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전산구축 ‘갈팡질팡’
여소야대 정국서 입법 난항 우려
“부칙 개정은 수월할지도...여야 합의 관건”
◆…국회 본회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윤석열 정부가 내년 시행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 과세를 2년 미루기로 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소득세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투자자와 업계의 눈은 모두 국회를 향하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연내 법안 개정이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지난 16일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금융투자소득세 시행을 2025년으로 2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금융투자소득세가 도입되면 대주주 여부에 상관없이 주식과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로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는 20%(3억원 초과분은 25%)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외에도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인 대주주 범위가 보유주식 10억원 이상에서 100억원 이상으로 축소되고, 증권거래세 세율이 0.23%에서 0.20%로 하향 조정될 예정이다. 한국투자증권은 “대주주 범위가 축소되고 증권거래세가 인하되면서 주식거래에서 발생하는 세금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며 “개인투자자에게 유리한 변화”라고 진단했다.
개미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당초 대선공약은 폐지였다가 2년 유예로 후퇴했는데 여소야대 정국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본다”라며 “2년간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2년 후 결정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부자 감세’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수 확충 측면에서 좋지 않은 방향이고 일반 투자자보다는 대주주에게 유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주가 상승이나 주식시장 활성화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도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내년 도입을 전제로 전산구축에 나섰던 증권사들은 대부분 기존에 진행하던 작업을 계속한다는 입장이다. A증권사 관계자는 “과세대상 소득을 분류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에 유예된다 해도 2년 후를 위해서는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른 증권사들도 자체적으로 전산을 구축하거나 외주, 컨설팅 등을 통해 ‘일단’ 준비하고 있다.
다만 소득세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행법에 맞춰 전산구축을 준비해온 입장에서는 매몰비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라며 “시행, 유예 또는 폐지 여부를 국회에서 빨리 결정해줬으면 좋겠다. 지금은 국회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소야대 국회서 소득세법 연내 개정될까
금융투자소득세를 2년 유예하려면 소득세법을 고쳐야 한다. 소득세법 본문에는 금융투자소득세의 과세표준, 세율, 원천징수 등 상세 내용이 담겼고 부칙에 시행시기가 명시됐다.
고광효 기획재정부 조세총괄정책관은 지난 16일 브리핑에서 “금투세는 일단 2년 유예하고 2년 뒤에 시장 상황을 봐서 (시행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안 개정을 위해서는 170석을 가진 야당과의 합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17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정부 경제정책을 “부자감세”라고 지적하며 “(민주당은) 정책 입법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밝힌 바 있어 험로가 예상된다.
이에 대해 정의정 한투연 대표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길 바란다. 민주당은 정책의 이면까지 따져서 국민에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다시 한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라며 “민주당사 앞에서 집회를 계속하며 법안을 반대하지 말아 달라는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관련 내용은 7월 말~8월 초 정기 세법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전해진다. 법안이 국회에 접수되면 위원회 심사, 체계자구 심사, 본회의 심의, 정부 이송을 거쳐 공포된다.
김우진 변호사(법무법인 창천)는 “실질적으로는 정부가 발의하지만 여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하는 의원입법 형식으로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발의보다 세부적인 절차가 생략돼 좀 더 짧게 갈 수는 있지만 결국 여야합의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소득세 관련 내용을 삭제하는 게 아니라 시행시기만 유예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될 가능성은 비교적 낮을 것으로 점쳐진다. 법사위는 체계자구심사를 통해 법률안의 문구가 명확한지, 입법의도와 달리 해석될 여지가 있는지 등을 검토한다.
김 변호사는 “본건은 본문을 개정하는 게 아니라 부칙에 숫자만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체계자구심사에서 오래 끌 가능성은 없다”며 “시기만 조정하는 것이니 절차가 굉장히 간략하다. 연말에라도 합의되면 개정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폐지보다는 2년 유예 후 추가 2년을 유예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클 것 같다”라며 “폐지 후 다시 시행하려면 법률 문구를 만드는 과정을 처음부터 해야 하니 폐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