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대침수에도 여야 '네 탓' 공방만... 머나먼 수방 대책

80년 만에 중부지방 집중 호우로 수도 서울 초토화

민주 "서울 수해 오세훈 책임" vs 국힘 "거짓선동, 정치투쟁 이용"

국힘 "吳 '5조 대심도 빗물터널' 계획 축소한 건 朴 전 시장" 역공

'퇴근길 침수 목격' 尹대통령 발언... '재난대응 역량' 도마위 올라

여야, '네 탓' 공방보다는 '협치'로 재난 극복해야... "상식적인 일"

지난 8일부터 시작된 80년 만의 기록적인 호우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지역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대한민국 심장인 서울이 이번 ‘기습 물폭탄’에 도시 전체가 마비될 만큼 큰 피해를 입었지만 정치권은 ‘네 탓’ 공방만 펼치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인해 11일 오전 6시 기준 인명 피해는 사망 11명, 실종 8명, 부상 18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거주지가 파손되거나 침수된 이재민은 548세대 982명으로 서울(654명)과 경기(317명)에 집중됐다.

또한 주택·상가 침수는 2천676동으로, 그중 대부분인 2천419건이 서울에서 발생했다. 한마디로 수도 서울이 초토화된 것이다.

서울 대침수 사태에 여야는 협치는 고사하고 서로 '네 탓' 공방을 하며 여전히 기(氣)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세훈 시장 책임론'을, 국민의힘은 '박원순 전 시장·민주당 책임론'으로 맞불을 놓으면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비대위 회의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서울시가 집중호우 대비를 위한 수방·치수 예산을 900억 원이나 삭감한 것을 들고 나왔다.

아울러 "중대재해와 안전관리업무를 전담하는 안전총괄실장과 국장 자리도 비어있는 상태였다"며 "집중호우가 예고된 상황에서 사람도, 예산도 모두 구멍이었던 셈"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이에 국민의힘은 민주당 주장을 '거짓 선동'으로 규정하며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올해 수방·치수예산을 삭감했다는 거짓 선동까지 등장했다"며 예산 삭감은 민주당이 의석 중 90% 이상을 장악했던 서울시의회가 한 일로 이게 '팩트'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야당은 국가적 재난을 정략적 기회로 삼고, 국민의 안전을 정치투쟁의 동력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거짓선동으로 정권을 위기에 빠뜨렸던 제2의 광우병 사태라도 꿈꾸고 있는 거냐"고 질타했다.

허은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2011년 7월에도 이틀 동안 폭우가 서울을 강타했고, 우면산 산사태 등 강남구와 서초구·양천구 등에서 큰 피해가 발생했다"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은 긴급수방대책을 발표하며 10년간 5조원을 투입해 상습 침수지역 7곳에 '대심도 빗물 터널'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후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2013년 7곳의 터널을 1곳으로 축소하는 등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시의회에 제출한 4천450억 원의 수방 예산도 248억 원이 추가 삭감된 채 통과되었다"며 "그 결과가 폭우에 잠긴 오늘의 강남구와 서초구를 보여주었고, 피해는 오롯이 서울 시민에게 돌아갔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서울 대침수 사태에 대해 ‘인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시의 '2022년 예산서'에 따르면 시는 올해 수방 및 치수 분야에 4천2백2억원을 배정했다. 당초 제출한 예산 4천4백50억원 중 248억원(5.9%)이 삭감됐다. 지난해(5천99억원)보다는 약 17.6% 준 셈이다. 삭감한 예산은 자치경찰, 소방 관련 예산 확중 등에 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시장이 과거 2010년 9월 광화문·강남 일대 침수와 2011년 7월 우면산 산사태 이후 관련 예산을 확대했지만, 박 시장이 취임한 이후 환경단체의 강한 반대로 정책이 바뀌어 '대심도 터널 공사'가 7곳에서 1곳으로 줄어드는 등 예산이 삭감됐다는 게 국민의힘 주장이다.

민주당, '사저 지시' 尹대통령 비난... 국힘 "모든 게 정쟁 소재로 보이냐?"

