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특수관계인 거래·조세포탈 고의성 여부 무죄 판단
'통정매매 방식 주식거래 은닉' 공소사실 정면 배치
과세당국 대기업 일가 주식거래 범칙조사 제동
◆…주식 거래를 일반적인 장내 거래로 꾸며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LG그룹 사주 일가 14명이 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 선고공판에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LG그룹의 총수 일가가 주식거래를 일반적인 장내 거래로 위장해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1심 법원은 LG 총수 일가가 장내 경쟁매매를 통해 거의 동시에 동일한 금액으로 매도·매수 주문(통정매매)한 사실을 숨긴 채 제3자에게 주식을 매도한 것처럼 양도소득세를 신고해 조세포탈했다는 공소사실 전부를 인정하지 않았다.
LG 총수 일가가 양벌규정으로 약식기소 됐지만 조세포탈 혐의가 유죄 취지로 인정됐다면 그 파급력은 상당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LG 총수 일가의 혐의가 유죄로 판단됐을 경우 과세당국과 검찰이 유사한 형태의 대기업 일가 주식거래를 자세히 들여다볼 가능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송인권 부장판사)는 6일 LG 총수 일가 14명 및 전·현직 재무관리팀장 두 명의 조세포탈 혐의 선고 공판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이들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이 LG 총수 일가 및 실제로 주식거래를 담당한 ㈜LG 재무관리팀장들의 조세포탈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근거는 ▲특수관계인 간 거래 여부 ▲사기 기타 부정한 행위 여부 ▲조세포탈 고의성 등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재판부는 총수 일가의 주식거래가 '특수관계인 간의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증권사에서 LG 재무관리팀에 제공한 매매보고서에는 매도수량·매도단가 등이 기재됐을 뿐 거래 상대방은 기재돼 있지 않았다"며 총수 일가의 주식거래 당시 상대방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LG 총수 일가의 주식거래에서 체결률이 100%인 날이 없었다"며 "만약 특정인 간의 거래로 보면 제3자와의 거래도 혼재하는데 특수관계인과 체결된 일부분만 비정상적인 거래로 판단하는 것은 지나치게 기교적이고 세무행정편의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또 LG 측이 조세포탈할 목적으로 주식거래를 통해 경쟁매매의 본질을 침해했다면 그 자체로 '반사회적 법률행위'에 해당해 무효로서 과세대상이 되지도 않는다고 봤다.
이는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주장한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재무관리팀에서 총수 일가 간의 거래를 은폐하기 위해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장내에서 통정매매 방식으로 거래하면서 주식거래 증빙을 은닉하는 등의 사기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주식양도세를 포탈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특수관계인 간 주식 거래를 일반적인 장내 거래로 위장해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LG그룹 사주 일가 및 재무관리팀장 두 명이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연합뉴스)
1심 법원은 LG 재무관리팀장들이 담당한 주식거래가 조세범처벌법이 규정한 '사기나 그 밖의 부정한 행위'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무관리팀장들이 주문대리인 등록을 하지 않고 주문내용에 관한 녹음을 피하며 거래주문표를 작성하지 않은 행위가 양도소득세의 부과·징수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주문대리인 등록이나 주문내역 녹음 등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권사에 부과된 의무일 뿐 납세의무자에게 부과된 의무가 아니라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LG 재무관리팀장들이 조세포탈 범행을 저지를 동기와 의도도 없었다고 봤다.
재판부는 "대주주 일가로부터 경쟁매매를 통한 양도소득세 포탈을 직접 지시받았거나 이를 승인받았다고 볼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대주주 일가 모르게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범행을 저지를 만한 특별한 이유나 동기도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주식거래의 체결률이 0%인 날이 존재하는 점은 오히려 특수관계인 간 주식거래 없이도 그 거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반증"이라고 부연했다.
이 밖에 1심 법원은 양도소득세 할증 신고의무 등도 LG 측이 인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대해 조세 전문 A 변호사는 "법원에서 LG 총수 일가의 조세포탈 혐의가 인정됐다면 다른 대기업 총수 일가의 주식거래에 대한 범칙조사와 비정기 세무조사가 늘어날 여지도 충분히 있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사건이 대기업 일가의 주식 거래와 관련한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 국세청이 고발하고 검찰에서 기소한 첫 번째 사건이라면 앞으로 상고심까지 다퉈질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말했다.
LG 총수 일가와 재무관리팀장들은 2007년부터 10년간 지주사인 ㈜LG에 LG상사 지분을 증권사를 통해 매각하는 과정에서 주식 수억원을 특수관계인 간 주식거래가 아닌 것처럼 꾸며 156억원대의 양도소득세를 탈루한 혐의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