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법사위 강대강 대치에 원 구성 지연… 의장-상임위 없는 국회
서로 '네탓' 공방만... 청문회 일정도 못 잡아, 청문 절차 없이 임명
야당의 국회법 개정안 발의에 '불길에 기름 부은 형국'... 대치 장기화
화물연대 파업, 가상자산 등 민생 현안 뒤로 밀려... 우려감 커져
◆…빨간불 켜진 국회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리를 놓고 여야간 원 구성에 갈등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민생 현안을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 우려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회앞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어 국회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조세일보 자료사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8∼10일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전투적 과업을 제시하면서 한 발언이다.
현재 후반기 원 구성을 둘러싼 여야 간 강대강 대치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 국회의 모습과 유사하다. 여야는 14일 국회 공백 장기화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네 탓 공방'에 몰두했다. 이에 따른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달 29일 전반기 회기 종료 이후 국회는 의장단, 상임위원회 그 어떤 것도 구성하지 못한 채 보름이 넘도록 국회 공백 상황을 방치하고 있다. 그 시발점은 법제사법위원회 배분을 둘러싼 여야 간 줄다리기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곡물 자원화에 따른 거시경제 위기는 물론 에너지 위기 등에 따른 민생경제 어려움이 예상되고, 북한의 연이은 무력 도발에 따른 국방·안보 위기 가능성이 커져 가고 있지만 국회 공백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야는 이날도 결사항전 태도로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며 맞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사진기자단]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오전 원내대책회의에서 "과거 국민의힘도 다수당이었던 적이 있지만, 법사위는 전·후반기 모두 민주당이 맡았다“며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야당을 존중하고 협치하기 위함이었다"고 강조했다. 18대 국회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이 153석, 통합민주당(더불어민주당)이 81석이었지만 양보했다는 설명이다.
권 원내대표는 이어 "지난해 국회법 개정을 통해 법사위 심사 기한을 120일에서 60일로 대폭 축소하고 심사 범위를 체계·자구 심사로 한정했다“면서 ”더 축소한다는 것은 사실상 견제와 균형 기능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법사위를 없애자는 말이 솔직해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입법 독주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검수완박' 악법 날치기와 재보궐 '낙하산 공천'으로 '재명수호'에만 여념 없었고,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독식 역시 '이재명 방탄국회' 완성을 위한 것"이라며 "‘민심 아닌 명심'만을 지키겠다는 것"이라고 이재명 의원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민생우선실천단 단장을 맡은 박홍근 원내대표가 14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우선실천단 발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우상호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연합뉴스, 국회사진기자단]
박 원내대표는 "전직 원내대표 간 합의는 그동안 상원처럼 월권을 행사해온 법사위의 기능을 정상화하라는 것이 전제였다"라면서 "그 전제가 된 여야의 약속이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법사위원장 문제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야당에서 행정부 시행령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국회법 개정안 발의돼 불붙은 정국에 기름을 붓는 형국이 되고 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14명이 서명한 국회법 개정안은 행정기관의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법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될 경우 소관 상임위가 수정·변경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결국 대통령령, 총리령 및 부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통제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행정부가 법 취지를 왜곡하거나, 위임 범위를 일탈하거나 국민의 자유·권리를 제한하는 등 법률에서 규정해야 할 사안까지 행정입법을 통해 규율한다는 지적이 종종 있어와 국회는 입법권을 가진 헌법기관으로 행정입법의 내용을 통제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대통령령과 총리령은 본회의 의결로, 부령은 상임위원회의 통보로 단순히 처리 의견을 권고하는 수준에 불과하며,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거나 회피하는 경우 마땅히 구속할 수단이 없어 국회의 통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완하겠다는 차원인 셈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은 전날(13일)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조응천 의원이 예고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 요구권을 갖는 건 위헌 소지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시행령 내용이 법률의 취지에 반한다면 국회에서는 법률을 구체화한다거나 개정해서 시행령을 무효화할 수 있다"며 "시행령은 대통령이 정하는 것이고, 시행령 문제 해결 방법은 헌법에 정해져 있는 절차와 방식대로 하면 된다"고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까지 정쟁의 가운데 들어와 있는 모양새다.
이 같은 민주당의 국회법 개정안 발의는 윤 대통령이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인선하고 법무부 시행령을 바꿔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한 데 따른 더 이상의 검찰 수사권 또는 인사권 확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맞불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국회법 개정안이 ‘국정 발목잡기’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밀어붙일 경우 이를 저지할 방법은 없다. 다만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기대를 걸 수밖에 다른 방안은 없어 보인다.
이같은 여야 대치 국면에서 국회 기능을 전면 휴업 상태다. 인사청문회가 진행되지 않아 새 정부 초대 국세청장 인사는 사상 최초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는 차치하더라도 국회 인사청문회조차 열리지 못하고 지난 13일 임명 강행됐다.
또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김승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도 현재 일정 조율조차 되지 않고 있다. 시한은 오는 18일이다. 최악의 경우 이 두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 패싱'이 재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화물연대 파업의 핵심 쟁점인 안전운임제 등은 국토위 부재로, 최근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가상자산시장 규제 관련 논의도 정무위 부재로 진행이 지연되고 있어 이해관계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무력도발이 잇따르고 있지만, 소관 상임위인 국방위나 정보위는 아직 꾸려지지도 않아서 '안보 공백'에 대한 우려 목소리까지 나온다. 다만 대통령실과 합참 중심의 ‘안보상황점검회의’ 또는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회’가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여야 첫 협치로 진행된 첫 추가경정(추경)으로 급한 불은 일단 껐지만 코로나19 피해 손실보상 등 후속 조치는 물론이고, 물가관리에도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이외에도 각종 민생 관련 주요 현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취임 한달을 넘긴 윤 대통령으로서는 국정운영 차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당선인 신분 때부터 여야 간 협치를 강조해온 윤 대통령으로서는 ‘허니문 기간’이라 생각되는 취임 초반 여야가 극한 대치로 경제·외교안보·사회 전반에 빨간불이 켜질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