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제55차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 참석,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 기획재정부)
윤석열 정부의 첫 세법개정안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감세(減稅)다. 그것도 대기업, 다주택자를 겨냥했다. 이전 정부에서도 경제주체(기업)들의 투자심리를 깨우기 위해 '감세 인센티브'를 꺼낸 바 있지만, 현 정부는 세율 조정·제도 폐지 등 기업·부동산에 적용되는 과세체계를 아예 뜯어고치는 대수술을 감행한다. 윤석열 정부가 '친기업·친시장'을 표방하는 만큼, 향후 조세정책을 설계할 때 해당 계층에 대한 감세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는 시각이 짙다.
문제는 깎아주는 세금은 넘치는데 들어오는 돈이 없다. 세수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비과세·감면 폐지(또는 축소)를 통한 증세를 내걸고 있지만, 대규모 감세가 추진되다보니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효과는 마이너스(-) 13조원에 달한다. 정공법을 피하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늘리려는 조치도 재정 불안의 위험성을 해소하는데 역부족인 모양새다. 올해 국세 수입이 정부의 전망치보다 더 적게 걷힐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도 있다. 전문가들은 "재정수요에 따른 재원조달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세제개편으로 세수 13조 줄어든다
2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2년 세법개정안'에 따라 향후 4년(2023~2026년)간 13조1000억원의 세수 감소가 발생한다. 기업, 다주택자 등을 대상으로 한 세제가 손질되면서다. 법인세는 6조8000억원·종합부동산세는 1조7000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데, 두 세목(稅目)이 전체 세수효과의 65%를 차지한다.
이른바 '부자 감세'에 영향을 준 부분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다. 현 법인세율은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 4단계 구간에 따라 10~25% 세율을 적용하는데, 개정안은 사실상 2단계(과표 5억원 이하 10% 특례세율 구간 제외)로 좁힌다. 특히 과표 3000억원이 넘는 초(超)대기업이 적용받는 세율은 25%에서 22%로 낮춘다. 예컨대, 과표 4000억원인 기업은 현행보다 법인세를 2980만원 덜 내게 된다.
그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수 국가가 법인세율을 인하해 우리나라의 세율은 OECD 국가 평균(2021년 기준, 21.2%)보다 높다'는 이유로 국제적인 조세경쟁력이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이 '투자처'로서 매력이 없다는 소리다. 외국보다 낮은 법인세율 체계를 갖는다면, 국내기업의 해외투자를 줄이고, 외국인 투자를 유도하는데 효과를 볼 것이란 분석도 있다. 다만 세금을 물린다고 해도 투자를 안 했는데, 세금을 줄이면 투자를 할지 의문이다. 정부가 '기업의 경영활동을 제약한다'는 이유로 폐지하겠다고 한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옛 기업소득환류세제) 얘기다. 기업이 남는 돈(사내유보금)을 고용이나 배당·투자 등으로 쓰는 만큼 세금을 줄여주고, 투자를 안 하면 세금을 내게 하는 일종의 징벌적 세제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17년엔 4200여억원이 걷혔고, 2022년엔 1조원을 넘어섰다. 기재부는 "국제적으로도 투자·고용 촉진 등을 위해 세금 부과보다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례가 다수 있다"는 점을 폐지 이유로 들었다.
◆…기획재정부는 21일 발표한 '2022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세부담 적정화, 부동산 세제 정상화를 위해 주택 수에 따른 차등과세를 가액 기준 과세로 전환하고 세율을 조정한다"고 했다.(사진 연합뉴스)
종합부동산세제도 완전히 뜯어고친다. 대표적으로 종합부동산세율이 단일세율(중과 폐지)로 바뀐다. 현 조정대상지역 1주택자의 종부세율이 0.6~3.0%인데 비해 2주택 이상(비조정지역은 3주택 이상)이면 1.2~6.0%의 중과세율을 적용받는다. 개정안에 따라 단일 누진세율(0.5~2.7%)로 바뀐다. 주택 수가 아닌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겠다는 것이다. 세율은 2019년에 적용받던 수준이다. 세부담 상한은 150%로 단일 구조를 갖는다.1주택자의 기본공제금액도 12억원(현 11억원)으로 올린다. 종부세제 손질로 공시가격 30억원인 2주택자는 종부세 부담이 7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뚝 떨어진다. 기재부는 "종부세 도입 이후 기본공제금액 조정이 없이 주택가격 상승에 따라 종부세 과세인원이 증가하고 있으므로 기본공제금액 현실화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집값이 올랐으니 공제금액도 올려준다는 부분은 특정계층의 이익을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재정수요에 따른 재원조달 방안이 없다 보니, 대규모 감세가 재정 악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재원조달 성격인 비과세·감면 정비율은 고작 13%다(74개 항목 중 10개 종료).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가)OECD 국가들에 비해 조세부담률이 낮다고 언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조세 부담을 강화해서 복지 재원을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문제"라면서 "이번 개정안은 '증세 없는 세금 깎아주기'로 포퓰리즘 성격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정의당과 참여연대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김태일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도 "감세는 쉬워도 증세는 어려운데,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필요한 증세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공평하지 못한 세금, 소득세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 조정, 자료 기획재정부)
사실 정부의 세법개정안이 발표되기 앞서, 기업·집주인에 대한 감세 조치는 예고되어 있었다. 정부는 '부자를 위한 감세'를 의식한 듯, 근로소득자를 대상으로 한 감세 조치도 개정안에 넣었다. 근로소득자의 대부분이 속한 소득 과표 4600만원 이하 구간을 5000만원으로 조정하는 등 중·저소득 근로소득자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조치다. 물가는 상승했지만 과표구간과 세율이 장기간 고정되어 '소리없는 증세'가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서다. 이 조치로 총급여가 5000만원·7800만원인 근로자라면 각각 18만원·54만원씩 소득세가 줄어든다.
