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총수로서 재판 결과에 책임 통감" 당부
"이건희 신경영 선언 비교해 만51세 이재용 선언은 무엇인지"
이 부회장 측 승계작업 공방 예고…양형에 집중 전망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재판장이 이 부회장에게 "어떠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25일 열린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서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에 따른 의견을 설명했다.
정 부장판사는 "파기환송심이 시작된 시점에서 재판부 의견이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전제한 뒤 이 부회장에게 "우리나라 대표기업의 총수로서 어떠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본인의 심리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도 "심리 기간에도 당당하게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어 "1993년 당시 만51세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낡고 썩은 관행을 모두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는 '신경영 선언'을 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냐"고 강조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이 부회장은 재판 진행 내내 표정의 변화가 없었지만 정 부장판사가 의견을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정 부장판사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선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위법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국민적 열망이 크다"며 "그러나 몇 가지가 해결되지 않으면 삼성그룹이 국정농단과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삼성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이 계획해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라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실질적인 기업내부의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했다면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최순실)씨도 이러한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 대기업의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해달라"고 요구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은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면서 "재벌 체제는 과도한 경제력 집중 현상이 발생하고 국가경제가 혁신적 경제모델로 도약하는데 장애물이 된다고 경고음을 낸다"며 "혁신기업의 메카로 불리는 이스라엘 기업의 최근 경영을 참고해 재벌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적 경제로 나아가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날 재판에서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이 추가로 인정한 뇌물 혐의에 대해 유·무죄를 다투지 않지만 '승계 작업 현안'에 대해선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부정한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 작업' 현안에 대한 개념이 최씨 사건의 공소장과 대법원 판결 등에서 확연히 달라 어느 정도의 판결에 정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검은 "이 부회장을 위해 승계작업이 진행됐고 대통령의 우호적 조치 없이는 불가능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사건에 대한 수사 기록을 증거자료로 내겠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이 승계작업을 포괄적으로 인정한 만큼 양형이 핵심"이라고 반박했다.
재판부는 11월 22일 유·무죄 판단에 대한 심리를, 12월 6일 양형에 대한 심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항소심 선고 공판 이후 627일 만에 법정에 출석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뒤 지난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파기환송됐다.
파기환송심 재판의 핵심은 삼성이 최씨 모녀에 지원한 '말 세 마리'가 뇌물로 인정될지 여부다. 대법원 전합은 이 부회장이 제공한 34억원 상당의 말 세 마리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 등을 모두 뇌물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뇌물액은 항소심의 36억3484만원에서 50억여원이 추가돼 86억8081만원으로 늘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