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한나라당 이계경 의원의 대표발의 형식으로 소득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개정안의 내용은 연말정산시 소득이 없거나 연간 소득 합계액이 100만원 이하인 배우자(가정주부)의 기본공제액을 현행 1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무려 12배 올리는 내용.
개정안의 취지는 소득 없는 가정주부의 가사 노동 가치를 월100만원으로 계산해 세금혜택을 준다는 것. 일견 여성 인권신장을 위한 바람직한 세제지원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제도 확정시 연간 1∼2조원의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지난달 23일에는 민주당 김효석 의원이 소득세법·부가가치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내용은 자녀를 2명 이상 낳을 경우 현행 기본공제액(100만원)에 더해 100∼150만원을 추가 세금공제 해준다는 내용과 분유와 이유식, 기저귀 등의 부가세를 면제해준다는 내용이다.
나날이 떨어지는 출산율로 인해 골치를 썩고 있는 정부의 입장을 감안할 때 개정안 취지대로 '괜찮은' 출산장려 지원책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세금 몇 푼 지원해 준다고 자녀를 더 많이 낳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세수감을 메울 대안도 없는 형편이다.
□ 국회의원들이 나서서 '세법 누더기화'
현재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법안 중 세법 개정안(올해 1월1일 이후 제출된 분 기준)은 30여건.
이들 세법개정안의 내용은 대부분 현재 적용되고 있는 조세지원의 폭을 늘리거나 올리라는 내용들이다. 한마디로 '세금 깎아 달라'는 내용이다.
조세체계를 바로잡는다거나 별다른 실효성 없는 세금제도를 폐지하라는 내용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형편이다. 이들 수 십여건의 조세법 개정안들은 모두 국회의원들의 손에서 제출된 것들이다.
각자의 명분은 명확하게 제시돼 있지만 간판에 불과할 뿐 터놓고 보면 무턱대고 세금감면 폭을 늘리거나 세금을 깎아달라는 내용인 셈이다.
세금감면을 통한 지원효과, 이에 따른 세수손실로 인한 재정영향 등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지역구민이나 이익단체들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된 것들이 대부분인 것. 실태가 이렇다 보니 같은 내용의 세법 개정안이 서로 다른 국회의원의 대표발의로 제출되는 경우도 있다.
국회의원들이 발벗고 나서서 현행 조세법 체계를 뒤흔들어 놓는다는 가시 돋힌 지적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인 셈이다.
□ "이걸 다 들어줄 수도 없고..."‥'난감' 한 정부
지난 2003년 정기국회에서 여성용 위생용품(생리대)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면제한다는 내용의 의원입법안이 통과돼 지난해 4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당초 정부는 여성용 위생용품에 대한 부가세 면제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부가세 면세 대상은 농·축·수산물, 의료서비스 등 생활필수품 중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분야에 한정시켜야 하며 공산품에는 부가세 면제 혜택을 주지 않는다는 원칙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었던 것.
그러나 재경부의 이 같은 논리는 국회 논의과정에서 총선을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정치 논리를 넘지 못하고 꺾이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전년도인 2002년 같은 내용의 법안이 국회 논의과정에서 폐기됐다는 것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4월부터 생리대에 부가세를 면제해 줌에 따라 3∼4% 가량 가격인하 요인이 발생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중에 판매되는 생리대 가격은 요지부동" 이라며 "이런 상황이면 부가세를 면제 해준 효과가 하나도 없는 셈" 이라고 설명했다.
생리대 부가세 면제가 시행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한 술 더 뜬 감면법안들이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특히 유아용 위생용품(기저귀)의 부가세를 면제하자는 내용의 입법안이 제출됐고 나아가 생리대와 기저귀에 대한 부가세를 완전히 없애자는 내용의 입법안까지 제출돼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세입여건과 세수 등을 감안해야 하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세금감면 요구는 난감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마땅한 대체세원 마련 등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다 들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인 것. 아울러 조세형평성과 중립성까지 따져야 하니 여간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다.
재경부 관계자는 "입법주체인 국회의원들의 입김은 정책을 결정해야 할 정부로서는 큰 부담일 수 밖에 없다" 며 "세입여건이 그리 밝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의원들이 제출한 입법안을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상태" 라고 말했다.
재경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국회의원들 입장에서는 민원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것은 잘 알지만 정부의 재정여건 등을 고려치 않고 무턱대고 세금감면 법안을 제출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 라며 "비과세·감면제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세운 정부의 의도와도 전면 배치되는 것" 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③-조세감면 어디서 얼만큼‥규정 1개에 '수천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