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 업고 소통·뚝심으로 당대표 된 김기현

김기현 52.93%, 1차투표에서 과반 득표로 승부 끝내

국민의힘 3.8전당대회에서 김기현 후보가 52.93%의 득표로 신임 당 대표에 당선됐다.

최근 울산 KTX 역세권 시세차익 의혹으로 안철수, 황교안, 천하람 후보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결선 투표로 갈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지만 여러 악재를 물리치고 1차투표에서 과반을 넘겨 당선됐다.

선거 초반부터 윤심이 작동하면서 '어대현'(어차피 당대표는 김기현)이라는 대세론 속에서 나경원 전 의원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모양새를 연출하면서 과반을 넘는 압승을 이뤄냈다.

새 당대표에 선출된 김기현 대표의 정치 역정을 정리해봤다.
 

가난 속 원대했던 정치인의 꿈

김기현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사법고시 합격(25기)해 대구지법과 부산지법 울산지원 판사를 지낸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다.

그는 1959년 2월 21일 울산의 한 어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는 부산에서 진학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속에서도 공부에 매진해 고등학교 때부터 정치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서울대학교 법대를 입학했다.

서울대 졸업 후 같은 대학 법과대학 대학원을 수료했다. 사시 합격 후 판사,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03년 한나라당 부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 기간 동안 12개의 국회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면서 정책 연구, 개발의 성과를 보인 결과 2006~2007년 국회 선정 입법우수의원으로 선정돼 모범적 국회의원상의 전형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4~2006년에는 국정감사 우수의원상을 수상한 바 있다.
 

울산시장 선거 패배, 4선 당선으로 정계 복귀까지

그는 19대 국회의원 임기 중 제6회 지방선거에 도전, 2014년 새누리당 후보로 울산시장 선거에 출마해 민선지방선거 이후 울산시장으로는 가장 높은 득표수·득표율인 65.4%로 당선된다.

시정 평가도 준수했다. 2015년 한국갤럽이 조사한 광역시도 자치단체장 직무수행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것. 울산시민 중 김기현 시장이 '잘하고 있다' 74%, '잘못하고 있다'는 11%였다.

이 같은 긍정 평가를 토대로 4년 뒤에도 재선을 노렸으나 문재인 전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송철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12%포인트 차로 대패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 만에 치러진 선거였고, 선거 직전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차례로 열리며 야당의 분위기 열세 속에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인 '울산시장 선거공작 사건'이 겹친 것이 패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울산시장 선거공작 사건에 대해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울산시장 관권 선거개입 수사를 지시해서 수사가 진행된 것"이라며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강골 검사가 맞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를 계기로 문재인 정부에 밉보이는 계기가 됐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준석-윤석열 갈등 중재한 원내대표, 대선 성공 이끈 선대위원장

이후 김 후보는 울산시장 재출마를 진지하게 고려하는 듯했으나 21대 총선 출마로 방향을 바꿔, 4선 의원 타이틀을 얻고 정계 복귀에 성공한다. 이어 2021년 4월30일 국민의힘 원내대표 경선에서 당선돼 국민의힘의 21대 국회 두 번째 원내대표가 됐다.

김 의원은 1차 투표에서 101표 중 34표를 얻고, 결선투표에서 100표 중 66표를 얻어 압도적인 차이로 김태흠 의원을 제치고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6월 11일 이준석 당대표가 당선되기 전까지 당대표 권한대행도 겸직했다. 당시 30대인 아들뻘이나 마찬가지인 당대표와 함께 대선까지 국민의힘 지도부를 이끌어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21년 대선 국면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당무 거부 사태가 벌어졌다. 이 대표와 윤 후보가 갈등을 빚다 울산에서 만나 극적 화해를 한 바 있는데 둘의 회동 장소를 본인 지역구인 울산으로 잡으며 갈등 중재자로 나서 부드러운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이어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괄선대위원장으로 합류한 이후 윤석열 당시 대선 후보가 선대위 해산을 선언하고 당이 혼돈 상태에 빠지자 2022년 1월 3일 당시 원내대표였던 김 후보는 지도부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동선대위원장과 원내대표직 동시 사퇴의사를 밝혔다.

곧이어 1월 6일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이준석 대표 탄핵 결의 사건이 일어난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들에 의해 재신임이 확정돼 원내대표직을 유지했다.

제20대 대통령인수위원회가 공식 출범하고 윤석열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당초 임기였던 4월 30일까지가 아닌 차기 원내대표 선거가 열리는 4월 8일까지만 원내대표직을 유지해 후임 원내대표로 권성동 의원이 선출되면서 여대야소 정국을 잘 조정하고, 대선에서 이긴 원내대표로 박수를 받으며 물러났다.

