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직장인 A씨는 최근 아버지로부터 아파트 한 채를 증여 받고 신접살림을 차릴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A씨 앞으로 날아온 한 통의 세금고지서가 달콤한 신혼의 단꿈을 산산이 부숴 버리고 말았다.
A씨는 지난해 아파트를 증여 받은 뒤 기준시가(당시 3억4000만원)를 적용해 증여세를 신고했다. 납세의무가 끝난 것으로 판단했지만 국세청이 "증여 받은 아파트의 매매사례가액이 4억2500만원이기 때문에 증여세 1800여만원을 더 내라"고 통보한 것.
억울함에 국세심판원의 문턱을 넘어봤지만 이 마저도 공수표. 심판원은 "현행 상·증세법에 명시된 규정의 입법취지에 비춰볼 때 과세관청의 결정은 잘못이 없다"며 A씨의 불복청구를 기각시켰다.
한 참이 지난 후 A씨는 비단 자신만이 이 같은 '황당한' 경우를 당한 것이 아님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아냈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이 같은 세법규정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알 수 있었다.
□ "현행 유사사례가액 반복적 적용, 분쟁소지 다분"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아파트 등 부동산을 상속·증여할 경우 원칙적으로 시가에 따라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지만 시가를 정확하게 모를 경우 국세청 기준시가를 '보충적'으로 활용토록 허용하고 있다.
다만 상속 개시일 전후 6개월(증여는 3개월)이내 기간 동안 상속(증여)받은 재산과 면적·위치·용도 및 종목이 같거나 유사한 다른 재산에 대한 매매나 감정·수용·경매가 있는 경우 '유사매매사례가격'을 시가로 판단해 기준시가에 우선해 적용토록 하고 있다.
바로 이 부분이 함정인 것. 납세자들은 사실상 자기 주변 아파트 매매시가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아볼 수 없도록 되어 있는 것이 현실. 이에 따라 법대로 기준시가로 세금을 냈다고 후에 국세청으로부터 거액의 세금을 더 내라는 결정을 두들겨 맞고 있다.
심판원에 불복청구를 제기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현행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심판원의 특성상 "법대로 합시다"라는 말이 통할 리가 없는 것이다.
김완일 세무사(경영학 박사, 세무법인 가나)는 13일 이와 관련해 "유사사례가액과 관련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과세관청에 의해 납세자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며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세무사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의 유사사례가액 적용의 한계와 개선방안'이라는 제하의 연구논문을 통해 "보충적평가방법을 보완하기 위해 신설한 현행 상·증세법 시행령(제49조 제5항)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 측면을 고려할 때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다"고 밝혔다.
김 세무사에 따르면 상속(증여)사산의 평가기준일을 전후해 평가대상재산과 유사한 재산의 매매가액 등 유사사례가액이 존재하는지를 납세자가 확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특히 부동산 매매와 관련해 중개업자 등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할 수 없도록 현행 법상 규제가 되어 있기 때문에 납세자들이 일일이 발품을 팔아가며 매매여부와 매매가액을 알아보는 것도 어렵다는 것.
김 세무사는 "납세자가 상속재산 등을 평가해 납세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재산에 대한 시가를 확인해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행 제도 하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납세자의 예측가능성, 법적안정성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 "과세관청 정보독점 '무장해제'‥유사사례가액 납세자에 제공"
김 세무사는 현 제도의 문제점으로 인한 개별납세자와 과세관청간 분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과세관청이 독점하고 있는 '유사사례가액'에 대한 정보를 납세자에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 세무사는 "그동안 매매사례가액 적용에 있어서의 분쟁은 대부분 납세자가 매매사례가액을 몰라서 발생한 것"이라며 "납세자가 유사사례가액에 대한 정보를 과세관청에 조회할 수 있도록 하고 과세관청이 이를 신고기한 전에 납세자에게 신속히 제공할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비상장주식 평가액 적용과 관련해 평가액의 적정성 여부를 국세청에 사전신고, 국세청이 이 신고가액을 허용할지 여부를 회신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세무사는 "우리 나라도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라며 "유사사례가액 적용에 있어서 과세관청만이 알 수 있는 정보를 개별 납세자에게 회신하는 제도가 시급하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김 세무사는 최근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고 있는 가격비교사이트 처럼 국세청이 부동산정보 회사가 제공하는 부동산 시세표 등을 활용해 평가대상재산과의 개별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고 납세자들이 이를 시가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