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피해자들이 흘린 눈물의 총량은?

 

테라와 루나에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한국산 가상화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외국산 코인들이 수위를 다투는 디지털자산 시가총액 순위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의 깃발을 꽂아서다. 한때 테라는 스테이블 코인 중 3위, 루나는 전체 코인 중 7위에 올랐고 두 코인의 시총은 60조원을 기록했다.

국내 투자자 28만명은 총 809억개의 루나를 보유하고 있었고 시가총액은 339억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루나가 일주일만에 99.99% 폭락하면서 28만명 모두 피해자가 됐다.


◆ 루나사태 고소 줄이어... 피해자 104명에 101억원 걸렸다

이번 사태로 눈물을 흘린 투자자들은 법정싸움을 벼르고 있다. 6월 2일 법무법인 대건은 10억원의 피해를 본 12명을 대리해 서울남부지검에 이번 사태 관련자들을 사기 등 혐의로 고소했다. 지난 5월에는 '루나·테라 코인 피해자 모임'에 소속된 투자자 87명이 77억원의 피해액에 대해 고소를 진행했다. 같은달 법무법인 LKB 대리로 14억원의 피해를 본 투자자 5명이 관련자를 고소했다. 합수단에 걸려 있는 이번 사건 소송 규모는 한달만에 피해자 104명에 피해액 101억원으로 불었다.


◆ 노보그라츠, "암호화폐 헤지펀드 3분의 2 전멸할 것"

해외로 눈을 돌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블룸버그는 코인게코를 인용해 루나 시총 450억 달러(약 58조)가 증발했다며 테라폼랩스와 루나파운데이션가드(LFG)를 지원한 벤처캐피탈과 투자사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점프 크립토와 쓰리애로우캐피탈은 지난 2월 루나파운데이션가드가 준비금 명목을 10억달러를 조달하는데 리드 투자자로 참여했다.

쓰리애로우캐피탈은 이번 루나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데다 암호화폐 급락장에서 4억달러 규모로 추산되는 청산을 당해 투자자와 대출 기관을 위한 솔루션 마련을 위해 최근 법률 및 재정고문을 고용했다.

카일 데이비스 쓰리애로우캐피탈 설립자는 지난 17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투자했던 2억달러가 테라 붕괴 당시 몽땅 증발했다면서 그래도 루나 때까지는 어떻게 견뎠는데 최근 암호화폐 급락장은 버틸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갤럭시 디지털 홀딩스와 판테라 캐피탈, 라이트스피드 벤처 파트너사 역시 테라폼랩스가 1억5000만달러 규모의 기금을 마련하는데 투자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갤럭시 디지털 홀딩스는 올해 1월 루나 문신이 그려진 팔뚝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스스로 루나 투자자임을 밝힌 마이크 노보그라츠가 CEO로 있는 곳이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1억1170만달러의 적자를 기록한데 이어 이번 분기에 3억 달러로 적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노보그라츠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 4분기에 테라폼랩스에 처음 투자하기 시작했고 올 1월에는 달을 향해 울부짖는 문신도 새겼는데 이렇게 루나가 폭락하고 나니 이 타투가 겸손함을 일깨워 준다며 자조 섞인 말을 전했다.

그는 최근 뉴욕에 열린 한 컨퍼런스에서 현재 1900개의 암호화폐 헤지펀드들이 존재하는데 3분의 2는 파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난 4월 발간된 PwC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루나는 암호화폐 헤지펀드에서 거래된 적 있는 코인 중 5위에 랭크될 정도로 사랑받았다. 테라USD의 경우 헤지펀드에서 선호되는 스테이블 코인 3위에 랭크됐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 셀시우스·바벨 파이낸스 인출 중단 사태... 유동성이 마른다

이번 사태는 테라USD와 루나의 가격 폭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헤지펀드뿐만 아니라 디지털자산 업계의 탈중앙화금융 시스템인 디파이 생태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어 특히 암호화폐 대출업체에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자산 대출업체 바벨 파이낸스는 지난주 예금인출 중단을 선언한 이후 일부 부채 상환을 유예받은 상태다. 앞서 6월 초 출금을 정지시킨 바 있는 바벨의 경쟁업체 셀시우스는 현재 유동성을 완화하는 한편, 운영을 안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암호화폐 대출업체가 예금인출 중단을 선언할 때마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해수면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예금인출 중단 사태로 유동성이 막혀버리면 디지털자산 시장뿐만이 아닌 다른 산업에 피해가 전염될 우려가 있다.

이를테면 한 디파이의 대출업체에서 코인을 담보로 맡기고 빌린 자금으로 다른 디파이 생태계 내의 앵커프로토콜 같이 20%에 가까운 이자를 제공하는 은행에 예치를 하거나 또다시 담보대출을 받는 등 레버리지를 키워나갔다면 지금같은 약세장에서는 담보 자산가치 하락으로 연쇄 청산을 당할 가능성이 커진다. 쉽게 말해 주택 대출금을 갚거나, 대학 학자금을 상환할 수 없게 된다. 금리 인상기에 대출이라도 갚으려면 허리띠를 졸라매야하므로 식료품, 의류비 등 의식주와 관계된 비용을 줄인다. 그러면 관련 산업이 침체를 겪게 된다. 특히 대출업체가 뱅크런을 우려해 인출 중단을 선언할 경우 유동성이 말라버려 이러한 사이클이 더욱 심화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유동성이 악화되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 스테이블 코인은 본디 지불결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거래소에서 코인을 사고 파는데 쓰이지만 비트코인 등 일반 코인에 비해 가격변동성이 낮기에 디파이를 통해 예치를 하거나, 대출을 받을 때 담보로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번 사태로 스테이블 코인에 대한 불신이 뿌리깊게 자리잡게 되면 공황 상태에서 투자자들이 환매를 요구했을 때 1달러에 1개를 교환해줄 수 있는 USDC 같은 스테이블 코인만이 디파이 전용 화폐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에 자연스럽게 테라USD 같은 담보가 부족한 스테이블 코인은 시장에서 퇴출된다. 쉽게 말해 자체 금융시장을 운영하던 전세계 국가들의 통화가 사라지고 기축통화만 살아남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스테이블 코인 시장과 디파이 시장이 유동성 감소로 침체를 겪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