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재판 결과 책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여 달라"
이건희 '신경영 선언' 언급하면서 이 부회장 역할 질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 씨 측에 뇌물을 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한 뒤, 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이 부회장에게 "재벌 폐해를 시정하라"며 일침을 가했다.
재판부가 재판 과정에서 의견을 밝힌 사례가 드물었던 만큼 이 부회장에 대한 재판부의 당부는 이례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25일 열린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 5명에 대한 파기환송심 첫 재판에서 정 부장판사는 재판 말미에 이 부회장에게 "대표기업의 총수로서 어떠한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심리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위법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게 해달라는 국민적 열망이 크다"면서 "그러나 몇 가지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삼성그룹이 국정농단과 같은 범죄를 다시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 등 삼성 임원들에게 기업 내부에 준법감시제도를 도입해 재벌 폐해를 시정하라고 주문했다.
정 부장판사는 "삼성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했다면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박 전 대통령과 최씨도 이러한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 대기업의 준법감시제도를 참고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인 만큼 혁신기업의 메카로 거듭난 이스라엘 기업의 최근 경영을 참고해 재벌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적 경제로 나아가는데 삼성이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이 부회장은) 기업 총수로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달라"며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언급했다.
정 부장판사는 "1993년 만 51세의 이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 선언'을 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만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졌다.
다만 정 부장판사는 "파기환송심 시작 시점의 재판부 의견은 재판 진행이나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재판 진행 내내 표정의 변화가 없었던 이 부회장은 정 부장판사의 발언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향후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에서는 이 부회장의 '양형'을 놓고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 측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유·무죄 판결에 대해선 다투지 않겠다"며 "다만 승마지원의 경위와 동기, 이유 등을 전부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측은 '승계작업'에 대해서도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과 관련해 청탁의 대상이 되는 승계작업의 개념이 최씨 사건의 공소장과 판결 등과 확연히 다르다"고 주장했지만 특검은 "파기환송심의 실제 심리 범위는 말이 뇌물인지, 승계와 관련해 부정한 청탁이 있었는지 두 가지뿐"이라고 반박했다.
특검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을 승계작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관련 증거 자료를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공판 기일을 두 번으로 나눠 11월 22일 '유·무죄 판단'에 대한 심리를 진행한 뒤 12월 6일 '양형 판단'에 관한 양측 입장을 듣기로 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지난 8월 '말 3마리'와 '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을 모두 뇌물이라고 판단한 만큼 앞으로 재판에서 뇌물 여부와 관련된 공방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