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 탄생의 주역, 손복남 고문 별세 "항상 겸손해라"

CJ그룹 창립 69주년 되는 날 손복남 CJ그룹 고문 별세(향년 89세)

故 이병철 선대회장, 맏며느리 가장 신뢰... 집안 대소사 꼭 상의

장남 이재현 회장에게 엄격한 가르침 내려... 아버지(이맹희) 교훈

2015년 뇌경색... 구속집행정지로 같은 병원 입원한 아들 본 뒤 쓰러져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모친인 손복남 CJ그룹 고문(사진)이 5일 별세했다. 이날은 CJ그룹(창업당시 제일제당)의 창립 69주년이 되는 날이다. 향년 89세.

손복남 고문(1933년생)은 경기도지사를 지낸 고(故) 손영기 전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사장의 장녀로 손경식 CJ 회장이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누나다. 고인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湖巖)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남 고 이맹희 CJ 명예회장과 결혼하면서 삼성가와 인연을 맺었다.

고인과 고 이맹희 CJ명예회장 사이에 이미경 CJ 부회장, 이재현 CJ 회장과 이미경 CJ 부회장, 이재환 재산홀딩스 회장 3남매를 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이재현 CJ 회장과의 사촌간으로 이재현 회장이 맏형이다.

고인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부모인 이병철 회장 부부를 각별하게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가 남편인 이맹희 CJ 명예회장이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기 시작한 때다. 하지만 선대회장은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맏며느리와 상의할 정도로 고인을 신뢰했다고 한다.

CJ 관계자는 "이병철 선대회장이 장손인 이재현 회장을 유달리 사랑하고 신뢰한 근저에는 고인의 이런 노력이 있었다"며 "고인이 있었기에 이 회장이 제일제당을 물려받게 됐고 이는 CJ그룹 출범의 근간이 됐다"고 전했다.

재계 관계자들도 "고인은 총명한 머리와 곧은 심성으로 이병철 선대회장의 신뢰가 강했다"며 "선대회장은 집안 대소사를 꼭 맏며느리인 고인과 상의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특히 장남(이재현)에게 엄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성 면에서 손색없는 경영자로 키우려는 일념에 "항상 겸손해라.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라. 일 처리에 치밀하되 행동할 때는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이 또한 아버지(이맹희)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훈육의 의미인 것으로 읽혀진다.

고인은 지난 2015년 12월 19일 저녁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 같이 입원한 이재현 회장을 만난 뒤 뇌경색으로 쓰러진 바 있다. 당시 고인도 척추 수술을 받고 이 병원에 입원 중이었지만 아들의 불행한 소식을 듣고 충격이 더해진 것이다.

경영 전면에 나서진 않았지만 CJ그룹의 중대한 기로마다 고인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976년 이병철 선대회장은 삼남(三男)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이맹희 회장 대신 고인에게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지분을 물려줬다. 1993년 삼성그룹이 제일제당을 계열분리하자 고인이 갖고 있던 안국화재 지분을 이건희 회장의 제일제당 지분과 맞교환했다. 1996년 제일제당그룹이 공식 출범하자 이재현 회장에게 자신의 주식을 몰아줘 현 CJ그룹 근간을 마련했다.

고인의 조력자로서 역할은 이외에도 많다. CJ의 문화사업 진출의 계기가 된 미국 드림웍스 지분 투자(1995년) 당시 드림웍스 창업자 중 한 명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집으로 초청해 직접 식사를 대접하며 사업성공의 발판을 마련했던 점은 유명한 일화다.

2010년대 초반 CJ그룹이 한식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브랜드 이름을 '비비고(bibigo)'로 정할 때도 "외국인도 부르기 좋고 쉽게 각인되는 이름"이라며 힘을 실었다.

CJ가 ‘K-푸드’ 비전하에 2017년 개관한 연구개발(R&D) 허브인 CJ블로썸파크를 구상할 때는 이재현 회장과 함께 주요 후보지를 둘러본 뒤 현재의 경기도 수원시 광교를 사업지로 지목했다. 주변 인프라와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당시 손 고문의 제언이었다고 한다.

CJ가 ‘K푸드’ 확산을 꿈꾸며 2017년 개관한 연구개발(R&D) 허브 CJ블로썸파크를 구상할 때는 이재현 회장과 함께 후보지를 둘러보며 주변 인프라와 시너지가 예상되는 현재의 경기도 광교를 지목했다. 이 회장은 손 고문을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라며 “내가 경영자로 자리 잡는데 든든한 후원자셨다”고 했다. 빈소는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 마련됐다.

이 회장은 "어머니는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자 내가 경영자로 자리 잡는데 늘 든든한 후원자셨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CJ 그룹 관계자는 "과거 삼성가(家)와 CJ그룹이 소송을 벌이는 등 갈등을 빚을 때도 고인이 중간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CJ그룹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온 분"이라고 말했다.

빈소는 서울 중구 필동 CJ인재원에 마련됐다. 6일 빈소에는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이날 오전 9시 모친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과 함께 빈소를 가장 먼저 찾았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홍정도 중앙홀딩스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태원 SK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김윤 삼양 회장, 김동관 한화 부회장, 장대환 매경미디어그룹 회장,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빈소를 찾았다.

발인은 8일 오전 8시30분, 장지는 경기도 여주시 선영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