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반도체 기업들, 美제재 피하려 프로세스 성능 낮춰

바이렌 테크놀로지 등 중국 유명 반도체 회사들이 미국 제재를 피하고자 자체 개발한 첨단 프로세서의 성능을 낮추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중국 반도체회사들은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 그래픽, 전력 등과 관련한 첨단 프로세서 개발에 수년 동안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 다만 개발된 프로세서는 중국 내부에서 생산할 수 없어 대만 TSMC와 같은 해외 제조사에서 생산된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10월 7일 중국 내 반도체 제조업체에 자국산 첨단 장비 판매를 금지하고, 인공지능(AI) 및 슈퍼컴퓨터용 반도체 수출 등을 제한하는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당시 바이렌은 자사의 고성능 범용 그래픽 프로세서를 양산하기 위해 7나노미터 공정을 제공할 수 있는 TSMC에서 테스트하고 있었다. 미국의 제재 발표 뒤 TSMC는 즉각 협력을 중단했고 중국 내에서 대안을 찾을 수 없는 바이렌이 궁지에 몰리게 됐다.

대다수 반도체 생산공장에는 미국산 부품이나 소프트웨어가 쓰이는데 미국의 규제는 중국이 아닌 제3국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도체 산업분석가들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 기술의 발전을 강제로 늦추기 위한 조처라고 봤다.

ASG의 폴 트리올로 기술정책 책임자는 "한 나라의 하드웨어 기술 수준을 제약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며 "첨단 프로세서가 자율주행, 마약탐지 등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슈퍼컴퓨팅과 인공지능 연구는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 상무부가 해당 분야 개발에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면 중국은 진짜 큰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바이렌은 중국 반도체 설계사 가운데 가장 유망한 회사이다. 이 기업의 평가가치는 27억 달러에 이르며 중국과 러시아 국영 펀드 등을 통해 약 7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조달했다.

TSMC와 가까운 관계자는 바이렌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바이렌의 프로세서가 미국이 제한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TSMC와 협력이 중단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바이렌이 수출 규제를 적용받을 정도로 고성능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생산 과정으로 넘어갈 수 없을 것"이라며 "관련 문제가 있을 때마다 멈추고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엔지니어들은 FT에 미국의 규제가 불분명해 어떻게 조건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규제에 따르면 프로세서는 초당 600기가바이트(GB/s)를 넘으면 안 된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렌의 선임 엔지니어는 전송 속도를 계산할 몇 가지 방법이 있다며 "바이렌이 TSMC로부터 생산되길 바라고 있어 프로세서 디자인을 수정해 성능을 낮추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바이렌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그들의 첫 번째 프로세서의 BR100은 초당 640기가바이트(GB/s)의 전송속도를 자랑했다. 미국의 제재 후 최근 자료에 따르면 초당 576기가바이트(GB/s)로 성능이 하향 조정됐다.

세미애널리틱스의 딜런 파텔 반도체분석가는 바이렌이 프로세서의 일부 부분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 성능을 낮추고 있다고 밝혔다.

파텔 분석가는 "바이렌이 프로세서 디자인을 바꾸지 않은 채 일부를 활성화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미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