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나는 테라와 함께 태어났지만 존재의 이유가 다르다. 루나는 테라USD 가격이 1달러에서 소폭 오르내릴 때마다 차익 거래 기회를 제공해 테라가 일정한 가격을 유지하도록 돕는 보조수단이다.
테라의 경우는 어떨까? 테라 블록체인 내 앵커프로토콜에 예치할 경우 19.45%의 연이자를 제공한다는 점이 테라 가치의 원천이다. 이러한 점에서 폭락 직전 루나의 적정 가격을 산출한다면 시장가를 꼽을 수도 있지만, 가치 창출 측면에서 생각하면 0원으로 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416억달러(54조원)를 기록하면서 전세계 시총 7위까지 올랐던 코인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몰락했는가 하는 점은 의문으로 남는다. 규모만 놓고 보면 삼성바이오로직스(58조원)가 어느날 갑자기 99.99% 폭락해 일주일만에 코스피에서 상장폐지된 것과 같다.
◆ 테라USD 대량 매도로 인한 디페깅이 몰락의 단초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테라USD(UST) 디페깅이 발생한 지난 5월 7일에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블록체인 온체인 데이터 분석 업체 난센이 지난달 내놓은 보고서는 테라USD의 1달러 가격이 붕괴된 시점에 UST 입출금이 집중됐다면서 5월 7일 21시 44분부터 다음날인 8일 5시 35분까지의 거래에 주목했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테라USD 1달러 붕괴 상황(5/7~5/8). 사진 = 난센보고서, 코인데스크 캡처
보고서는 LFG가 이 때 UST 1억5000만개를 탈중앙화 거래소 커브파이낸스에서 인출했는데 직후 익명의 지갑에서 UST 8500만개를 커브로 입금했다고 설명했다. 입금은 보유 중인 UST를 커브에서 다른 암호화폐와 스와프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UST를 매도하는 것과 같다.
◆…탈중앙화 거래소 커브 파이낸스에서 발생한 테라USD 순유입. 사진 = 난센보고서 캡처.
난센은 당시 익명의 지갑이 거액의 UST를 매도하면서 테라의 1달러 가격이 붕괴됐지만, 해커나 기관이 주도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결론내렸다. 익명의 지갑의 정체와 거액의 UST 자금 출처를 밝히지 못한 채 종결된 것이다.
◆ 헤지펀드 개입설과 테라폼랩스의 자작극 의혹
당시 항간에는 시타델과 블랙록 등 특정 헤지펀드 세력이 이번 사태에 개입했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지만, 두 펀드가 직접 블룸버그 등 언론에 성명을 보내 반박하면서 이같은 주장은 일단락됐다.
한편,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익명의 지갑 A와, 이 지갑에 UST 자금을 넣어준 또 다른 지갑 A(T) 모두 테라폼랩스가 관리하던 지갑이라는 사실을 포착했다며 웁살라시큐리티와 함께 분석한 결과를 단독 보도하기도 했다.
◆…사진=코인데스크 코리아 캡처
디지털자산 시장의 대침체를 부른 루나·테라 쇼크, 이 사태를 촉발한 장본인이 다름아닌 테라폼랩스라는 주장이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익명의 지갑 A에 거액의 UST를 넣어준 지갑 A(T)의 거래내역을 추적했는데, ‘104721486’이라는 특정 아이디(메모)에 UST를 꾸준히 보낸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 메모의 거래내역을 조사해봤더니 LFG의 지갑과 ‘테라 2.0’의 검증인 루나클래식 다오(LUNC DAO)의 지갑을 발견했다고 이 매체는 설명했다.
코인데스크 코리아는 위 지갑들을 전수조사한 결과 서로 수천만개에서 1억개에 이르는 루나를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LFG의 지갑, 루나클래식 다오의 지갑, 지갑 A(T), 지갑 A가 모두 동일 소유자의 지갑이거나 하나의 집단이 관리하는 지갑이라고 결론지었다.
검찰도 이러한 정황을 확인하고 수사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 99.99% 폭락 속에서 시장을 이긴 승자는?
테라폼랩스는 지난달 8일 LFG가 준비금으로 마련해놨던 비트코인을 매도해 테라USD를 사들이며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매도세는 이미 겉잡을 수 없이 번져 다음날인 9일에는 루나의 시총이 UST에 역전되는 상황에 이른다.
LFG 준비금도 UST 규모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던 상황에서 루나 시가총액이 UST와 역전됐고, 앵커프로토콜에 예치된 자금마저 빠져나가니 테라 가치를 담보해주던 든든한 뒷배가 전부 사라졌다. 테라USD 디페깅은 더욱 가속화됐고, 알고리즘에 의해 루나가 쏟아지면서 루나와 테라는 서로 경쟁하듯이 폭락했다. 결국 루나 코인은 10일 코빗을 시작으로 국내 대형거래소들의 투자유의 종목에 지정되기 시작했다. 13일에는 바이낸스 등 대형 거래소들이 루나 상장폐지를 공지했다.
그동안 루나·테라 쇼크를 파헤치면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무엇인지, 이번 사태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수십조 시총의 코인이 어쩌다 일주일만에 상장폐지까지 갔는지를 살펴봤다. 그런데, 루나와 테라가 폭락하는 와중에 큰 돈을 번 사례는 없었을까?
테라USD가 본격적으로 폭락하기 직전 투자자들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100만UST 이상을 굴리던 투자자들은 일시적인 디페깅이 발생하자마자 시장에서 발을 뺐고, 1만UST 미만을 보유했던 투자자들은 폭락 와중에 오히려 보유량을 늘린 것으로 드러났다.
미 헤지펀드 점프크립토는 지난 5월 6일부터 9일까지 테라USD 보유자들을 △1만UST를 보유한 지갑 △100만UST를 보유한 지갑 △1만~100만UST를 보유한 지갑 등 지갑 크기별로 3개의 계층을 나눠 각 계층마다 보유량이 하루 간격으로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살펴봤다.
◆…5/6~5/9까지 지갑 크기별 테라USD 보유량 변화. 사진=점프크립토, 블룸버그 캡처
그 결과, 100만UST 이상을 보유한 지갑의 테라USD 보유량은 디페깅이 발생한 이후 급격히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암호화폐 헤지펀드 판테라 캐피탈의 경우 UST 디페깅을 눈치챘을 때 루나를 현금화해 큰 수익을 올렸다고 더블록은 보도했다.
조이 크룩 판테라 캐피탈 공동 최고 투자 책임자는 더블록과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판단, 폭락 발생 전에 이미 투자금의 80% 가까이를 현금화했다"면서 "UST 디페깅을 눈치챈 뒤에는 나머지 20%의 투자금 중 루나 보유분을 추가로 매각했다"고 설명했다.
폴 베라디타킷 판테라캐피탈 파트너 투자자는 "당사는 초기 루나 투자금 170만달러를 1억7000만달러로 불렸다"고 더블록에 밝혔다.
결국 이번 사태에서 대형 투자자들이 소규모 투자자들보다 먼저 UST에서 손을 뗀 점을 미뤄 봤을 때, 현 암호화폐 시장은 대형 프로들의 놀이터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블룸버그는 진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