박형수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100년만의 폭우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를 두고 대통령이 안보였다며 현 정부가 대통령실을 이전한 것까지 끄집어내어 공격하는 민주당을 보며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통령실이 밝힌 바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오후 9시부터 오늘 오전 3시까지 한덕수 국무총리, 오세훈 서울시장, 이상민 행안부장관, 한오섭 국정상황실장 등으로부터 실시간 보고를 받고 신속하고도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새벽 6시부터 다시 보고를 받고 추가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박 원내대변인은 이같은 내용을 언급하며 "대통령은 폭우가 내리고 있던 상황에서 경호와 의전을 받으면서 외부로 나간다면 현장 인력들의 대처역량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자택에 머무르며 상황에 대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민주당은 100년만의 호우 피해를 정쟁의 소재로 이용하는 정치 공세를 멈추고 호우 피해 대처 및 복구대책 마련에 힘을 모아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했다. 반면 민주당은 윤 대통령이 서초동 사저에서 전화로 지시를 내린 것과 관련, "대통령이 사실상 이재민이 되어버린 상황을 국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며 "취임 전 무조건 대통령실과 관저를 옮기겠다는 대통령의 고집이 부른 참사"라고 맹비난했다.

조오섭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말한 뒤 "대통령은 24시간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자리"라면서 "긴급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상시적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통령이 있는 곳이 곧 상황실'이라는 대통령실 해명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의 변명은 참으로 구차해 보인다"며 "그런 논리라면 NSC 위기관리 센터등은 무슨 필요가 있는지 묻고 싶다"고 반박했다.

'퇴근길 침수 목격' 尹대통령 발언... '재난대응 역량' 도마위 올라

한편 윤 대통령이 9일 오전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 일가족 참변 현장을 방문하면서 '(전날) 퇴근길에 일부 지역에 침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국가적 재난에 대응한 종합적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야권은 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서도 ‘아마추어리즘의 안이한 대응’이라며 침수 피해를 입은 시민들의 실망과 분통을 터트리게 하는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퇴근길에 침수 상황을 목격했더라면 대통령실 위기관리센터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로 이동, 대통령으로서 빨리 상황을 점검하고 최종 결정과 지시를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게 옳다는 지적이다.

이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밤 10시 반 경 세종시 종합상황실에 업무복귀했고, 오 시장도 1차 퇴근 상태였지만 늦은밤 다시 서울시청으로 나와 상황을 점검하고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비교가 됐다.

물론 대통령이 있는 장소는 24시간 비상체계가 가동되고 있고, 의사결정과 지시가 내려지기는 하지만 위치(Location)가 주는 무게감도 무시할 수 없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당일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관계자들로부터 계속 보고를 받고 지시를 했다고 방어했지만, 서초동 사저와 위기관리센터 등은 그런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적 비상상황에서는 여야가 한마음으로 일체가 돼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상식적인 일이다. 미국의 경우 의회는 정책 대결에 있어서는 그 어떤 국가보다도 치열하게 싸운다. 하지만 국가 재난이나 비상사태에서는 여야가 일치단결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전통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후 전문가는 조세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 향후 동남아지역과 같이 아열대성 온대기후로 변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이 나오고 있다”면서 “장마철이나 태풍 때 집중호우가 내리던 과거와는 달리 연중 어느 때든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앞으로도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여야는 이번 ‘물폭탄’ 피해를 ‘네탓’으로 돌리는 정쟁의 도구로 활용하기보다는 조기 피해 복구 방안은 물론 향후 기후변화에 대비한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 여야, '네 탓' 공방보다는 '협치'로 재난 극복해야

다행스러운 것은 여야가 모두 집중호우 피해가 큰 지역에 대해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요청, 조만간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이뤄질 전망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수해대책 점검 긴급 당정협의회에서 "예비비 지출, 금융지원, 세금 감면 등 실질적인 피해 지원 대책도 마련하겠다"며 "수해 피해가 큰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신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앞서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정부는 집중호우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신속하게 실질적인 지원 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