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세계적인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북한의 핵무기 시설을 민수용으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북한 비핵화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헤커 박사는 2018년 6월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에 보낸 공동기고문에서 “완전한 비핵화는 불가능한 목표”라며 “북한의 위협을 줄일 방안이 있다”며 이 같은 견해를 제시했다.
헤커 박사는 한국과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군사용 핵시설을 민간에 필요한 시설로 용도 전환하는 것이 여러 조건으로 볼 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과거에도 민수용 핵시설 운용은 주권 사안이라고 강조했듯이 이번에도 같은 주장을 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헤커 박사는 “북한으로서는 폭탄 대신 원자력 전기나 원자력 의료를 국민에 제공할 수 있고, 미사일 대신 기상예측이나 자연재해 완화를 위해 인공위성을 쏘는 평화로운 우주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용도 전환이 이뤄지려면 북한이 현재 보유한 핵무기에 대한 중단, 점진적 철폐, 제거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라고 전제를 달았다. 그러면서 북한이 폭탄, 미사일을 생산하는 능력을 점진적으로 철폐하는 데 맞춰 한국과 미국이 민간용도 전환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군사용에서 민수용으로 바꿀 때 협력하는 것을 선의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자 미국 정부의 심각한 정책전환 신호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8.6.26.)
남한이나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하여 북한 핵무기와 관련 시설의 불능화를 원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미래의 위험에 들어가는 많은 비용을 제거하고 보다 긍정적인 발전을 꾀하려고 한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도 핵무기를 없애서 주변국과의 마찰을 피하고 협력을 통해서 북한의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대화와 타협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처럼 양측의 궁극적 목적은 상호 발전이다. 지금처럼 북한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서 구축해놓은 시스템을 일거에 없애고 다시 새로운 건설을 도모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이고, 북한으로서는 그 시간의 흐름을 감당할 수 없다. 대신에 북한 핵시설을 민수용으로 바꾸면서, 이 과정에서 한국·미국·북한의 자금과 인력이 공동으로 협력하여 최대한의 시너지 효과를 나오게 한다면 미국이 의심하는 북한의 진의와, 북한이 의심하는 미국의 진의를 서로 검증하며 선의를 보이는 기회가 된다.
헤커 박사는 그러면서 “그 결과로 북한의 군사 프로그램을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제거할 가능성이 커지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설령 미국의 의도대로 북한이 먼저 핵시설을 신고하였다고 하여도 이를 완전하게 검증할 수 없는 만큼 헤커 박사의 민수용 전환 방안은 상당히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북한의 핵 기간시설을 민수용으로 바꾸는 건 이런 상황에서 유용할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 기술 인력이 민간 프로그램을 진전시키기 위해 현지에서 긴밀히 협조하면, 이들은 북한의 전체 프로그램의 본질과 범위를 훨씬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보지 못할 시설도 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의 핵포기 사례처럼 다국가 연합이 핵무기, 연관 시설 및 연구 인력을 민수용으로 전환한 적이 있다. 1991년부터 2000년 후반까지 국제사회는 우크라이나의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중장기적 관점에서 비군사화(Demilitarization) 프로그램도 추진하였다. 이는 러시아에 추진했던 비군사화 프로그램보다는 간소한 형태로 진행되었다.
