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구속영장 신청했지만 법원서 영장 기각
300차례가 넘는 전화와 메시지 피해자에게 남겨
전문가들, 보호공백 보완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 도입
◆…20대 여성 역무원 살인사건이 벌어진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15일 오후 한 시민이 추모의 꽃을 놓고 있다. 2022.9.15 사진:연합뉴스
지난 14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근무하던 여성 역무원이 여자화장실에서 흉기로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는 입사 동기인 서울교통공사 직원 A씨로 확인됐으며 이미 피해자의 고소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를 3년 동안 스토킹한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지난달 18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징역 9년을 구형받았고 지난 15일 1심 선고를 앞둔 상태였다. 피해자는 지난해 10월 A씨를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은 A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도주할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같은 달 피해자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았으나 한 달 만에 피해자의 요청으로 종료된 바 있다.
결국 300차례가 넘는 전화와 메시지를 남기며 스토킹이 멈추지 않자 피해자는 지난 1월 스토킹 혐의를 추가 적용해 A씨를 또다시 고소했다.
스토킹 관련 사건은 올들어서도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2월 스토킹으로 경찰의 안전조치(신변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이 전 남자 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숨진 채 서울 구로구 한 야산에서 발견된데 이어 5월에는 경북 김천에서 40대 여성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이 된 당일에 전 남자친구에 의해 살해됐다. 이어 6월에는 신변 보호를 받던 40대 여성이 60대 남성에게 살해당하면서 스토킹으로 인한 살인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4515건이던 스토킹 관련 112 신고 건수가 2021년에는 3.2배 증가한 1만4509건으로 집계됐으며 올 1~7월 신고 건수는 이미 지난해 전체 신고 건수를 뛰어넘은 1만6571건으로 나타났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18년 2921건, 2019년 5468건, 2020년 4515건이다.
지난 2021년 10월에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이후 경찰의 긴급안전조치(신변보호)는 2021년 12월 942건, 올해 1~7월은 1850건이다. 해당 조치는 피해자 보호 정책으로 주거지 100m 이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에 따라 스토킹범죄 가해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으며 또 흉기 또는 그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한 스토킹 범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으로 가중처벌된다.
스토킹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응급 조치 후 검찰을 통해 법원에 사후 승인을 청구해야 한다. 검사는 스토킹 범죄 재발 우려가 있는 스토킹 가해자에 대해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 조치도 법원에 청구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스토킹 가해자들에게 형사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스토킹을 범죄로 규정해 피해의 경중에 따라 5년 이하에서 최고 종신형까지 처벌하고 있다.또 가정폭력에 적용하던 ’보호명령‘ 제도를 스토킹이나 데이트폭력에도 확대 적용해 추가 폭력을 방지하고 있다. 2000년에 스토킹 방지법이 제정된 일본에서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엔(약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독일은 스토킹 정의 규정에 보충 요건을 둬 다양한 방식의 사례들을 법에 반영하고 있다. 호주·프랑스·영국·스페인 등의 국가들도 접근금지명령을 위반할 경우 위치 추적·감시하는 규정을 제도화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신청과 법원 결정의 절차 과정이 길어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보호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 등의 보완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김성희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는 지난 2021년 발표한 ‘스토킹처벌법의 입법적 의미와 여성의 안전’ 보고서에서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연락할 기회를 제한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스토킹 피해자도 고소 없이 가정법원에 피해자보호명령 신청이 가능하도록 해당 법률을 개정하자고 제안했다. ‘피해자 보호명령 제도’는 응급조치가 빠르게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피해자가 법원에 직접 보호조처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일부 시민 단체는 강력범죄로의 발전을 막기엔 처벌규정이 솜방망이 수준이라며 조치가 이뤄지는 기간에도 스토킹 가해자에게 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달 법무부는 스토킹 범죄자가 징역형 실형을 받을 경우 출소 후 최장 10년까지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반면 다른 일각에서는 스토킹 행위와 범죄를 나누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처벌에만 집중할 경우 가해자의 인권 침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