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사건 3심제·의무이행소송 등 제도화 필요
기억에 남는 사건, 형사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 1심 판결
민사 '강모군 종교 자유 관련 손해배상 소송'…신앙 충돌 첫 사례
조세 '과점주주의 과점주주에 2차 납세의무 부당' 판결
◆…지난 2월 새로 취임한 배기열 서울행정법원장(사법연수원 17기)은 지난 3일 조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서울행정법원 법관 및 구성원은 향상된 국민의 권리의식에 부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진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원 22주년을 넘긴 서울행정법원은 행정재판 전문법원으로서 국민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행정사건 중 조세는 물론이고 노동, 산재, 토지수용, 도시정비, 보건, 주민 등 7개 분야로 세분화해 11개의 합의재판부와 12개의 단독재판부가 운영되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전국에서 유일한 행정재판 전문법원으로 출범과 함께 당초 2심제이던 행정 재판이 3심제로 보완되면서 국민의 권리구제에 더욱 충실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세일보는 올해 취임한 배기열 서울행정법원장(사법연수원 17기)에게 행정법원의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배 법원장은 무엇보다 독일이나 영미법계 국가를 비롯해 일본에서도 이미 도입되고 있는 의무이행소송과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3심제 도입으로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이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 밖에 조세 전담부 운영 성과와 행정법원의 운영 방향에 대한 솔직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인터뷰는 코로나19의 확산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생활 속 거리두기 차원에서 서면으로 진행됐으며, 이후 보충 질의하는 대면 인터뷰는 충분한 거리두기 속에서 이뤄졌음을 밝힌다.
Q. 전문법원으로 자리잡은 서울행정법원의 지난 22년의 성과에 대해 평가한다면? (전문법원으로서 서울행정법원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1994년 행정소송법의 개정을 통해 행정소송의 1심을 행정법원이 담당하고 고등법원, 대법원을 거치는 3심제를 도입하게 됐고, 이에 따라 1998년 3월 2일 전문법원으로서 서울행정법원이 탄생했다.
서울행정법원이 개원함에 따라 국민들의 행정소송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졌고, 공법이론과 실무에 능통한 전문법관이 양성됐다. 특히 이러한 경험이 축적돼 국민의 기본권 보장, 행정작용에 대한 적법성 통제 기능이 더 효과적으로 이뤄졌다고 생각한다.
외형적으로도 행정법원이 최초 개원을 할 당시에는 접수된 사건 수가 3000여 건에 불과했는데 2019년 기준으로 약 9000건을 육박할 정도로 성장했다. 또 당초 16명이었던 법관 숫자가 현재는 44명으로 늘어났다. 이 같은 수치를 보더라도 행정법원의 지난 22년간 성과가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나아가 전문법원으로서 행정법원 소속 법관들은 그동안 행정실무연구회 등 전문 영역에서 자기 발전에 힘쓰고 있고, 행정판례연구회 등의 참여를 통해 학계의 의견을 듣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고 있다. 특히 연구와 실무 경험을 살려 '행정소송의 이론과 실무' 등 다양한 전문서적을 발간하기도 했다.
행정법원은 2018년 20주년에 이르렀고, 당시 20주년 행사를 통해 행정법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행정법원의 구성원은 향상된 국민의 권리의식에 부응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진하고 노력할 것이다.
최근 국회 등 일각에서 제기된 '공정거래 사건 3심제'도 활발한 논의가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부분 행정소송이 현재 3심제를 채택하고 있는데도 공정거래법 위반행위에 대한 시정조치나 과징금 부과를 다투는 행정소송에 대해 1심을 고등법원에 맡기고 대법원이 최종 심리하는 2심제는 당사자의 권리구제 및 방어권 보장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 개정안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Q. 조세소송과 관련해 현재 4개의 조세전담 재판부가 운영되고 있다. 전담 재판부의 장·단점이 있다면?
