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18년 초 주한미군 가족대피령 발표 준비 하기도“
"한국이 중국의 궤도로 끌려가는 상황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0년 3월 18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의 코로나19 대응 브리핑을 하는 것을 듣고 있다 <사진 로이터>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 중 국방장관을 역임했던 마크 에스퍼 전 장관은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와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실행을 막으려는 목적이 장관직을 지킨 이유 중 하나였다고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국방장관으로 지낸 15개월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의 핵심 동맹인 한국을 폄하하면서 2만8500명에 달하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명령을 내리겠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주한 미군의 완전 철수는 북한과 중국이 환영할 일이라고 다른 고위 관료들과 함께 트럼프를 설득했다"며 "실제 철수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으나, 트럼프는 임기 마지막까지 이와같은 주장을 관철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에게 삼성 TV를 파는데, 우리는 그들에게 군사적 보호를 해준다. 이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가 하면, 한국인들에 대해 "다루기가 끔찍하다",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라고도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동맹국도 안보 문제에서 미국에 '무임승차'한다면서 아프리카 주둔 미군 철수 희망을 피력했고, 실제 독일 주둔 미군의 감축을 발표하기도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또 북한이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둔 대륙간탄도 미사일 ICBM을 시험발사한 후였고, 미군은 연일 관련 대비태세를 강화하는 등 북미 간 일촉즉발의 시기였던 2018년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및 비(非)전투원 전원(4만6000여 명) 가족 소개령(疏開令)을 내리려다 취소했다고 밝혔다.
그는 회고록에서 2018년 1월 앨라배마주 헌츠빌의 한 병참기지를 방문일정을 수행하던 중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주한미군 가족을 대피시키라는 명령을 내렸고 그날 오후 발표한다는 내용의 긴급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에스퍼 장관은 미국인 대피계획은 준비하고 있었지만 "김정은은 미군의 철수를 분쟁의 서막으로 볼 것이고, 이는 한국 경제, 주식 시장과 항공 교통, 다양한 문제에 영향을 줄 패닉을 촉발할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그 뒤 대피계획 발표가 취소된 배경에 대해 "누군가 트럼프 대통령이 트윗을 보내지 않도록 설득해 위기와 전쟁을 피했다"고 했다.
당시 CNN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가족 소개령을 트윗으로 발표하려다가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의 막후 교섭으로 불발이 됐다고 2018년 보도한 바 있다.
에스퍼 전 장관은 WP와 인터뷰에서 선출된 지도자, 특히 미국의 대통령은 자신보다 나라를 우선시하고 원칙과 진실성이 있어야 하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런 측면에서 군 최고통수권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2020년 3월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 잠정 타결안을 트럼프 전 대통령이 되돌려 버렸다는 사실도 직접 확인했다. 그는 국무부가 주도한 협상팀이 13% 증액안을 잠정 합의해 백악관에 보고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11시간 만에 이를 거부했다고 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00% 인상을 주장했고 에스퍼 전 장관은 50% 증액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13%는 합리적 해법을 찾으려는 폼페이오 전 장관이나 자신이 보기에도 어려운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가 일본과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 중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그는 회고록에서 한미관계에 대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은 같지만, 한국이 무역, 경제, 지형이라는 중력에 끌려 중국의 궤도로 끌려가고 있는 상황을 걱정했다"고 했다.
또 "핵심 문제는 한국이 미국을 안보 파트너로 유지하면서 중국을 경제 파트너로 선택하고, 이런 관계를 동시에 유지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쿼드(Quad, 미국·인도·일본·호주 4자 안보회의체)에 가입해 중국에 한국의 전략적 입지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과거사 문제와 일본발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등 갈등 상황에 대해 "한반도 유사시에 한·일관계는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일본보다 북한과 더 대화하려는 의지가 있어 보였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2017년 4월 첫 사드 시스템 배치 이후 시간이 지체되면서 한국이 점점 더 중국 쪽으로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며 "사드는 한국과 한반도 우리 병력, 심지어 미국의 일부를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추적과 요격 역량을 갖췄다"고 했다.
한편 에스퍼 전 장관은 2017년 11월부터 미 육군장관을 지내다 2019년 7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국방장관 직을 역임해 트럼프 정부 내내 군 관련 요직을 거쳤다. 재임 초기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예스맨'으로 꼽혔지만, 이후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에서 갈등을 빚다 경질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