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국세청장의 인사정책(개인납세과 우대)의 초반 '반짝효과'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갈 수록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부각되면서 사무관 승진 인사의 근본적인 불만으로 옮겨붙어 그 의미가 점차 퇴색되어 갔던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우수인재들이 사무관 승진이라는 목표에 함몰(?) 개인납세과로 몰리면서 일선 세무서 재산세제와 법인세제 분야의 역량이 전반적으로 약화, 일선 세무서 업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기능저하 문제로 번진 것이 가장 큰 패착이 됐다.
이 와중에 사무관 승진을 위해 거쳐가야 할 관문인 '역량평가' 제도에 대한 실효성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국세청은 사무관 승진 전반에 걸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사개선TF를 만들어 전반적인 의견을 수렴한 뒤 대안을 내놓았다.
사실 이러한 대안은 현실적 측면에서 '청장의 교체'라는 확실한 동력원이 확보되었기에 가능했다.
즉 다른 '인사철학'을 가진 인물의 등장으로 분위기 전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다.
◆…제22대 국세청장 한승희 취임, 인사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 지난해 6월29일 국세청장 취임식에서 취임선서를 하고 있는 한승희 국세청장. 한 국세청장은 그의 평소 성격답게(?) 안정과 균형을 조직운영 모토로 잡았다. 인사에 있어서도 안팎의 주목을 이끌어내는 '파격'보다는 '순리'를 중시하는 스타일. 그의 인사철학이 어떤 평가를 받게될 지 여부는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정形 국세청장' 한승희, 그의 인사철학은?
한승희 국세청장 취임 후 단행된 사무관 승진 인사는 그만의 인사철학이 반영됐다고 보기 애매한 결과물이었다. 실제 지난해 6월 말 취임 후 약 두 달만에 단행됐던 사무관 승진 인사는 역대 최저라는 승진규모(157명)와 더불어 인사방향 등이 이미 전임 청장 시절 어느정도 확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지난해 사무관 승진 인사 결과 일선 세무서 승진인원 36명 중 개인납세분야 승진인원은 22명으로 63%를 점유하는 등 전임 청장이 남긴 유산, 개인납세과 우대라는 원칙이 철저하게 유지된 모양새였다.
하지만 올해 사무관 승진 인사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만들어졌다.
전체 사무관 승진인원 170명 중 일선 세무서 승진자는 35명. 이 중에서도 개인납세과 소속은 9명으로 비율로 따지자면 일선 승진자 중 26%였다. 지난해 개인납세분야 승진자가 일선 승진자 중 63%였던 것을 감안하면 절반 이상 줄어든 셈이다.
일선 세무서 각 분야 중 승진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분야는 10명의 승진자를 낸 재산법인납세과(법인납세과 포함)였다. 인원수로 따지면 개인납세과 승진자와 1명 차이지만 개인납세과 승진 비율이 줄었다는 점에선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임 국세청장의 유산인 개인납세과 우대라는 인사 방향성이 사라진 것이다. 일선의 역량 저하를 부채질했던 우수인재들의 개인납세과 쏠림현상을 완화하기 위한 선택임과 동시에 특정분야를 의도적으로 우대하지 않고 각 분야에서 골고루 승진자를 선발해 낸 것이다.
이는 한승희 국세청장의 인사철학이 그대로 묻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한 국세청장은 인사질서를 다소 흐트러 뜨리더라도 '이벤트' 성격의 파격인사를 곳곳에 심어놓는 것을 즐긴 전임 국세청장과 달리 정해진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순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
당사자 외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인사결과를 내놓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베일에 가려진 특별승진…'투명성' 문제는 풀어야
특별승진은 일반승진과는 달리 뚜렷한 공적이 있는 후보자를 연공서열과 상관없이 전략적 관점에서 승진시키는 것으로 젊고 유능한 인재를 뽑아 올리는 장치이자, 승진최저소요연수 등을 충족했지만 연공서열 등에서 2% 부족한 조직원들을 전속력으로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통상 국세청은 3급 이상 고위직 승진 인사를 제외한 서기관(4급) 이하 승진 인사에서는 전체 승진인원의 30% 정도를 특별승진으로 채워 왔다. 실제 지난 2014년 사무관 특별승진자는 70명(전체 승진인원 227명)이었으며 2015년에는 74명(231명), 2016년은 70명(208명), 2017년은 53명(157명)이었다.
하지만 매년 승진 인사 때마다 별다른 공적도 없는 '그분의 사람' 수 명이 특별승진으로 승진자 명단에 탑승, 눈총을 받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임 전 국세청장 시절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며 결국 감사원으로부터 특별승진 제도 운영의 개선을 권고받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 국세청은 지난해 하반기 서기관 승진 인사에서 특별승진 비율을 15% 수준으로 축소했다. 이에 올해 사무관 승진 인사에서도 특별승진 비율이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국세청은 예년과 유사한 수준의 특별승진 비율을 고수했다.
사무관 승진 후보자의 경우 실무직원들로 서기관 승진과 달리 실제로 공적이 큰 직원들이 많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그럼에도 특별승진에 대한 논란은 고스란히 이어졌다. 이유는 사무관 승진 인사 때마다 공과에 대해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관행이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투명성 부재에 대한 해소를 주장하고 있지만, 국세청 나름의 속사정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루트만 가지고는 본청에서 밤낮으로 일하는 직원들의 경우 지방청 등 소속 직원들에게 승진명부 순위 등에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난이도가 높은 업무를 다루는 본청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또 우수한 인력들을 본청으로 끌어오기 위해서는 특별승진이라는 확실한 당근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특별한 공적이 있는자에게 주어지는 특별승진의 취지가 다소 무색하지만, 국세청의 형편상 어찌할 도리가 없는 형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무관 승진자 중 본청 소속 승진자의 90% 가까이가 특별승진으로 채워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다만 이대로 상황을 놔두기 보다는 특별승진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형태의 인사정책을 고심해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