러시아의 비군사화 프로그램은 △국방전환(Defense Conversion) △ 방산기업기금(DEF: Defense Enterprise Fund) △ 확산방지 이니셔티브(IPP: Initiatives for Proliferation Prevention) △국제과학기술협력센터(International Science and Technology) 운영을 중심으로 추진된 반면, 우크라이나의 비군사화 프로그램은 △국방협정(Defense & Military Contracts) △국방전환(Defense Conversion) △우크라이나 과학기술센터(STCU: Science and Technology Center in Ukraine) 설립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첫째, 국방협정 프로그램은 신생독립국가에 일자리를 잃은 과학자나 엔지니어에게 새로운 일자리 및 기회를 제공하여 핵 관련 기술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목적을 둔다. 이를 위해 다양한 산업협력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세부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구소련 체제하에서 육성된 국방산업의 민영화 및 전환을 돕는 목적에서 미국은 1994년 10개의 미국 국방부 산하 실험실과 미국산업연합회(U.S. Industry Coalition) 로 구성된 ILAB(Inter-Laboratory Board)을 구성하였다. ILAB은 구소련 내에서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을 찾아내고 이를 민수용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돕는 역할을 하였다. 이 사업을 위해 1994년에만 1,900만 달러의 예산이 지출되었다.
둘째, 국방전환 프로그램은 1994년부터 시작되었으며, 비군사화 프로그램과 관련된 재료, 교육, 서비스 등을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둔다. 가장 대표적인 내용으로는 주택프로젝트가 소개될 수 있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사회주의에서는 그 특성상 국가가 공무원들에게 주택을 제공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경제 붕괴에 따른 자금 압박으로 당시 우크라이나에서는 6,000호의 주택 부족과 2,500여 명의 주거공간 부족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는 공무원을 포함한 핵 관련 기술자들의 다른 지역으로의 유출 가능성과 연결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회사들(Montazhnykk와 Frehat사)을 지원하여 주택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미국은 1999년까지 이 프로그램에 총 5,490만 달러를 지원한다.
마지막으로 우크라이나의 과학기술센터(STCU) 사업은 대량살상무기, 투발수단과 관련된 과학자, 엔지니어들의 연구개발 활동을 군사 분야에서 시장중심의 민간분야로 평화롭게 이전, 활용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추진된 사업이다. STCU 사업은 1994년 1,350만 달러로 시작되었으며, 이후 협력범위를 확대하면서 활동을 넓혀나갔다. STCU는 여러 국가들의 지원을 통해 연구개발 및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핵 관련 기술을 보유한 우크라이나 과학 공동체로부터 평화목적의연구, 개발, 생산기술 개발 연구 제안을 받는 한편, 안보상황과 수출통제 분야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업을 선정, 관리 감시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는 단기적으로 우크라이나 내 핵 관련 과학기술자들의 급료를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핵확산 방지를 가져오는 데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 사업은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핵 관련 전문가들로 하여금 그들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민간분야에서 활용하여 개인의 이익과 발전을 극대화시키고,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시장경제체제가 안정화·활성화되는 틀을 마련하는 데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미국은 이 사업을 위해 1999년까지 총 1억 900만 달러를 지출하였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핵포기 사례를 보면 핵시설은 민수용으로 전환하고, 관련 인력들을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비용면에서도 더 유리하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북한이 비슷한 길을 걸으려고 한다. 이제는 그 방법도 더 정교하고 효율적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핵 시설 인수시에는 남-북-미의 핵관련 과학자와 관료들의 참가뿐만 아니라, 민수용 활용을 위한 민간 기업가들도 참여하도록 하여야 한다.
참가 가능한 민간 기업으로는 핵발전 시설을 주도하는 국내 원자력 발전 산업을 이끄는 두산중공업, 한국 항공 산업의 선두주자 한국항공우주산업 (KAI)과 대한항공 등이 남한에서 필히 참여해야 할 기업으로 꼽을 수 있다. 이들 기업이 각 핵시설을 검증할 때 불능화 여부를 평가할 뿐만 아니라, 사업성도 같이 평가하게 한다. 그 사업성 평가 결과를 근거로 남-북-미 당사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독일, 프랑스 등 제3국도 북핵 시설의 민영화 사업에 참가할 참고 자료를 만들어 제공한다. 사업성이 있는 북핵 시설과 연구 인력이 많다면, 남한이 돈을 들여 북핵 불능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돈을 받으면서 북핵 시설의 민영화를 추진할 방안도 충분히 가능하다.
홍재화 필맥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