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시간)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를 달리던 연료 저장 탱크가 실린 화차에서 폭발이 일어나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 로이터>
러시아의 크림반도 영유권 상징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자존심인 크림반도가 파괴된 것은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 측에 실질과 상징 양면에서 상당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요 외신들은 보도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폭발에 따른 손상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즉각 평가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이 다리를 통한 통행에 지장이 생기면 우크라이나 남부에서 전쟁을 벌이는 러시아의 능력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8년 5월 18일 푸틴 대통령은 다리의 개통식을 주재하면서 오렌지색 카마즈 트럭을 직접 몰아 다리를 건너는 이벤트를 할 정도로 크림대교를 정치적 산물로 이용해왔다.
NYT는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70세 생일 바로 다음날 벌어진 이번 사건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여길 공산이 크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같은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파괴된 것은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제때 방어하지 못한 러시아 군대의 혼돈을 상징한다고 부연했다.
우크라이나는 올해 2월 러시아 측의 침공을 받은 이래 이 다리를 파괴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다만 이번 폭발이 우크라이나 측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NYT는 이날 우크라이나 관리들의 공식적인 책임 주장은 없었다면서도 폭발이 우연이 아니며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다고 전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트위터를 통해 "크림반도, 크림대교,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불법적인 것은 모두 파괴해야 하고, 훔친 것은 모두 우크라이나로 반환해야 하며, 러시아가 점령한 모든 것을 추방해야 한다"고 적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러시아 권력의 악명 높은 두 가지 상징, 모스크바함과 케르치대교(크림대교)가 추락했다"고 썼다.
올렉시 다닐로프 우크라이나 국가안보보좌관은 자신의 SNS에 파괴된 크림대교와 미국 여배우 마릴린 먼로가 "생일 축하합니다"라는 노래는 부르는 영상을 게재했다.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상 연설에서 크림대교 폭발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고 "크림 반도의 날씨가 흐리다"고만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그는 이어 "날씨가 아무리 흐리더라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알고 있다. 우리 영토, 특히 크림 반도 전역에서 점령자가 사라진 우리의 미래는 밝다"고 덧붙였다. 한편 폭발 이후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비상 사태’와 관련한 정부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마리아 자카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텔레그램을 통해 “민간 기반시설 파괴에 대한 우크라이나 정권의 반응은 테러리스트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이 체면을 유지하고 러시아 내에서 흔들리는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강한 보복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앞서 러시아는 크림대교가 공격을 받을 경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폭격하겠다고 올해 6월 공언한 바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술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 CNN 방송은 이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려움을 겪음에 따라 현재 러시아 내에서 푸틴의 입장이 2000년 집권 이래 가장 취약한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CNN은 "(푸틴 입장에서) 실패를 인정하는 것은 이 단계에서 내키지 않는 일이고, 더 큰 도박을 하는 것이 되레 더 쉬운 길처럼 보일 수도 있다"며 푸틴이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판을 더욱 키울 경우 우크라이나 침공 시도나 푸틴 정권 자체가 '완전한 붕괴'를 맞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