다만 공평하지 못한 세금이라는 비판이 클 것으로 보인다. 그간 고소득자에 대해서만 증세(최고세율 인상)가 이루어졌고, 올해도 ‘우회 증세’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개정안엔 총급여 1억2000만원이 넘는 근로자에 대해 근로소득세액공제 한도를 현 5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줄이는 내용을 담았다. 이 조치로 2000억원의 세수가 더 걷힐 전망이다.
가업승계의 걸림돌 제거
◆…(자료 기획재정부)
'친기업 환경 조성'에 초점을 맞춘 세제 손질도 이루어졌다.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는 대상기업 매출액 기준을 현 4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확 늘리고, 공제한도는 500억원에서 1000억원까지 올린다. 사후관리 기간은 7년에서 5년으로 줄였고, 사후관리 요건 중 업종유지는 '대분류 내(현 중분류 내)' 변경을 허용한다. 그간 한국의 엄격한 가업상속공제 요건이 투자나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기재부는 "급변하는 기업환경을 감안해 승계기업이 표준산업분류상 대분류 내에서 업종변경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며 "현행 규정상 평가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칠 경우, 제한 없이 업종 변경도 가능하다"고 했다. 여기에 상속인이 승계받은 가업을 영위하는 기간동안 상속세 납부에 대한 부담 없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 '납부유예' 제도도 생긴다.
전문가들도 가업승계 지원에 대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입을 모은다. 가천대 경영학과 윤태화 교수는 "기업의 주식이 상속되는 경우 기업을 유지하면서 상속세를 납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며 "고용이나 국민경제에의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특히 세제에서 과도한 차별도 없어야 한단 목소리다. 오문성 한양여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 가업상속 기업승계 제도 혜택을 중견기업과 중견기업까지만 가는 것도 반대다. 대기업까지 가는 게 맞다"며 "기업승계에 대한 혜택은 그게 중소든 중견이든 대기업이든 특별히 구별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아쉬움 남는 서민·중산층 세부담 완화책
근로·자녀장려금의 지급 잣대인 재산 기준은 2억원 미만에서 2억4000만원으로 오른다. 그간 주택가격 변동을 감안한 조치다. 근로장려금의 최대지급액도 165만원(현 150만원), 홑벌이가구는 285만원(260만원), 맞벌이가구는 330만원(300만원)으로 인상한다. 부양 자녀 1명당 최대 70만원을 주던 자녀장려금의 지급액도 80만원으로 오른다. 이 조치로 약 66만400가구(근로장려금 60만 가구, 자녀장려금 6만4000가구)가 수혜를 볼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방향성을 떠나 근로장려금 지급할 때 재산으로 판단하는 게 적절한지는 논란으로 남는다. 이 제도를 본떠 온 미국에서는 재산 자체를 보지 않고, 오로지 근로소득으로만 따져 장려금 지급대상을 정한다.
무주택 세대주가 부담하는 월세액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최대 12%에서 15%로 올린다. 총급여 5500만원 이하 15%, 총급여 5500~7000만원 구간은 12%다. 월세 세액공제 대상 확대에는 체감 폭이 작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같은 세입자 신분이고 근로를 하는 프리랜서는 월세공제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에 대한 소득공제 지원을 강화한 부분도 있다. 적용기한을 3년 연장하고, 추가공제 항목별 한도를 합쳐 같은 돈을 써도 공제를 더 받게끔 설계했다. 다만 '소득파악'이라는 제도의 목적이 달성된 만큼 폐지해야 한단 의견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