☞ 전담 재판부는 해당 전담 분야에 대한 깊은 연구와 이해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적정한 재판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다만 법관이 한 영역을 전담하게 되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 전문 영역뿐만 아니라 일반 영역에도 관심을 두고 연구한다면 전문 영역과 일반 영역이 조화되는 순기능이 발생할 수 있지만, 현재 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의 양과 질을 고려했을 때 모든 영역을 폭넓게 챙기기는 쉽지 않다.
조세 분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조세소송이 세무·회계 등 전문 영역에 속하므로 그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충실한 재판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조세소송 또한 행정소송의 일종이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조세행정은 국민들의 경제활동 속에서 발생하는 여러 법률관계를 해석하고, 관련 법규에서 정한 조세부과의 요건에 합치하는지를 평가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률관계의 해석에 기본이 되는 것은 민법, 형법 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조세소송에서 더 좋은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조세분야의 쟁점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민·형사 및 행정의 다른 분야도 이해하고, 최신 쟁점을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행정법원은 장·단점이 조화되고 있다. 부장판사의 경우 3년, 판사의 경우 2년을 각 전담 재판부에서 근무한 뒤 다시 지방법원에서 민·형사 등의 재판을 담당한다. 이처럼 순환근무를 통해 각 법관은 기존 전담 분야의 쟁점과 민·형사 재판의 쟁점을 연결시키면서 스스로 발전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법관이 다시 행정법원에 배치됐을 때 더 훌륭한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배기열 서울행정법원장이 지난 3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행정법원 법원장실에서 조세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배 법원장은 법관들이 전문 영역과 일반 영역의 조화를 이룰 때 더 좋은 재판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Q. 최근 전담 재판부 구성에서 조세 분야 경력이 없는 법관이 임명되고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작년과 올해의 경우 조세 전담부에 대학원에서 조세를 공부한 법관들이 배치됐다. 과거 조세 분야 경력과 무관한 배치도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전담 분야만을 담당하면 시야가 좁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전담 분야에 대한 지식과 민사법, 형사법에 대한 지식이 서로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다.
참고로 행정법원은 2020년부터 법관사무분담위원회를 설치해 이에 따라 올해 2월 법관 사무분담은 법관으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결정했다.
Q.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에서 의무이행소송을 포함해 다양한 제도 개선에 대한 의견이 있다. 소송구조를 다양화하고 처분 개념을 확대해 권리구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에 대한 의견은?
☞ 학계와 실무에서 행정소송법의 개정에 대해 여러 목소리가 나오고, 개정안도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까지 의무이행소송, 예방적금지소송, 가처분제도, 화해권고결정 등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더불어 '처분성'의 확대와 관련해서도 논의가 있었다.
우리나라는 법이 자주 개정됐는데, 행정소송법만큼 개정되기 쉽지 않은 법은 별로 없는 것 같다. 1984년 전면 개정됐다가 1994년과 2014년 일부 개정됐는데, 그 이후 현재까지 개정된 바는 없다. 행정법원이 개원한 이후 20년이 흐르는 동안 온갖 사회 변화 속에서도 행정소송법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그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학계, 실무와 더불어 행정소송의 한 당사자를 담당하는 처분청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권리의식 향상에 따른 다양한 주장이 나오다 보니 행정소송법의 입법 방향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 행정법원에는 다양한 청구취지에 따른 소송이 제기되고 있다. 의무이행소송도 심심치 않게 접수되고 있고, 행정청 또한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행정행위를 하고 있다. 또 행정행위가 행정소송법상 처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당사자 사이에 많이 다퉈진다.
행정법원의 법관들도 이러한 점을 인식해 현재의 법체계 내에서 국민의 권익을 구제하고 국가행정 작용의 적법성을 감시·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첨언하자면 21대 국회가 새롭게 개원했는데 국회에서 독일이나 영미법계 국가를 비롯해 일본에서도 이미 도입되고 있는 의무이행소송과 공정거래 사건에 대한 3심제 도입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Q. 약 30년 동안 법관 생활을 했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재판이 있다면?
