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사법부 개입… 사실상 배상 방해"
임재성 변호사 "외교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신뢰관계 파탄, 협의체 불참 선언"
"정부가 사법부를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운데)와 관계자들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위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는 대법정으로 행진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외교부가 대법원이 일본 전범기업들의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판결 이후 현금화 절차 협의 과정에서 대법원에 강제동원 피해자의 현금화 보상을 미뤄달라는 의견서를 낸 것으로 확인돼 파장이 일고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임재성 변호사는 5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외교부가 대법원에 낸 의견서는 사법부가 현금화 절차의 결정을 빨리 하지 말아달라는 취지로 의견을 낸 것"이라며 "외교부가 피해자들의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을 하면서 양해조차 구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임 변호사는 그러면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민간협의체의 불참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며 "외교부와 강제동원 피해자 사이에 신뢰관계가 파탄났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주 화요일 외교부가 지금 대법원에서 진행 중인 강제동원 현금화 관련 사건에 의견서를 제출했고, 이게 정부가 사법적 절차에 의견서를 내는 게 매우 이례적이고 중대한 행정부의 행위이고, 피해자들의 권리가 내쳐질 위험이 생김에도 사전 논의는커녕 통보조차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사전 통보가 없었음은 물론, 사후적으로도 저희가 먼저 발견하고 이게 무슨 의견서냐고 물어봤을 때도 제출한 의견서를 지금까지 확인해 주지 않고 있다"고 외교부의 행태에 대해 비판했다.
임 변호사는 이런 외교부의 행태에 비춰 "외교부가 피해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양해조차 구하지 않았는데 무슨 신뢰를 갖고 대화를 더 할 수 있겠느냐는 판단이 든다"고 탄식했다.
그는 "대법원의 판결은 이미 지난 2018년 10월에 받았던 것"이라며 "판결이 힘이 있는 것은 판결에서 진 일본 기업들이 판결을 따르지 않았을 때 저희가 강제적으로 판결을 이행할 수 있는 강제집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외교부가 그 강제집행을 미뤄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외교부의 행동이 중대하다고 본 이유에 대해 "결국 (대법원의) 판결의 힘을 한국 정부가 지금 약화시킨 것이고, 일본으로서는 가장 원하는 행동을 한국 정부가 해 준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심지어 이런 중대한 행동을 하게 되면 사전에 논의와 양해와 통보라는 절차를 충분히 거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긴급하고 급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이런 식으로 신뢰관계를 깨는 행동을 할까 의문스럽다"며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논의 절차에 참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강제동원 피해자 측은 솔직히 한국 외교부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지금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사실 일본 정부, 일본 기업과 오랜 시간동안 소송이든 소송 밖에서든 싸워왔는데, 그래서 결국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받고 나서도 지금까지 계속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데, 지금 한국 정부까지 싸워야 되는지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임 변호사는 외교부의 의견서가 대법원에 영향을 줄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영향을 줄 거라고 본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이 정부의 의견서에 영향을 받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행위가 법에 따라 의견서를 낼 수 있다는 조항에 근거해 한 것으로 불법으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굉장히 이례적인 행위이고, 정부가 대법원을 정치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왔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국면에서는 대법원이 판단을 늦게하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고 그렇다고 볼 것이고, 판단을 빨리하면 정부가 그렇게 의견서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는데 사법부가 너무 적극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며 "정부가 대법원을 정치 한복판에 끌고 들어온 것은 전략적으로 잘못된 판단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가 신속한 한일 정상회담이나, 8.15 담화를 앞두고 뭔가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평가했다.
임 변호사는 피해자측 요구를 묻는 질문에 "지금 일본 측이 판결 이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고 있고, 만약에 집행이 되면 보복하겠다는 것까지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외교적 협상이라고 포장되지만 이게 타협하겠다는 건데요. 타협을 하기 위해선 마지노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피해자측의 마지노선은 첫째, 일본 기업의 사과와 둘째로 일본 기업이 돈을 낼 수 없다면 피고 기업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만들텐데 여기에 한국 쪽 돈과 일본 쪽 돈이 섞는 방식이더라도 최소한 일본 피고 기업이 100원이라도 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사실은 이런 정부의 협상안이 도출되면 저희는 대리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소송의 원고이신 피해자, 또는 피해자 유족들에게 모두 개별적인 동의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며 "피해자나 유족이 50명이라면 정부안이 어떻게 나오든 간에 그 안을 갖고 개별적으로 확인, 동의를 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 중 스물다섯 분 정도가 동의해 주시고, 스물다섯 분 정도가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그 동의 상황에 대해 정부에 알리고, 동의하지 않는 그룹은 계속 현금화 강제집행을 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2018년 10월 30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전범 기업'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억 원씩의 위자료 배상 판결을 내렸다.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 기업들이 배상을 하지 않고 있어서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