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녹음 못하면 보이스피싱 증거는?...與 통비법 개정안에 '술렁'

개정안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녹음하면 처벌'

선거때마다 '녹취 폭탄'… 1997년 '초원복국'이 원조

김한석, ‘라임 펀드 사태’소송에서 녹취록 결정적 역할

"일률적 녹음금지보다는 활용 범위를 제한하는 방안"

2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공동발의자로는 구자근, 김선교, 이명수, 양금희, 박대수, 박덕흠, 엄태영, 이헌승, 윤영석, 권명호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명이 이름을 올렸다.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당사자 간의 대화 녹음은 합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제3자가 다른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할 경우에는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윤 의원이 발의한 통비법 개정안에는 대화 당사자라 해도 상대방 동의 없이 대화·통화를 녹음했을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과 5년 자격정지에 처하는 처벌 내용이 담겨있다.

윤 의원은 지난 18일 이같은 내용의 통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며 "일방의 사생활의 자유 또는 통신 비밀의 자유와 헌법에 보장되고 있는 인간의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개정안 제안 이유를 들었다.

◆ '부산 초원복국 도청 사건' 계기로 통비법 제정...“우리가 남이가”

통비법은 부산 초원복국 도청 사건을 계기로 제정됐다. 1992년 14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초원복국에서 정부 주요 기관장들이 모여 관권선거를 모의한 과정을 통일국민당측에서 몰래 녹음했다가 폭로한 사건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유명한 발언도 이 회동에서 나왔다.당시 통비법이 없어 관련자들은 모두 주거침입죄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됐지만, 김영삼 정부는 안기부 미림팀을 운영하면서 조직적으로 도청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에도 녹취록으로 인해 정치권이 크게 요동친 적이 많았다.

2011년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여당 간사이던 한선교 의원이 KBS 수신료 인상에 관한 야당 지도부의 비공개 회의 녹취록을 읽다가 도청 의혹을 받았다.

2015년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언론사 외압'을 암시하는 발언을 한 녹취록이 폭로돼 후보 사퇴 직전까지 갔다.
 
통비법 개정안을 낸 윤 의원 역시 자신의 통화녹음이 공개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겨냥해 원색적 비난을 한 '막말 녹취'가 공개돼 공천에서 배제된 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대통령 선거 50여일을 앞둔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사적 통화 녹취록이 방송으로 부분 공개돼 큰 관심을 끌었다. 김 여사는 방송 직전 언론사를 상대로 방영금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당시 법원은 "국민의 공적 관심사이자 검증 대상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라며 '국민 알권리'에 손을 들어줬다.이후 국민의힘은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욕설'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이 후보의 도덕성을 문제삼아 양당의 네거티브 공방전이 격화되기도 했다.
  ◆ 다양한 사건에서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

그동안 녹음 파일이 성범죄 무고, 직장내 괴롭힘, 보이스 피싱, 폰지 사기 등 여러 사건에 중요한 증거자료로 활용되는 사례들이 종종 있었다.

지난 2020년 10여 년간 알고 지내던 여성과 성관계를 한 뒤 강간 혐의로 고소당한 한 남성이 녹음파일을 검찰에 제출하자 피해 여성이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진술을 바꿔 무혐의 처분을 받은 사건이 보도됐다.

최근 1조6000억원 펀드 환매 중단 사태를 빚은 ‘라임 펀드 사태’에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던 방송인 김한석씨가 녹취록을 공개한 후 증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처럼 무고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벗을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통화·대화 녹음 금지법안을 두고 각계각층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대다수 네티즌들도 "사기꾼들의 전성시대가 될 것이다", "통화녹음으로 인해서 인생파탄의 위기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법에 취약한 사람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수단이다"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같은 당 문성호 국민의힘 대변인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문 대변인은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녹음금지법은 위험한 법안"이라면서 "증거 확보 수단을 봉쇄하는 이 법안은 피해자를 위한 법입니까, 범죄자를 위한 법입니까"라고 꼬집었다.

◆일률적으로 녹음 금지보다는 활용 범위 제한 

이와 관련 법조계에서는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했다하더라도 공익적 목적이 있다면 적법하다고 인정할뿐더러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최경진 개인정보보호법학회 회장은 22일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사적 비밀이나 또는 프라이버시 가치가 중요해지기 때문에 현대에 맞는 적절한 보호의 법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최 회장은 "다만 전면녹음 자체를 금지할 건지 아니면 녹음은 허용하되 제한적으로 사용 범위 내지는 활용 범위를 제한할 건지 이러한 디테일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사생활의 자유와 음성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지만, 오히려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