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 '인권침해' 발생"…인권위에 철회 의견 진정

화물연대 "헌법, ILO 핵심 협약 위배…인권위, 침해 여부 살필 책임 있다"

조연민 변호사 "명령 발동 상황 충족 안 돼…제정 당시부터 위헌·위법 해석 소지"

"ILO, 한국 정부 의견 요청…사태 위중함 대변, 단순 무시할 상황 아냐"

전국민주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는 5일 정부가 발동한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과 관련해 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표명을 요청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앞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개시명령을 철회하고, 행정권 발동이 헌법상 기본권과 국제노동기구의 기본 협약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도록 정책·관행 등을 개선할 것을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권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어 "인권위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 보호·향상을 설립 목적으로 한다"며 "인권위는 화물노동자 파업에 대한 행정권 발동이 헌법상 기본권과 국제기구 협약을 침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업무개시명령은 2004년 도입된 후 국내외에서 노동3권을 침해한다고 비판받아 지난 18년간 한 번도 발령된 적이 없다"며 "이는 헌법은 물론 단결권 보호 의무를 규정한 국제노동기구(ILO)의 핵심 협약에도 위배된다"고 부연했다.

또 화물연대 측은 "화물연대 소속 조합원 A씨가 서울행정법원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을 상대로 업무개시명령 처분의 취소 소송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A씨 측 법률대리인인 조연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정당한 사유도 없고 국가 경제에 심각하게 위기를 (초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상황이 충족되지 않는다"며 "업무개시명령 외 다른 것들을 검토해보고 최후의 수단으로 여겼어야 했는데 '비례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또 조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업무개시명령이 2004년에 도입된 후 지금까지 18년 동안 행사가 안 된 이유는 이 제도에 따른 명령을 발동하는 데 법적인 리스크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그동안 보수 정권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자제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조문상으로는 불확정 개념이 너무 많아 제정 당시부터 위헌이나 위법 해석 소지가 있었기 때문에 어떤 정권에서도 사실 여기까지는 가지 않았던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가 다른 방향으로 풀기 위해 사전적인 노력을 시도했는지 법적 판단으로 보면 중요한 부분으로, 좋게 평가하긴 사실 어려운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최근 화물연대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견을 요청한 것에 대해선 "ILO가 정부에 의견을 요청한 것은 이번 사태의 위중함을 대변해 주는 제스처로 보인다. 정부는 단순히 의견 조회 절차에 불과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에도 이런 절차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차이점은 작년에 ILO 기본 협약 29호, 87호, 98호를 비준해서 지금 효력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단순히 무시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ILO 29호 협약을 비준했는데 강제나 비자발적 노동에 대해 강제 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단순 추상적인 말이 아닌 국회에서 비준을 했기 때문에 현행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정부 측이 지금 와서 입장을 굽히지는 않을 것은 자명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관련 관계장관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관련 질의를 받고 "ILO로부터 사무총장 명의로 서한이 온 것은 맞다"면서 "다만 이는 단순한 의견조회에 불과한 것으로 저희는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국제운수노련이 지난달 28일 화물연대에 대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앞두고 이번 사태에 긴급히 개입해줄 것을 ILO에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한편 정부는 시멘트에 이어 정유·철강 분야에 대한 추가 업무개시명령 준비를 완료하여 추가 발동을 예고했으나 오는 6일 국무회의에서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의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애초 추가 업무개시명령이 유력했던 정유 부문은 군 탱크로리(유조차)와 대체 인력 투입 등으로 중대 고비를 넘겼으며, 다만 철강과 컨테이너 부문의 수급 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추가 업무개시명령을 완전히 배제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정부는 기존 시멘트 운송 기사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이행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화물차 기사나 운송사가 업무 재개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 30일 이하 운행정지(1차 불응), 화물운송자격 취소(2차 불응) 등 행정처분에 더해 형사처벌을 위한 고발 조치를 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날 업무에 복귀해야 하는 화물차 기사는 총 455명으로, 업무개시명령서를 우편으로 수령한 191명과 문자로 받은 264명이 그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