☞ 먼저 조세 재판 중에서는 과점주주의 과점주주에게는 제2차 납세 의무를 부담시킬 수 없다고 판결한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이 사건에서 법인의 국세 납세의무 성립일 당시 주주가 아니라 1단계 과점주주가 체납한 때의 주주인 2단계 과점주주가 당초 법인에 대한 제2차 납세의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2단계 과점주주에게 납세의무를 지우는 것은 헌법상 조세법률주의에도 저촉될 소지가 있었다. 국세기본법 제39조의 출자자의 제2차 납세 의무를 계속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한 최초의 사례로 이후 대법원에서 제 판결을 지지해 확정됐다.
형사 재판 중에서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 조작 사건'을 맡았던 적이 있다.
당시 줄기세포와 관련한 과학적 지식이 필요하고, 법적 문제까지 얽혀 있어 쟁점이 복잡하고 많은데다 사회적으로 엄청난 관심이 집중돼 심리가 오래 걸렸다. 재판 진행이 힘들었지만 판결 이후 사회적 혼란이 어느 정도 수습됐던 것 같다. (배 법원장은 2009년 10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 재판장 시절 줄기세포 논문을 조작해 연구비를 타내고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황 박사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민사 재판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다 퇴학당한 강모군의 손해배상 소송을 꼽을 수 있다.
강군은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퇴학 처분으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이는 학교의 선교의 자유와 강군의 무신앙의 자유가 충돌된 최초의 사건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심에서 단독으로 재판을 했는데 상의할 곳이 없어 오래 고민한 뒤 결론을 내렸었다. 2심에서 1심 결론이 뒤집혔지만 이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다수 의견으로 제 판결을 지지해줬다.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기에 기억에 오래 남는다. (배 법원장은 2007년 10월 서울중앙지법 민사90단독 시절 강군이 대광고재단과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광고가 강군에게 1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Q. 법관 생활하면서 사표로 삼는 분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 많은 법조인이 추앙하는 '법조 3성'을 저 역시 존경한다(법조 3성은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과 '사도(使徒)법관'으로 불렸던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 '검찰의 양심'으로 알려진 최대교 전 서울고등검사장 등 전북 출신 법조인 3명을 이르는 말).
초대 대법원장인 가인 김병로 선생님은 사법 제도의 기틀을 만들고 사법 기관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셔서 후배에게 귀감이 되시는 분으로 많은 후배 법관들이 지금까지 존경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을 상당히 존경한다. 대학 초년생 시절 법학을 배우며 김 전 법원장의 성함을 들었다. '사형수의 대부'로 불릴 만큼 사형수를 교화했고, 직접 사형수를 찾아다니며 '수인들의 아버지', '법의 속에 성의를 입은 사람' 등의 칭호를 얻은 바 있다. 또 김 전 법원장은 매우 청렴하게 사시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면 안 된다'는 말을 몸소 실천했다. 대학 시절 김 전 법원장의 '무상을 넘어서'라는 제목의 수상록을 읽었는데 굉장히 감동적이라 흠모하게 됐다.
외국 법관 중에서는 20세기 초 미국의 홈즈 대법관을 꼽을 수 있다. 헌법을 공부할 때 그의 통찰력과 혜안에 감명을 받은 적이 있어서 존경하는 분이다. 홈즈 대법관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이 있어야 한다"는 기준을 최초로 마련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또 최근 문제가 되는 '독수독과 이론(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에 의해 발견된 제2차 증거의 증거능력은 인정할 수 없다는 이론)'을 제창하신 분이다.
<배기열 서울행정법원장 약력>
▲1965년 대구 달성 출생 ▲서울대 사법학과 졸업 ▲대구지법 경주지원·대구지법·인천지법 부천지원·서울지법 동부지원·서울지법·서울고법·서울가정법원 판사 ▲대구지법 부장판사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특허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고법 수석부장판사 ▲서울행정법원장(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