 수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2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발표한 '조세범칙조사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현재 조세범에 대한 기소율은 22.4%로, 전체 형사범에 대한 기소율(34.6%)에 비해 기소율 자체가 낮다.
조세범죄의 기소율이 낮은 데는 조세회피기술이 지능·전문화되면서 일반 형사범에 비해 범죄혐의 입증이 어렵기 때문이다.
조세범 수사는 일반적으로 세무조사 도중에 범죄혐의가 포착되면 범칙조사로 전환되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사실상 국세청이 조세범죄의 초동수사기관으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세무공무원 신분으로는 조세범법자를 발견·추적하는 과정에서 경찰의 공조 없인 범인들을 검거하기 어려워 조세범 처벌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현재 세무공무원은 조세범칙조사를 진행할 수 있으나, 사법경찰관리가 아니기에 수사는 할 수 없다.
게다가 세무조사에서 범칙조사로 바뀔 때도 세무조사를 진행하던 공무원이 그대로 범칙조사까지 병행하기에 조직과 기능면에서 혼재되어 운영되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주요국에선 조세범칙조사가 어떻게 이루어질까.
미국은 자국의 국세청 내 범죄수사국을 활용한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혐의가 포착됐을 때 세무조사과 직원은 세무조사를 중단하고, 혐의 부분을 범죄 수사과에 넘기는 구조다. 독일 재무관청은 조세형사사건에 관해 검찰의 권한과 동일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의 세무공무원은 조세범칙사건에 관해 특별사법경찰에 준하는 권한을 갖는다.
보고서는 "세무공무원에게도 사법경찰관 신분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세무공무원이 사법경찰 권한을 갖게 될 경우, 수사력이 강화되며 범칙조사를 진행하면서 취득한 진술, 증거물 등이 공판단계에서 증거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국 과세관청의 사례처럼 조세범 추적에 있어 수사를 하는 조직과 세무조사 담당조직을 기능적으로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보고서는 "조세범칙조사가 형사처벌 여부를 판별하기 위한 초동수사의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국세청 내에 범칙조사를 전담하는 조직을 두어 소속 세무공무원이 범칙조사 업무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직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