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상속세제 체계를 손질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 어느 때보다 높게 형성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기업들의 원활한 승계를 지원하는 차원에서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공식화 했고 정치권에서도 이에 편승한 내용들이 담긴 법안을 잇따라 발의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 기(氣) 살리기' 군불은 연신 지피고 있지만, 부자감세라는 이념에 함몰되어 현장의 애로를 제대로 풀지 못해 한껏 달아오른 상속세제 개편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꺾어버릴 경우 정부의 정책신뢰도에 굉장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조세·재정전문가들은 가업상속공제를 포함한 현행 상속세제 체계에 대해 '세율이 주요국에 비해 높고, 지나치게 엄격한 공제요건이 따라붙어 실효성 없는 혜택'이라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상속세제는 어떤 형태로 개편 및 운용되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일까.
단·장기적인 개선방안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 낮춰야"
Q. 재계에서는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이 높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반재벌 정서가 팽배하다보니 정부로서도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현행 상속세율에 대해 어느 정도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는지. (답변은 성명 가나다순)
강성훈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 = 최고 법정한계세율이 높다는 근거만으로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이 다른 국가에 비해 높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부족한 부분이 있다.
상속세부담을 비교하려면 상속세 실효세율(납부세액/상속재산가액)을 활용해야 한다. 최고 법정한계세율인 50%에 해당하는 과세표준 구간의 실효세율(2017년 기준)은 28.36%수준이다. 즉 명목세율과 실효세율의 격차는 21.64% 포인트라고 볼 수 있다.
상속세율의 적정 수준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상속세가 고자산가의 경제행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한 선행 연구가 필요하다.
박종성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상속세율이 매우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상속세 부담이 크다보니 편법·불법 상속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있다. 상속세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상속세율은 각국의 여건과 상황 등을 고려해 결정될 사안이긴 하지만 국제기준도 참고가 될 수 있다. OECD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세율이 높은 편이고 최대주주 할증과세까지 적용되므로 최고세율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규안 숭실대 회계학과 교수 = 우리나라의 명목 상속세율은 50%로 세계에서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주식의 할증평가를 고려하면 65%로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생전의 소득세와 자본이득세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명목 상속세율만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우리나라의 상속세율이 높다는 지적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적정 상속세율을 말하기는 어려우나 독일의 최고세율 30% 정도가 적정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명목 상속세율은 50%이지만 배우자와 직계비속에 대한 최고 상속세율은 30%다.
"유산취득세로 전환, 응능부담 원칙에 부합"
Q. 과도한 세율도 논란거리지만 상속세 과세방식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많다. 일각에서는 유산취득세(상속인이 받은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강성훈 교수 = 상속세의 과세방식을 증여세와 마찬가지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속세의 주된 목적이 부의 집중 완화와 기회 형평성 제고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방식이 더 부합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속세와 증여세 간의 세부담 격차가 크다는 점이다. 이 같은 차이는 상이한 공제제도에서 비롯된다. 세부담 측면에선 증여세가 상속세보다 불리하다.
상속세 신고세액공제가 축소되고 있는 현 상황이 과세방식 전환을 논의하는데 적기라고 생각한다.
박종성 교수 = 상속세와 증여세에 대한 과세체계를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도 상속세 과세방식을 현행 유산세 방식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변경하는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중교 교수 = 유산취득세 방식은 상속재산 총액이 아니라 상속인이 실제 상속받는 재산의 가액을 기준으로 상속세를 결정하므로 응능부담(능력이 있는 자가 세금을 부담) 원칙에 부합한다.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면 상속세를 줄이기 위한 허위분할 등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으나, 과거보다 과세인프라가 잘 갖춰 있으므로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전규안 교수 = 유산취득세 방식은 응능부담 원칙에 부합하는 방식이고, 상속받는 자녀가 많을수록 유리하다. 상속세를 부과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방법도 유산취득세 방식으로서 국제기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중과세 지적 많지만…생전 납부한 세액공제는..."
