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채, 레고랜드 사태...구조조정 통해 채권시장 재편해야"

박선영 교수 "한전채, 낮은 전기요금 유지하려다 자원배분 왜곡"
 
"레고랜드 사태 없었어도 ABCP 미상환, 금리인상 벌어졌을 것"
 
"정부가 인공호흡기 떼는 3월, 부실기업 추려질 것"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은행도 위험 감수 동참해야"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김한규와 경제읽기' 세미나에서 '채권시장:한전채부터 레고랜드까지' 발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금융투자협회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채권시장 순발행액은 국채 94조원(72%), 특수채 32조원(24%), 은행채 9조원(6%) 등 총 130조원이다. 국채를 제외한 순발행액의 약 70%가 한전채였다.

박 교수는 "공공물가를 낮게 유지하려다 보니 특수채를 통해 자금을 조달해 자원 배분에 왜곡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신용등급 'AAA'인 한전이 대규모 물량을 쏟아내면서 회사채를 밀어내는 구축효과(驅逐效果·crowding-out effect)를 낳았다. 회사채 발행 위축은 기업대출 증가로 이어졌다.

박 교수는 이지홍 서울대 교수의 기고를 인용하며 한전에 대한 정부의 가격통제와 도매가 상한제를 비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전기요금이 균형가격보다 낮게 설정돼있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라며 "시장을 경유한 간접지원보다 직접지원이 더 효과적이다.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법인세 인하 등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도매가 상한제를 도입하고 일시적으로 한전채 발행이 줄었지만 이는 발전사에 부담을 떠넘긴 것"이라며 "미봉책, 땜질식 처방을 계속하면 어딘가에서는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김한규 의원은 최근 한전채 발행 한도를 2배에서 6배로 늘리는 법안이 통과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공공요금을 낮게 책정하는 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진보적 정책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정권마다 시장가격을 반영하지 못한 비현실적인 가격이 유지됐고 이를 한전채로 연명해오던 상황"이라며 "최근 산업용 전기에 조세를 감면하고, 가계에 바우처를 주는 등 정책적으로 관여하는 방향에 대해 여야 할 것 없이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동성 공급책 3월 종료..."인공호흡기 뗄 때 구조조정 이뤄질 것"

한편, 박 교수는 레고랜드 사태에 대해선 "안 그래도 신용도가 낮은 ABCP의 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을 가속화했고, 정부가 단기금융시장에 빨리 개입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며 "레고랜드 사태가 없었어도 저변에서 ABCP 차환이 안 되거나 금리가 오르는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기관은 단기로 자금을 조달해 장기로 빌려주는 역할을 하는 만큼 필연적으로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로 레고랜드 사태 이후 주요 연기금은 머니마켓펀드(MMF)에서 자금을 회수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는 단기금융시장의 극심한 자금난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곧장 유동성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시장을 안심시켰다. 유동성 프로그램이 오는 3월 마무리되면 신용위험이 또다시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박 교수는 "정부가 달아준 '인공호흡기'가 3월에 끊긴다. 시장이 안정화돼 인공호흡기를 뗄 때 건강하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정리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레고랜드 사태 여파는 증권업계 PF-ABCP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의 브릿지론 규모는 8조2천억원, 본PF 규모는 19조3천억원이며 자기자본 대비 비중은 39%에 달한다. 지난해 9월말 전체 부동산금융 익스포저(노출액)은 2696조6천억원으로 명목GDP의 126% 수준이다.

박 교수는 "증권업계가 급격한 금리인상을 예측하지 못한 잘못은 있지만, 그간 개발금융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온 만큼 전반적인 책임을 묻긴 어렵다. 공과를 인식하고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PF 비중이 높은 증권사, 건설사 등에 대한 구조조정 필요성도 제기됐다.

박 교수는 "부동산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면 부실 회사가 한꺼번에 쏟아져 '병실이 모자라는 상황'이 된다"며 "우리나라가 구조조정을 처리할 만한 충분한 유동성을 갖고 있다. 다만 갑자기 동시에 망하면 처리능력이 떨어져 투자·소비심리가 위축될 수 있는 만큼 연착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계의 경우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대한 고통이 따를 전망이다. 후진적 부동산금융으로 인해 민간이 대부분 고통을 흡수할 것이란 설명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대출은 1058조원으로 전년대비 2조6천억원 감소하며 통계를 집계한 지 18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박 교수는 "주요국은 2008년 저금리 시기에 경기부양을 통해 디레버리징을 거쳤는데 우리나라는 아직 한 번도 겪지 못했다"며 "외부여건상 금리를 낮출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디레버리징이 고통스러울 것으로 예상한다"고 경고했다.

은행 중심 금융시스템에 대한 지적도 잇따랐다. 그는 "은행은 굉장히 건전한데 모든 위험이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몰리고 있다. 비우량 고객은 비은행 금융기관에서 고금리를 치르고 있다"며 "주택담보대출에 있어 은행은 리스크를 거의 지지 않는데도 높은 이자를 받는다. 이자는 리스크 테이킹(위험감수)에 대한 대가다. 은행도 리스크 테이킹을 통해 고객의 채무를 일부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