4선 국회의원과 울산시장, 원내대표를 역임한 그가 정부 내각에 들어가 중앙 행정 능력을 입증하는 게 앞으로의 과제라는 말도 있었으나, 당대표에 도전하는 결정을 하게 된다.
 

유능한 '정책정당' 만들어, 尹정부 성공으로

그는 지난해 6월 22일 자신이 방장이 돼 이끄는 '혁신24 새로운 미래(새미래)'라는 의원모임을 본격 출범시킨 바 있다. 윤석열 정부 성공을 뒷받침할 당내 싱크탱크를 표방한 것으로 여당 의원 38명으로 구성돼 있다. 당권 경쟁을 시작하려는 포석을 깐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가 당대표 의지를 나타낸 이유에 대해 국민의힘이 위기 상황이니 다시 나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이 같은 언급은 당대표에 선출될 시 여소야대 국면에서 내년 4월 총선 승리를 토대로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과제 추진 동력을 불어넣기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는 각오로 읽힌다. 민생 경제와 더불어 3대 개혁과제를 추진할 유능한 정책정당을 만들어 반드시 성공한 정부로 기록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데 역점을 둔 것이다.

그는 앞선 본지와 인터뷰에서도 차기 총선 대비한 국민의힘의 우선 공략 과제에 대해 노동·연금·교육 등 3대개혁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유능한 정책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국민께 보여드리는 게 당면 과제"라며 "당과 대통령실이 3대 개혁과제 등 주요 국정 어젠다를 '원 보이스'로 추진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후보는 '윤심(尹心) 업은 당대표 후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대통령과의 호흡을 맞추고 공조할 수 있는 후보라고 공언한 만큼 당대표 경선에서 당내 조직적 힘을 바탕으로 1차 투표에서 50%의 과반 득표를 기록해 결선투표까지 가지 않고 당권을 거머쥐었다.

결국 과반 득표 성공에 따라 당정 일체를 명분으로 한 윤 대통령의 당의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윤심' 얻은 후보, 약점 가능성?…羅 공격, 게임체인저 없었다

그는 '대통령과의 소통'을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웠다. 김 의원은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선후배 사이로, 대선 기간 공동선대위원장과 원내대표를 지냈다. 윤 대통령과 관저에서 비공개 만찬회동을 갖는 등 윤심을 얻은 당권주자로 평가받지만 이것이 강점이자 약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었다.

야권에선 대통령의 아바타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 윤핵관에 휘둘릴 것이라는 등 비판 섞인 우려가 나오면서, 일부 당원들이 나경원 전 의원의 당대표 불출마 사태가 윤핵관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안철수 후보나 천하람 후보 쪽으로 표심이 옮겨갈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됐다.
  천 후보는 지난달 23일 MBC라디오에서 "나경원 전 의원을 공격했던 게 '게임체인저'였던 것 같다"며 "이준석, 유승민만 공격당할 때는 '잘못했으니까 공격당하겠지' 했는데 지금 나경원, 안철수한테까지 공격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어르신들도 이번에 윤핵관들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총선 승리를 위한 수도권 의석 확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아직 예측 불가다. 광역지자체장을 지낸 4선 국회의원이지만 지지 기반이 부울경(PK)에 한정돼 수도권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상대 후보들에게 당대표로서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을 지킬 '뚝심' 있는 후보

김 후보가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에서 정치를 시작한 뒤 지금껏 당적을 유지한 점은 확실한 강점이다.

김 후보 캠프의 이수원 메시지 총괄 단장은 앞선 본지와 인터뷰에서 "13년 전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사법고시 패스 후 '이 약속 하나 못 지키면 법조인이 돼서 약속을 어떻게 하겠나'라며 부친의 반대를 무릎 쓰고 결혼했다"는 개인적 일화를 들어 당이 어려워도 뚝심을 지키고 당을 지킬 사람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고등학교 2학년 때 같은 동네에 살던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에게 연애편지 써서 '우리 결혼하자'고 해 13년 연애를 했다. 열일곱에 만나서 서른에 결혼했다"며 "첫사랑 여인하고 결혼해서 아이 4명 낳고 잘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는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 의결 이후 한 달 만에 비박계 의원들이 바른정당을 창당할 당시에도 당을 떠나지 않았다. 당시 2017년 3월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당헌·당규를 뜯어고칠 때였다. 당원들의 탈당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당적을 지켰다.
 

