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육 공백으로 중위권 붕괴
사교육비 역대 최대치 기록
'깜깜이 수능'·잦은 입시 정책 뒤집기로 사교육 번창
수업중 엎드려 있는 학생 세운 교사 폭행죄로 벌금형
◆…서울 노원구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대면 수업과 원격 수업이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한국인 최초로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초·중·고 시절 수학성적이 뛰어나지 않았던 허 교수는 중3 때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려다가 “지금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교사의 말을 듣고 단념한 적도 있다고 했다.
입시 위주의 문제풀기식 기능적 측면에 치중하고 있는 한국의 수학교육은 창의적인 수학 능력을 가진 학생에게는 불리한 게 현실이다.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도 필즈상 수상기념 기자 브리핑에서 "한국의 수학 시험은 하루에 기껏해야 한두시간을 주고 빨리 푸는 방식"이라며 현행 교육제도를 꼬집었다.
우리나라는 1988년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 처음으로 참가한 이래 매년 최상위 성적을 기록하는 등 외견상 수학의 국제적 위상은 높아졌지만 정작 교육현장의 학생들 사이에서는 수업만족도가 떨어지면서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고있는 상황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4월 8000여 명의 학생·학부모·수학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고등학생 88.4%, 중학생 74.2%, 학부모 64.3%가 '학교 수학 시험이 수포자를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응답했다.
또 중학생 81.5%와 고교생 90.5%, 학부모 90.7%는 "학교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사교육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수학 교사의 68.6%도 "사교육이 학교 시험을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답했다.
학교 수업을 쫓아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결국 사교육 시장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공교육 공백으로 사교육 시장 번창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수업이 장기화되면서 사교육에 의존하는 경향은 더욱 심해졌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에서 지난해 국내 사교육비 총액은 23조4158억원이었다. 학생수는 줄고 있는데 사교육비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사교육의 목적은 학교수업보충(50.5%)이 가장 높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등교를 하지 못해 일반교과 전반에 불안심리가 작용하면서 사교육 수요가 확대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깜깜이 수능'(수능 난이도를 예상할 수 없음)과 잦은 입시 정책 뒤집기로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을 증폭시켜 결과적으로 사교육을 강화했다는 지적이다.
교육특구에선 팬데믹 기간에 부족한 공교육을 사교육으로 보충하면서 오히려 학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반면 사교육 기회가 적은 취약 계층 학생들의 피해는 커지고 있다.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교육부 제공
실제로 '2021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학교-학교 간 편차도 크고 대도시와 읍면지역의 학력 격차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생들의 기초학력 역시 2020년에 이어 하락을 거듭하고 있다.
중고등학생의 학력 수준이 역대 최악으로 떨어진 가운데 'OECD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공교육비 지출(GDP대비 3.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4%)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서는 돈은 돈대로 쓰면서 교육의 경쟁력은 후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공교육이 정상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중위권 학생들 역시 상·하위권으로 이탈하는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학력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공교육 공백이 중위권 붕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일선 교사들은 “중위권 학생들에게 수업을 맞춰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위권이 줄어들면 학교 수업 난이도를 어디에 맞춰야 할지 애매해지고 결국 어느 누구도 수업 내용에 만족하지 못한다"며 공교육의 질 논란이 심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100명중 7명 수업 참여...’잠자는 교실‘ 악순환
◆…사진: EBS 다큐 '다시 학교' 화면 캡처
한편 교사들도 학생지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과서가 없는 학생은 기본이고 고학년으로 갈수록 교실은 잠자는 공간이 되어 수업 자체가 힘든 지경이라고 전했다. 지난해에는 고등학교 수업 중 엎드려 있는 학생을 강제로 일으켜 세워 ‘억울하면 신고하라’고 말한 교사가 폭행죄로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인문계고 교사는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는 학생을 선도처분 요청한다면 하루에도 수십명을 넘겨야 한다"며 "현재는 방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잠자는 교실'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실태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교실에서 교육 활동을 하는데 가장 힘든 점으로 ‘과중한 행정업무’에 이어 학생의 학습 무기력(38.7%)과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38.6%)을 꼽았다. 수업 시간 엎드려 잔다는 항목에 '거의 없다’고 응답한 고등학생은 7.3%뿐이었다. 100명 중 7명만이 수업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이유에 대해서는 51.6%의 학생들이 ‘수면 부족이나 피로 때문’이라고 답했고 ‘의욕이 없어서’(19.4%)와 ‘수업이 어려워서’(13.6%)였다. 서울의 한 교사가 680명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 공교육 모범생 핀란드
◆…핀란드 포롤라흐티 종합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교육의 길잡이로 꼽히는 핀란드는 미래형 인재를 만드는 교육시스템으로 정평이 나있다. 공교육 위주인 핀란드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도 늘 높은 순위를 받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정규교육 과정을 마친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학생들사이에서도 경쟁이 없다. 성적표에는 등수 대신 각자가 설정한 목표 달성률이 적혀 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천연자원이 부족해 인재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점은 일치하지만 교육 방식은 차이가 크다.
◆ 공교육 정상화에 대한 방안
교육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공교육 문제점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점을 '입시정책'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입시정책이 변화할수록 사교육에 의존할 확률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 교육 전문가는 “정책이 변화할 때 발 빠르게 적응하는 것은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이라고 말했다.
계층 간 교육격차를 줄이려는 노력 또한 공교육 정상화에 우선 과제라고 보고 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공교육이 개인의 다양한 교육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이 사교육 번창의 한 이유가 되고 있다”며 "교육 약자의 문제를 공교육 기관을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바우처 등 제공을 통해 사교육기관을 활용하면 더 효과적으로 학습격차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아울러 교사의 전문성 및 처우개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학교특성화를 통해 학생들 능력에 맞는 적합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며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와 그렇지 못한 교사를 구분하는 제도도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홍콩과학기술대 김원철 교수...다양한 방식의 대학 입시 제도로 개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김원철 교수 사진: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유투브 화면 캡처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과 김원철 교수는 7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한국의 공교육은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대량 양산하고 있지만 시험을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들을 양성하지는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최고 수준이지만 흥미도는 정반대이다"며 "굉장히 재미없게 죽도록 공부만하는 공부 지옥에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교사들의 처우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낸 그는 "교사는 국가공무원이다. 아무리 잘 가르쳐도 보람과 자부심만 있을 뿐"이라며 "능력있는 교사들이 토론식 수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쳐도 인센티브가 부족하다. 공교육 시스템에서 이 부분은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홍공과기대 같은 경우 홍콩입시,중국입시,한국 수능을 보고서도 입학이 가능하다. 다양한 방식으로 시험 본 학생들이 다양한 채널들을 통해서 대학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한다면 (공교육이) 개선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하면서 "한국도 수능뿐만 아니라 대학 입시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된다"고 조언했다.
공정성 문제를 제기하자 "과연 수능 점수를 일렬로 세운다고 공정성 시비가 없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시험 보는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보다는 다양성을 열어놓으면서 제도를 보완해 나가는 과정이 더 좋은 방식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