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공개념이 사유재산 위협?…'가장 시장친화적'
토지 전문가 "지대는 불로소득, 초과이익 환수해야"
◆…전셋값과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여러 차례 부동산 대책을 내놨지만, 전문가들은 토지공개념을 정책에 반영해 근본적인 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진=연합뉴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도 신자유주의 체제를 본격적으로 경험하면서 한국경제에 유량(임금, 소득 등)보다 저량(자산, 자본 등)이 중요해지게 되었으며 불평등 증가와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 이러한 현상은 부동산 등 자산 가격 인플레이션에서 비롯됐다" (국토연구원 '자산불평등에서 주택의 역할' 보고서 중)
◆ 토지는 '공공재'…'수익권' 제한해야
토지공개념은 토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른 재화와 달리 '공공재'라는 특수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전문가들은 토지에 대해 일반상품과 달리 옮길 수 없고(위치고정성), 시장에서 인기가 있다고 해서 공급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다(부증성)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토지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을 넘어서는 '지대'를 얻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토지공개념을 연구한 학자들은 이러한 초과 이익을 '파레토 지대'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과도한 지대추구(rent-seeking)가 초래하는 사회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선 '토지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세금을 통해 토지소유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을 환수하자는 것이다.
'진보와 빈곤'의 저자이자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가 개발한 이론에서 비롯된 토지공개념은 지대를 개인에게 사유화하지 않고 사회 전체에 의해 향유돼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소득보다 토지가격이 빠르게 상승하면 토지 소유자들은 불로소득으로 부유해지는 반면, 다수의 대중은 더 빈곤해져 사회 불평등이 심화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헨리 조지는 국가가 개인의 토지를 몰수해 '국유화'하는 방안에는 반대했다. 그는 "나는 토지를 압수할 것을 제안하지 않는다. 첫 번째 부당하고, 두 번째 불필요하다"며 "그들(지주)이 계속해서 그들의 토지라고 부르게 하라. 토지를 사고, 팔고, 남겨두고, 고안하게 하라. 토지를 몰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윤을 몰수할 필요는 있다"고 설명했다.
재산권의 3요소인 사용권, 처분권, 수익권 중 사용권과 처분권에는 제한을 두지 않되 토지의 '수익권'에는 일정 정도의 제한을 가하자는 의미다. 토지의 사용과 매매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고, 다만 토지로 얻은 불로소득은 세금을 통해 환수해야 토지의 공공성이 확보된다는 것이다. 특히 헨리 조지는 모든 조세를 토지에 대한 조세로 포괄해 납부하는 '단일 토지세제(single tax)'를 주장했다.
◆ "지대는 불로소득, 노력 무관한 가치는 환수 필요"
우리나라도 토지공개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1984년 설립된 한국헨리조지협회(성격적토지정의를 위한 모임 개칭)를 중심으로 토지연구기관 등이 헨리 조지의 경제학 사상인 '조지즘(Georgism·지공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헨리 조지의 저서를 번역 출간한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 대구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들이 중심이 된 모임은 지금까지 계속 연구를 하고 이어가고 있고, 토지정의를 연구하는 기관인 '토지+자유 연구소'에도 참여하고 있다.
국내 학자들은 토지 불로소득의 수익권을 환수해야 한다는 토지공개념 사상 자체가 '시장 친화적'이라고 주장한다. 토지공개념은 수익권이 공공에 있기 때문에 토지의 초과이득을 환수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인 '소득 재분배'에 부합한다는 취지다.
헨리 조지의 사상을 바탕으로 '지공주의' 이론을 창시한 김윤상 경북대 명예교수는 "지대 환수는 '평등한 자유'라는 상식적인 원리로부터 토지원리를 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에 위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며 "하지만 지대 환수는 사유재산제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대는 본질적으로 불로소득이다. 토지는 사람이 생산한 것이 아니고 토지가치는 토지소유자의 노력 및 기여와는 무관한 요인 즉, 토지의 자연적 형질, 사회경제적 상황, 정부의 조치 등에 의해 주로 결정되기 때문"이라며 "노력 및 기여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토지가치를 환수하는 제도는 사유재산제에 충실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토지정의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도 "헨리 조지가 말했듯이 토지 수익권 환수의 주된 방법은 세제인데 토지 보유에 부담하는 '토지 보유세'는 경제를 왜곡시키지 않는다"며 "진정한 자유시장경제를 주장하려면 토지 수익권을 환수하는 보유세는 올리는 대신 소득세나 부가가치세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해야 맞다"고 말했다. 토지 수익 환수를 반대하는 토지사(私)개념이 오히려 자유시장경제 질서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토지 수익권을 개인이 가져가는 구조는 토지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 소장은 "시장을 존중하는 이유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주기 때문인데, 토지는 일반물자와 달리 가치가 하락하지 않고 상승한다"며 "토지 소유자들 중에는 토지를 놀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하는 게 투기 이익을 제때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토지 투기를 통해 돈을 번 소유자들은 시장에 자본 사용의 대가를 기여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투기 행위가 개인에게 이익이 될 수는 있을지는 몰라도 국부를 늘리는 데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해를 끼친다"고 꼬집었다.
