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회계법인들 업무제휴 형태로 포렌식 영역 진출
감사인 지정제 여파 '황금알 낳는 거위'로 인식
기업들은 불만 잠재... 정부, 디지털포렌식 오남용 예방책 마련
◆…금융위워회는 최근 디지털포렌식 감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가이드라인을 통해 무분별한 포렌식 적용을 막겠다는 것이 금융위의 방침이다.
'신(新)외감법' 시행으로 예전보다 회계감사의 강도가 높아진 가운데, 재계 안팎에서는 법을 등에 업은 회계법인들의 전횡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회계개혁을 통해 투명한 회계 환경를 만든다는 명분은 납득이 가지만 회계법인들이 마음먹고 제도를 악용하면 기업에 막대한 감사비용을 청구할 수 있고, 이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오히려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도 재계 안팎에 만연한 우려의 시각을 인식, 과도한 감사비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비용증가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디지털포렌식 감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남발을 방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 6월11일 한국회계학회가 개최한 회계선진화포럼 조찬모임에서 최준우 증선위 상임위원은 "외부감사인의 부당행위를 막기 위해 디지털포렌식 오·남용 예방을 위한 감독지침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조사 방법과 조사 실시 필요성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을 고안해 무분별한 포렌식 적용을 막고 기업 부담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금융위는 금융감독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코스닥협회, 코넥스협회, 대형회계법인 등이 참여한 '회계부정조사 지침 제정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켰다.
금융위는 회계사회를 중심으로 한 실무작업반이 오는 10월까지 초안을 만들면 TF 심의를 거쳐 올해 안으로 가이드라인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 빅4만 가능?…중견회계법인도 뛰어든 디지털포렌식 감사 시장 |
◆…대주회계법인은 지난 3월 행복마루컨설팅과 디지털포렌식 감사와 관련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디지털포렌식은 컴퓨터나 휴대폰 또는 인터넷상 남아 있는 각종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기술을 말한다. 주로 범죄의 단서를 찾기 위해 사용되는데, 기업 회계감사에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해도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회계법인)에서만 디지털포렌식을 활용해 감사를 실시했다. 디지털포렌식을 통하면 보다 정밀한 감사가 가능하지만 '비용문제'가 발목을 잡아 덩치가 큰 웬만한 중견회계법인들 조차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자금력이 딸리는 중견회계법인들 입장에서는 디지털포렌식은 '가성비'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신외감법이 시행되면서 감사인에 대한 책임이 강화되자, 회계법인들의 인식이 바뀌었고 실제 디지털포렌식 감사를 도입하는 중견회계법인들이 늘어 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빅4 회계법인처럼 자체 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아니고 디지털포렌식 전문업체와의 업무협약으로 유사한 효과를 내려 하고 있다.
지난 3월 대주회계법인은 디지털포렌식 전문업체 행복마루컨설팅과 MOU를 체결했고, 가까운 미래 '빅5' 진입을 천명한 BDO성도이현회계법인 역시 비슷한 시기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업 프론테오와 손을 맞고 디지털포렌식 감사 서비스에 나섰다.
이외에도 몇 개 중견회계법인이 디지털포렌식 감사 서비스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재감사 속출할 텐데… 디지털포렌식은 미래 먹거리? |
표면적으로 감사인에 대한 책임강화가 디지털포렌식 도입의 이유지만 그 이면에는 디지털포렌식이 소위 말해 '먹거리 창출'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동안 잠잠했던 중견회계법인들이 도입을 앞 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기업들은 감사인으로부터 의견거절, 한정 등 비적정의견을 받으면 재감사를 받아야 하는데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디지털포렌식 감사를 적용하는 회계법인의 제안을 거절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디지털포렌식 감사는 일반 감사에 비해 비용부담이 높을 수 밖에 없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비적정 감사의견을 받은 감사인과 재계약을 맺은 상장사 20개사의 재감사 비용은 88억원으로 정기감사(33억원) 대비 평균 2.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상장사들은 최대 5.6배의 비용을 지불한 것으로 집계됐다.
재감사 보수가 증가하는 이유는 회계법인들이 높은 리스크를 고려해 엄격한 보수산정 기준을 적용하는 측면도 있지만 비용이 높은 디지털포렌식 기술을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설명. 디지털포렌식 비용은 재감사비에 포함된다.
이런 이유로 지난 3월 금융당국은 비적정 기업이 곧바로 재감사를 받지 않아도 상장폐지하지 않는다는 개선책을 내놨지만 기업들의 불만은 계속 쌓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회계법인들은 때 아닌(?) 호재를 맞았다.
특히 내년부터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면 재감사를 받는 기업이 늘어날 텐데, 이 때 디지털포렌식 감사를 실시하는 회계법인은 꽤나 큰 수입을 올릴 수 있다는 것.
한 중견회계법인 관계자는 "지금까지 디지털포렌식을 활용한 감사는 빅4회계법인만 가능했기 때문에 여기서 나오는 수익은 빅4 회계법인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근 몇몇 중견회계법인들이 디지털포렌식 감사를 도입하면서 수익이 나눠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금융당국의 가이드 라인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환경이 엄격해진 상황에서 재감사가 속출하면 디지털포렌식 감사를 도입한 회계법인이 매출을 높이는데 있어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