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대신 M&A나 최대주주 지배력 강화 위해 활용될듯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 3791억원 불과…재원조달 '주목'
◆…SK텔레콤의 최근 1년여간 주가 변동 추이. 캡처=키움증권
SK텔레콤은 지난달 28일 장 시작에 앞서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 가치 제고를 위해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의결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자사주 매입은 신탁 계약 방식으로 위탁투자중개업자인 SK증권을 통해 진행되며 계약 기간은 오는 2021년 8월 27일까지 1년간입니다.
SK텔레콤의 주가는 지난달 28일 자사주 매입 발표에도 불구하고 전일 종가인 24만5500원보다 3000원(1.2%) 하락한 24만2500원에 장을 마쳤습니다.
2일의 SK텔레콤 주가는 전일보다 500원(1.0%) 오른 24만2500원으로 지난달 28일의 주가와 같습니다. 8월 27일의 종가에 비해 1.2% 하락해 있는 상태입니다.
자사주를 매입하게 되면 발행주식수가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발행주식수가 줄어들면 주당순이익(EPS)을 향상시키는 효과를 가져와 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됩니다.
자사주 매입은 오너가의 경영권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의결권 수가 줄어들어 상대적으로 기존 최대주주의 지배력이 강화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의 유동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활용하게 되면 연구나 투자에 들어갈 자금이 줄어들게 됩니다. 기업이 위기에 빠질 때에는 현금 보유를 고갈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자사주를 매입한 후 처분하는 유형으로는 자사주 매각과 자사주 소각이라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자사주 매각은 매입한 자사주가 또다시 시장에 풀려 나오면서 유통 물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자사주 매입효과가 고스란히 사라지게 됩니다.
반면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게 되면 주당순이익이 증가하고 배당금이 높아지면 주가가 상승할 여력이 큽니다. 자기자본 규모를 줄이기 때문에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높아지게 됩니다.
선진국 기업들은 자사주 소각을 통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차례의 자사주 소각을 통해 주가를 관리하며 주주가치 제고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자사주 처분에 대한 명백한 방침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자사주를 소각하려는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장에서는 SK텔레콤 주가가 자사주 매입 발표후 주가가 오히려 떨어진 데 대해 매입 후 자사주 소각이 없고 지배구조 강화를 위해 자사주가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SK텔레콤의 지분 분포는 올해 6월 말 현재 최대주주가 지주회사인 SK로 지분 26.78%(2162만4120주)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최대주주이며 지분 18.44%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은 Citibank ADR이 지분 9.45%(762만6509주), 국민연금공단이 지분 11.77%(950만2565주)를 갖고 있습니다. 지분 1% 미만의 소액주주가 전체의 39.1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의 자기주식수는 지분 9.42%(760만9263주)에 이르고 있습니다. SK텔레콤이 5000억원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면 2일 종가 기준으로 지분 2.55%(206만1855주)에 달합니다. 이 경우 자사주의 지분이 11.97%까지 높이지게 됩니다.
SK텔레콤은 자사주 비중이 높아지게 되면 그만큼 의결권 수가 줄어들게 되면서 오너가의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게 됩니다.
SK텔레콤이 자사주 매입을 위해 동원해야 하는 5000억원의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논란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의 6월 말 현재 재무상태는 별도기준으로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3791억원에 불과합니다. 연결기준으로는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4969억원에 달하나 종속회사들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으로 자사주 매입시 배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SK텔레콤이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위해서는 매출채권 등을 통해 현금을 회수하거나 단기금융상품 등을 매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증권가에서는 SK텔레콤이 자사주를 활용해 오너가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입니다.
SK텔레콤은 2015년 6월 SK브로드밴드, 2018년 12월에는 SK인포섹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 주식 교환을 실시한 바 있습니다.
SK텔레콤은 2019년 11월에는 자사주 127만주의 3000억원 상당을 카카오 주식 218만주(지분 2.5%)와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SK텔레콤과 카카오는 자사주를 활용한 전략적 제휴를 통해 최대주주의 지배구조를 강화할 수 있는 길을 터놓은 셈입니다.
SK텔레콤이 중간사업지주 회사로 변신을 추진할 때 인적 분할 등을 통해 확보해 놓은 자사주에 대한 의결권 부활 과정을 거치면 SK텔레콤의 현금을 이용해 오너가의 지배권을 강화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됩니다.
한국투자증권 오태완 연구원은 “SK텔레콤의 매입된 자사주는 소각되지 않고 M&A(인수·합병),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지분 교환 등에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메리츠증권 정지수 연구원은 “중간지주회사 전환 방법을 예단하기 어렵지만 SK텔레콤의 자사주 매입 속도가 힌트가 될 수 있다”면서 “핵심은 SK하이닉스의 자회사 편입 또는 추가 지분율 확보로 전자는 인적분할이 후자는 물적분할이 좀 더 유리하다”고 분석했습니다.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자사주 매입이 신용등급 하향의 전제조건에 매우 근접한 수준”이라며 “SK텔레콤이 상당한 규모의 차입을 통한 투자에 나서거나 공격적인 재무정책을 펼칠 경우 신용등급 하방 압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