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지분율 25% 기준, 편법으로 우회할 우려”
“공개매수 물량 ‘50%+1주’ 부족해...궁극적으로 100%”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주식양수도 방식의 경영권 변경시 일반투자자 보호방안' 세미나에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25년 만에 기업 인수·합병(M&A) 시 의무공개매수제도 도입을 추진한다고 21일 밝혔다. 다만 1997년 당시와 동일한 기준인 데다가 제도를 우회할 편법이 예상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상장회사의 지배권을 확보할 정도의 주식 취득 시, 일정 비율 이상을 의무적으로 공개매수의 방법으로 취득하도록 하는 제도다. 1997년 구 증권거래법 개정을 통해 지분율 25% 이상인 경우 50%+1주 이상을 공개매수토록 했으나 이듬해 국제통화기금(IMF)의 우려에 부딪혀 폐지됐다.
최근 일반투자자 보호를 위해 재도입해야 한다는 논의에 따라 금융당국은 21일 ‘주식양수도 방식의 경영권 변경 시 일반투자자 보호방안 세미나’에서 제도 초안을 발표했다. 내년 중 자본시장법 개정을 추진하고 1년간 유예를 거쳐 시행할 방침이다.
이번 방안 역시 상장회사 주식 ‘25%’ 이상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는 경우 ‘50%+1주’ 이상 지분을 공개매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해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에 동일한 가격을 적용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수인이 적용요건인 ‘25%’를 우회하는 편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수인이 24.9%를 인수하고 이사회 과반수를 장악하거나 대표이사를 뽑는다면 이는 경영권 변경과 마찬가지”라며 “25% 미만이라도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하는 경우 적용대상에 포함해야 규제 공백이 없을 것”이라고 봤다.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은 “‘3%룰’을 피해 여러 회사에 분산해 감사선임을 시도한 사례와 같이 지분을 분산 취득하는 편법이 나타날 수 있다”며 “또 지배주주에게 과도한 경제적 부담을 일으킨다면 M&A 활성화를 저해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송영훈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 상무 역시 “지분을 24.9%만 취득하거나 처음부터 50% 넘게 취득한다면 의무공개매수가 작동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25~50% 구간에 있던 기존 주주가 추가 취득할 경우 어떻게 할지도 불명확하다”고 짚었다.
이어 “25% 미만이라도 사실상 지배력이 있는 경우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지만 지배력을 사전적으로 판단해 공개매수의무를 부과하는 건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매수물량이 ‘50%+1주’ 이상으로 제한된 점도 지적됐다. 일반주주에게 충분한 매각기회를 부여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100% 전량 매수 의무를 부과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50%+1주만 사면 되니까 45%를 가진 경우 5%만 공개매수하면 된다. 일반주주 지분이 55%라면 1·10만 참여하는 ‘로또’”라며 “이렇게 되면 주가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이 적고 입법 취지와도 안 맞는다. 장기적으로 100%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100% 주식 취득을 법으로 규정한다 해도 24.9%만 사거나 분산 취득하는 등 편법을 찾을 수 있다”며 “미국처럼 주주대표소송, 집단소송을 통해 자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도록 이사의 충실의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준혁 교수는 “특히 코스닥시장에서 약탈적 M&A나 무자본 M&A가 성행하고 있다. 100% 주식을 취득하도록 한다면 이들이 발붙일 곳이 없어질 것”이라며 “나머지 50% 주주들의 엑시트를 위해서라도 100% 주식 취득을 도입하는 게 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라고 덧붙였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50%+1주’는 97년 구 증권거래법 당시와 동일한데 지금은 그때와 경제환경이 다르다”면서도 “제도의 첫발을 떼는 게 어려운 만큼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향후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편법 사례가 발생한다면 그 데이터를 근거로 과감하게 개정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혜성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보완할 추가적인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50%+1주를 공개매수하면 모든 주주가 매도기회를 부여받지 못해 시장에서 우월적 정보를 이용한 차익거래가 발생할 수 있다”며 “주식양수도계약(SPA) 공시 시점에 대한 통제가 필요하다. 미공개정보가 불공정하게 이용되지 않도록 감독당국에서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공개매수를 하게 되면 금융기관에 예치해야 하는데 금융비용을 줄일 수 있도록 실무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며 “또 세법상 장내매수와 장외매수의 세율이 다른데 이를 어떻게 할지, 최대주주 지분율과 무관하게 상속증여세율 20%를 적용하는 게 적정한지 등도 고려할 사항”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정우용 부회장은 일반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공유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일반주주에 대해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매수가격을 적용하는 것은 ‘무임승차’가 될 수 있다. 일반주주도 이를 동등하게 누리는 게 과연 평등일까”라며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매수가격이 동일하다면 인수인의 부담이 엄청나게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윤수 금융위원회 국장(자본시장정책관)은 “25% 문턱 문제는 요율을 바탕으로 제도를 설계하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라며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약탈적 M&A를 부수적으로 방지하는 효과가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 불공정거래 조사와 제재, 처벌 문제로 추가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50%+1주'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최소한의 기반을 갖춘 만큼 시장의 자율을 통해 충분한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거라 본다”며 “100% 인수하겠다는 인수자가 나온다면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제도 안착 후 시장 변화를 봐가면서 추가적인 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분 분산 취득 등 편법 가능성에 대해서는 “제도를 촘촘히 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빠져나간 걸 다 제도로 규율할 순 없다”며 “인수자가 의무공개매수를 우회했다고 해도 어차피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시장의 냉정한 평가와 함께 행동주의펀드 등 여러 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의무공개매수제도가 오히려 M&A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적대적 M&A가 많지 않은 만큼 의무공개매수가 M&A 활성화를 저해할 거란 논리는 바로 성립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오히려 기업 내재가치보다 시가가 낮은 종목에 대해 인수자가 경영권을 장악함으로써 경영권 분쟁 이슈가 줄어들 수도 있고, 새로운 인수자를 중심으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할 수도 있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