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금리 6% 육박...대량 발행해 ‘싹쓸이’
금리상승 평가손실 우려로 투자수요 위축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이 계속되고 있다. 다만 ‘블랙홀’ 한전채와 글로벌 긴축기조가 근본 원인인 만큼 모두 강원도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20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힌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다.
강원중도개발공사(GJC)는 특수목적법인(SPC)인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해 2050억원 규모의 ABCP를 발행하고 강원도가 보증을 섰다. 그러나 강원도는 보증의무 이행 대신 GJC에 대한 회생신청 계획을 발표하면서 금융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
강원도는 사태 수습에 나섰다. 강원도는 지난 27일 브리핑을 통해 “12월 15일까지 보증채무 전액인 2050억원을 상환하겠다”고 발표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이날 “조금 미안하다. 어찌 됐든 전혀 본의가 아닌데도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오니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레고랜드 사태가 채권시장 불안에 일조하긴 했지만 이에 앞서 한국전력공사가 한전채를 쏟아내면서 유동성 쇼크가 발생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2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발행된 한전채 규모는 23조49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10조3200억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한전채 금리는 6%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달 20일 발행된 한전채의 발행금리는 5.9%로 A+ 회사채(5.66%)보다 높았다. AAA 등급인 한전채가 비우량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를 제공하면서 시장을 교란하는 셈이다.
한국은행은 ‘최근 신용채권시장 상황 평가: 신용스프레드 확대요인을 중심으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하반기 이후의 한전채 발행 급증은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낮은 신용채권 수요를 구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1~9월 중 AAA등급 신용채권의 순발행은 48조원으로 전체 신용채권 순발행의 96.3%에 달했다. 이중 한전채 발행액은 18조3000억원으로 전체 신용채권의 36.7%였다.
한민 한국은행 금융시장국 채권시장팀 차장은 “여전채·은행채 대규모 만기도래, 안심전환대출 주택저당증권(MBS)과 한전채 대규모 발행이 이어지는 등 수급 부담이 상존하는 상황”이라며 “신용채권시장 불안이 크게 확산하지 않도록 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 대응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전채를 비롯한 우량채 쏠림현상은 3분기 회사채 수요예측 현황에서도 확인됐다. 신용등급별 수요예측 비중을 보면 AA이상 등급 73%, A등급 19%로 극단적 양극화를 보였다. 안전자산 선호심리로 인해 결정금리가 상승하고 만기가 축소되는 흐름도 나타났다.
금투협 관계자는 “3분기 인플레이션 확산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종 기준금리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통화정책 완화 기대가 약화했다”며 “금리상승으로 인한 기관의 평가손실 우려 확대와 발행사의 자금조달 비용 부담 증가로 발행시장 위축이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긴축 기조가 이어짐에 따라 자금시장이 단기간에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최근 금융당국이 단기자금시장 안정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제시했다. 단기적으로 시장 불안은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근본 원인인 금리인상 기조가 중단되는 것이 아닌 이상 투자심리 회복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는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연일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한전채와 은행채 등 우량채권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는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전에 은행대출을 유도하고, 은행채 관련 일괄신고서 규율을 한시적으로 완화할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