◆ '한국형 토지공개념'은 소득 규제가 해법
특히 전문가들은 소득 규제 위주의 '한국형 토지공개념'을 부동산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도시화가 진행된 우리나라 현실상 사유재산을 강제로 침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보유세 강화나 개발이익 환수를 통해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집값을 안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 현실에 맞는 토지공개념 제도는 소득을 규제하는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이 해답이 될 수 있다"며 "주택 보유나 거래 규제는 가급적 최소화해서 시장에 맡기고, 토지소득 중 개인의 노력에 의한 것은 개인이 소유하되, 독과점이나 공공 기여에 따른 것은 사회로 환원하면 부동산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시장의 거래는 탄력적으로 활발하게 하고, 독과점이나 시장 실패에 따른 불로소득은 정부나 사회가 환수하는 것이 시장경제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김윤상 교수도 "토지소유자는 매매를 통해 매매차액을 얻고 보유하는 동안 임대소득을 얻는데, 두 소득에서 토지소유자가 지출하는 보유비용을 공제하면 토지 불로소득이 된다"며 "이처럼 불로소득을 얻은 다주택자와 고가주택 소유자가 보유세를 내 대가를 치르도록 하면 투기적 수요가 사라져 진정한 시장경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교수는 토지사유제가 상당 기간 지속된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지대 환수를 할 때 들어가는 개혁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2018년 펴낸 책 '토지공개념, 행복한 세상의 기초'에서 "지대세를 부과하면 지가, 즉 토지 매매가격이 이론상 0이 되므로, 잘못된 토지제도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현 토지소유자의 재산가치가 그만큼 줄어든다. 그럴 경우 형평성과 재산권 보호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종합부동산세를 예로 들며 소유 토지의 가치가 높을수록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정책을 시행할 경우 불로소득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부세처럼 고액 소유자에게만 누진적으로 중과세하는 세금은 중소 토지소유자의 부담을 경감시키지만, 토지 불로소득의 폐단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계층 갈등을 야기한다는 단점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대를 전부 환수하지 않고 매입지가에 대한 이자를 공제한 나머지만 환수하는 '지대이자차액세(이자공제형 지대세)'를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한 전략이 될 수 있다"면서 "이자공제형 지대세를 도입해 토지보유세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높이면 국민은 부동산 투기로 인한 부당한 불평등이 해소되는 모습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지정의, 대한민국을 살린다(2012)'의 공동 저자인 조성찬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 원장도 한국 현실에 맞는 방법으로 '지대 환수'를 언급한다. 조 원장은 "주택 문제의 핵심에는 공적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지대를 개인의 토지 재산권에 기초해 사유화하려는 토지 불로소득 추구 행위가 자리하고 있다"며 "개인의 토지 재산권에 갇혀 있는 지대를 공공이 환수하게 되면 투기적 가수요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고 실수요만 남게 돼 과도한 주택의 공급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고 분석했다. 지대를 환수하면 개발이익이 사유화되지 않기 때문에 신규 주택을 건설하거나 주택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토지공개념의 순기능 요소가 주목받으면서 문재인 정부 들어 토지공개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토지공개념을 개헌안에 넣어 헌법에 명시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3월26일 발표한 개헌안에 "토지의 공공성과 합리적 사용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 한해 특별한 제한을 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어 제출했다.
향후 개헌안이 발의돼 국회에서 가결될 경우 토지공개념을 적용한 정책 추진에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 들어 당정이 토지공개념을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토지공개념 도입으로 서민의 주거환경 변화를 이끌어낼 지 귀추가 주목된다.
[토지공개념 특별취재팀 : 홍준표·염재중·염정우·태기원·강대경 기자]
※ 본 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