'보따리장수' 별명, 정책적 꼼꼼함과 소통능력

또 김 후보는 판사 출신 정치인답게 정책적 꼼꼼함이 강점으로 꼽힌다. 박근혜 정부엔 1기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을 맡아 정책 분야에서 실력을 쌓았다. 출퇴근하면서 일거리를 들고 다닌다고 해서 '보따리장수'라는 별명이 따라붙기도 했다.

그는 정책 분석력과 추진력과 더불어 당내 의원들과의 원활한 소통능력과 친화력을 갖췄다고 알려져 있다.

친이명박계로 분류되곤 하지만 과거 친박계 좌장으로 알려진 이한구, 최경환이 원내대표를 하던 때 원내수석부대표와 정책위의장 같은 당내 요직을 맡았던 만큼 친박계 인사들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김 의원은 당대표에 출마하며 연대, 포옹, 탕평을 뜻하는 '연포탕 정치를' 선언한 바 있다.

본인만의 소통·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마지막 남은 전대 레이스에서도 그는 조경태·윤상현 의원과 나경원 전 의원 등의 당원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해 연대를 강조했다.
 

과반 득표의 막판 위협…安·黃 공동 전선 구축, 맹공

김 후보의 과반 득표에 막판 위협으로 작용할 변수로 떠오른 것은 황교안 후보가 지난 TV 토론회에서 꺼낸 김 후보의 '울산 KTX 역세권 시세차익 의혹'과, 최근 안 후보 캠프에서 제기한 '대통령실 행정관들의 전대 개입 논란'이었다.

황 후보는 울산KTX 연결도로가 당초 설계와 달리 김 후보 소유 임야를 지나면서 시세차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황 후보는 지난 3일 "진입로 노선이 바뀐 부분이 가장 핵심인데 그 부분에 대해 대답이 없다"며 "노선이 3개까지 면밀하게 검토됐었는데 이게 왜 갑자기 김 후보 땅으로 들어가게 됐느냐"고 지적했다.

또 지난 5일 "김 후보는 (토지 원소유주이자) 재개발 조합장 A씨와의 관계에 대해 소상히 밝히라"며 후보직을 사퇴하라며 맹공했다.

반면 김 후보는 지난 6일 "송철호 민주당 시장이 당선됐을 때 시장 임기 4년 내에 다시 도로계획을 용역 주고 조사한 결과 지금 똑같은 노선으로 결정짓고 나갔다"며 "김기현에 특혜 주기 위해 민주당 시장이 그렇게 했다는 건가. 땅의 지주가 자기 땅 밑으로 터널을 뚫어달라고 로비하는 사람 봤나.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 중에 이런 억지가 어디 있나"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안 후보 캠프는 7일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들의 전당대회 선거 개입 논란과 관련해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안 후보는 이날 대통령실의 즉각적인 조치가 없다며 "전당대회와는 별개로 이건 끝까지 진상규명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될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대통령실 행정관이 전대에 개입한 의혹이 한 명이 아니라며 비슷한 내용의 추가 녹취록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당대회 하루 전까지도 안철수·황교안 후보는 김 후보에 대한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울산 KTX 역세권 시세차익 의혹'과 '대통령실 행정관의 전대 개입 논란'과 관련해 김 후보가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황 후보는 "이미 국민의힘 대표로서 자격을 상실했다"며 "즉각 사퇴해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드려야 한다"고 했고, 안 후보는 "이번이 최후통첩"이라며 "만약 사퇴하지 않는다면 이번 전당대회와 관련 불법 선거와 대통령실 행정관의 전당대회 개입에 대해 모든 증거를 갖고 함께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막판 안철수‧황교안 후보의 공동 전선 구축이 김 후보에 악재로 작용할지 이목이 집중됐으나 대통령이 힘을 내기 어려운 여소야대 정국에서 정부에 힘을 실어야 한다는 큰 명제를 갖는 당원들의 표심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과반 득표로 당정 일체 위한 '구심점' 모아

한편 당원 투표로만 이뤄진 이번 3.8 전당대회 최종 투표율은 55.1%(83만7천236명 중 46만1천313명)로, 역대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지난 2021년 전당대회 최종 당원 투표율(45.36%)보다 높은 역대 최고치다. 이번 투표율이 어떤 후보에 유리할지는 각 후보마다 해석이 다르고 정치권 안팎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당 안팎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1차 투표에서 과반의 득표율을 얻지 못해 결선투표에 진출하게 된다면, '윤심'에 대한 반발심리가 투표로 표출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김 후보는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당연히 저 김기현에게 유리할 것"이라며 "전대를 내부 진흙탕으로 만들거나 네거티브로 일관한 것에 대한 당심이 폭발한 것"이라며 기존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고 이는 표심을 대거 결집시킨 결과로 이어졌다.