Q. 상속세 이중과세 문제도 논란거리다. 일각에선 상속 재산이 축적되기까지 피상속인이 성실하게 낸 세금만큼 공제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강성훈 교수 = 상속세의 이중과세는 피상속인의 관점에서 상속세를 바라볼 것인지, 상속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피상속인의 관점에서 상속세를 바라본다면 상속재산의 형성 과정에서 성실하게 세금을 다 납부한 경우 이중과세의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상속재산 중 일부가 실현되지 않은 자본이득이라면 상속세 이중과세 논란은 줄어들 것이다. 상속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부의 집중을 막고 기회의 평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이중과세 논란이 줄어든다.
박종성 교수 = 상속세의 본질은 피상속인의 남아있는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인이 무상으로 재산을 물려받은 것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므로 이중과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전환하면 이중과세라는 주장은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이중교 교수 = 상속세에 대해 피상속인이 납부한 소득세 등과의 이중과세를 지적하는 견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속세는 부의 집중을 완화하고 출발선의 평등을 통해 모든 사람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의 제도이므로 존재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규안 교수 = 상속세를 폐지한 국가들도 있으므로 타당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행정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생전에 성실하게 세금을 낸 만큼 공제해주는 방식보다 근본적인 상속세 부담 완화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업상속공제 활용도 높이는 것이 최우선"
Q. 최근 상속세제가 자주 거론된 데는 가업상속공제가 있었다. 경영 현장에서는 상속세를 공제받을 수 있는 사전·사후 요건이 엄격하다는 지적인데, 이 제도의 개편 방향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강성훈 교수 = 최근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사후관리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 주장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공제혜택을 많이 받은 기업이라면 우리나라 경제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타당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공제혜택이 크지 않은 중소기업의 경우, 사후관리가 까다롭고 엄격하다면 이는 논의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한다.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에 대한 사후관리를 서로 다르게 설계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박종성 교수 = 정부는 2007년 이후 가업상속공제한도액을 지속적으로 인상해 왔으며, 적용 대상기업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전요건 및 사후관리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보니 실제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는 사례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가업상속공제 요건이 엄격한 한 것은 가업의 승계를 전제로 제도가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사후관리 요건 중 상속인이 2년 이내에는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는 요건, 10년간 업종변경을 제한하는 규정 등은 개정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중교 교수 =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적용받는 상속인은 일반상속인과 비교하면 특혜를 받는 것이므로 기업의 존속과 일자리 창출 등을 통해 국가경제에 기여할 때에만 가업상속공제가 정당화될 수 있다.
기업들은 현행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서 공제를 적용받기가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10년간 업종 유지 등 가업상속공제제도의 일부 요건을 완화하되, 그 취지대로 잘 운영되는지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전규안 교수 = 가업상속공제 대상을 확대하거나 가업상속공제 금액을 확대하는 것보다 선행돼야 할 문제는 현 제도 하에서 적용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지난 2016년 기준 가업상속공제를 받은 경우는 76건, 공제금액 3184억원에 불과했다. 적용받는 사례가 부족한 제도를 확대만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따라서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완화해 제도의 적용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피상속인 가업영위기간(현행 10년) 완화, 피상속인 지분율 50%(비상장) 또는 30%(상장) 요건 완화, 고용유지 요건 중 현재의 근로자 수유지 요건 외 총급여 요건 추가, 사후관리기간 단축(10년→5년) 등 방향으로 해야 한다.
"경제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기업상속공제'로 용어 전환"
Q. 세제지원에 명분이 될 수 있는 용어개편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종성 교수 = 가업상속공제를 도입한 취지가 전문기술이나 노하우의 전수를 통한 장수기업 육성에서 벗어나 기업의 유지발전을 통해 고용창출에 기여하는 등 국가경제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업뿐만 아니라 기업도 상속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여러 전문가들이 가업상속공제 대신 기업상속공제로의 명칭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한다.
이중교 교수 = 현행 가업상속공제제도는 상속인이 기업을 경영할 것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제도이므로 가업승계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상속인 아닌 전문경영인이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에까지 공제혜택을 확대한다면 기업승계라고 부를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고 현재와 같이 상속인이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에만 공제혜택을 부여한다면 가업승계라는 용어가 제도의 내용을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전규안 교수 = 시대의 흐름에 따라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의 변경이 있을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가업의 승계가 아니라 물려받은 기업의 유지발전을 통한 고용창출에 있으므로 기업승계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